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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낙제하는 영재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09-21 00:00

학습장애영재

초등학교 3학년 제이슨(가명, 남·만 8세)은 과학을 무척 좋아한다. 최근 관심거리라는 공룡에 대해 물어보자 전문가 수준의 상식을 유창하게 자랑한다. "고생물학자가 얼마 전, 그러니깐 2002년에 뉴멕시코 샌 주안에서 하드로사우르 다리 뼈를 발견했는데요, 이 다리뼈는 6500만년전 팔레오세 시대 때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대요." 신나게 공룡에 대해 이야기하고 난 후 그럼 이제는 공룡에 대해 쓰고 싶은 것을 적어보라고 종이와 연필은 건네 주었다. 30분이 넘도록 끙끙대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더니 종이를 건네주는데 딱 두 줄이 적혀있다. "Some dinosaurs are big. Some dinosaurs are small."

지능 검사에서도 제이슨은 현저한 영역별 점수 차이를 보여주었다. 읽고 답하는 문제는 평균에서 뚝 떨어진 점수였지만 듣고 말하는 부분이나 그림 맞추기, 집중력 분야에서는 영재 수준의 상당히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흔히 제이슨 같은 어린이를 보고 부모들은 '입만 살아있는 아이,'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안 하는 아이,' 라고 하고 나중에 중고등학생이 되면 '구제불능으로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 찍는다. 특히 한국같이 읽고 쓰는 시험위주의 학교 분위기에서 이런 아이는 견디기 힘들어 한다.

이런 어린이를 학술적인 용어로 '학습장애영재아(Gifted with learning disability)'라고 부른다. 어떤 분야에서는 영재아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장애'라고 부를 만큼의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것이다. 흔히 남자 어린이에게서 발견이 많이 되는데, 기억력과 상상력, 창의력이 탁월하며 과학과 기하학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학교에서 행하는 철자법, 쓰기, 읽기, 암산 등에 어처구니 없이 낮은 능력을 보여준다. 특히 시간 안에 순서대로 끝내야 하는 일에 약하고, 단순한 산수 연산, 더하기 빼기 곱하기 같이 간단한 과제는 못하지만 추상적 추리를 요하는 복잡한 문제는 놀라울 정도로 빨리 이해하고 해결하기도 한다.

최근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이런 어린이들을 조기에 발굴해 학습장애인 부분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영재성을 최대한 개발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밴쿠버 교육청에서도 현재 GLD 클래스(gifted with learning disability class)를 개설해 학습장애 영재아들을 교육한다. 학습장애 영재아들의 조기 발견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어린이들을 방치해 두었다가는 어린이의 자아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학교에서 중퇴하고 저능아로 사회의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지만 그 영재성을 인정하고 개발할 경우 놀라운 창의성으로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뉴튼 같은 위인들도 어릴 적 학습장애를 지닌 영재로 알려져 있다.

집에서 자녀들이 이러한 학습장애 영재아의 특성을 보인다면 아이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학습장애'와 '영재성' 두 가지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모와 학교의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학교와 부모의 이해가 없다면 학습장애 영재아들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보통' 수준의 아이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생각해보자. 머리에서는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수없이 많이 번쩍이는데 이 아이디어를 전혀 모르는 아랍어로 적어야만 한다면 얼마나 큰 좌절을 느끼겠는가. 그리고 아랍어로 적지 못했다고 학교에서 낙제시킨다면 그 느낌이 어떻겠는가.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학습장애 영재아들이 예민하고 내성적이며 쉽게 울고 자존감이 낮으며 혼자만 노는 '왕따'가 되기 십상인 이유인 것이다.

자기 아이가 영재였으면 하고 많은 부모들이 바라지만 막상 영재아를 키우기란 쉽지 않다. 특히 학습장애영재아들의 부모는 더욱 그러하다. 공부 안 한다고, 외우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며 혼낸다면 상황은 악화된다. 아이의 학습과 재능 개발에 부모의 인내가 무한히 필요하다. 하긴 이는 어느 부모에게나 해당 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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