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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나무와 향나무 2024.02.12 (월)
민정희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나무를 잘랐다. 앞마당에서 전나무와 함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던 향나무였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지나 서로의 몸체가 불어나면서 향나무 가지가 전나무 속으로 깊숙이...
[기고] 아버지의 뒷모습 2023.12.11 (월)
민정희 사) 한국문협 밴쿠버 지부 회원
 딸아이를 만나러 시애틀에 갔다. 거의 일 년 만이다. 마중 나온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내 품 안으로 파고든다. 어색하게 끌어안으며 살가운 냄새를 맡는다. 새로 이사한 집을 둘러본다. 이 많은 짐을 혼자 싸고 풀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찡하다. 홀로 살아도...
[기고] 숨고르기 2023.10.11 (수)
민정희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누렇게 뜬 무청이 눈에 띈다. 괜히 억척을 부렸나 보다. 어제 다용도실에 놓아두고 늦은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깜박하고 반나절이나 지난 지금 생각난 것이다.  성당 후문에는 일요일에만 오는 야채 트럭이 있다. 밭에서 직접 따온 신선한...
[기고] 갑자기 떠난 여행 2023.05.15 (월)
민정희 / 사) 한국문협 벤쿠버지부 회원
  “엄마 우리 떠나요.” 저녁 늦게 퇴근한 딸아이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외친다. 오늘 회사를 퇴직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어디로, 예약해야지?” 두서없는 물음표가 튀어나오며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 떠나자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출렁거린다. 아직...
[기고] 불편한 배려 2022.12.27 (화)
민정희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오랜만의 고국 나들이였다. 친구의 소개로 미용실에 갔다. 미용사는 자신의 미용 기술에 대한 긍지와 자존감이 남달리 높은 남자였다. 그는 내 머리칼이 관리를 안 해 힘이 없고 부실하다고 했다. 자극을 줘야 머리칼이 튼튼해지고 빠지지 않는다며, 의향도...
[기고] 나의 세계 2022.02.28 (월)
민정희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벌써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신춘문예 입상이라는 뜻밖의 타이틀은 내 인생의 하반기에 또 다른 고지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새로이 맞이한 공간 속에서, 고래가 물을 뿜듯 분출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설레임과 흥분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빈...
[기고] 오늘 나는 머리하러 간다 2021.11.24 (수)
민정희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언뜻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다. 미장원에 간지도 일 년이 넘었다. 화장조차 안 한 지도 꽤 되었다.옷장의 옷들은 하릴없이 늙어가고, 나 역시 옷 몇 벌로 사계절을 보냈다.   하얗게 센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반은 희었고 반은 예전에 염색한 부분이...
[기고] 그리움의 흔적을 접으며 2021.08.09 (월)
민정희 / 사) 한국문협 벤쿠버지부 회원옷장 정리를 하다 교복을 발견하였다. 중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부모의 결정에 따라 이곳 캐나다로 이민 오게 된 딸아이의 것이다. 더는 입을 일이 없는 교복을 왜 이민 보따리에 넣어 갖고 왔을까. 그 시절의 아이를...
[기고] 날개 접은 새 2021.05.10 (월)
민정희 /  (사) 한국 문협 밴쿠버지부 회원저녁노을이 붉다. 저무는 해는 빛의 광채를 벗으며 자신의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낸다. 긴장의 끈을 풀고, 멈추어 숨을 고르는 석양의 시간. 오늘 하루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볕이 남겨진 창가에 서서,...
[기고] 공존 (토론토 일기) 2021.02.08 (월)
민정희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결국, 봄이 오려나 보다. 눈도 냉기를 잃고 물기를 머금은 채 내린다. 얼면서 녹으면서 내린 꽤 많은 양의 눈이 골목길에, 큰 길가에 치워져 있어 마치 소금을 쌓아 놓은 것 같이 보인다. 기나긴 겨울 끝에, 눈 덮인...
[기고] 존재의 이유 2020.11.30 (월)
“중년의 복부 비만, 늘어나는 허리둘레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다. 나는 한번 늙어보고 싶다.“ 암으로 투병하던 36세의 젊은 엄마가 어린아이 둘과 남편을 세상에 두고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그 말 속에는...
[기고] 가시거리 2020.08.31 (월)
민정희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산 정상에 서서 내려다본다. 몇 개의 구릉 넘어 지붕인 듯한 검은 점들이 조화롭게 박혀 있다.투명한 공기 속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을은 한걸음에 다다를 듯, 가까이 보인다. 지친 몸에서 다시용기가 꿈틀거린다. 내려가기 위해 신발 끈을 바짝 조이고 지팡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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