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바람 2026.01.30 (금)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만나서 마음속으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진다. 바람을 쐬러 산책길에 나선다. 머리카락, 피부에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가슴을 열고 하늘을 본다.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감촉을 느끼게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바깥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어야 생기가 날 듯하여, 오후가 되면 산책길에 나선다. ‘바람을 쐬는 일’은 무슨 일인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스스로 물어보기도 한다.운동장을 몇 바퀴 걸으면 마음속으로...
정목일
이민 삼십 년 2026.01.30 (금)
이민자 낯선 땅에 뿌리내리려 할 때마다사람들은 내게 보이지 않는 눈금을 들이민다고향이라는 눈금, 학교라는 치수그들은 나의 과거를 재는 것이 아니라자신들이 밟고 올라설 사다리의 높이를 가늠하는 중이다골목마다 교회 숲을 이루는 도시절 향기는 댓돌처럼 차고 문지방처럼 높다교회의 찬송은 매끄러운 비단처럼 반짝인다사람들은 나를 그 화려한 그물 속으로 초대한다거절의 벽을 허물고 들어가 앉은 식탁 위에서나는 비로소 이방인의 허기를...
전재민
산에는산길에는해 오르고 달 오르는 길이 새롭다 산은철따라 외로움이 피고 지는꽃들의 터전 그리움이 울어넘는산새들의 고향이다 미움도 사랑으로 옷을 갈아 입는아라리 산길 산에 오르면제 마음 봄이되어발걸음이 가볍다 산은오를수록 제 안의 저를 알아가게 하는무언의 스승 그 산길에 오르며 배움이 깊다
유병옥
동쪽의 거리 2026.01.23 (금)
독도가 앞서 밝아올 때울릉도의 등줄기인왕산의 오래된 벽봉황산의 그림자남한산성의 돌땅끝마을의 끝내 닿지 않는 손성산일출봉새천년 해안 샛바람길의 비린 새벽정동진. 호미곶사람들은산과 바다도시의 모서리마다각자의 동쪽을 세운다나는이름 하나 들고서 있었다간절곶아주 오래전간절함이 먼저 와우리 사이에 서 있었고말은해보다 늦었다빛이 오기 전 오빠는부르지 않아도 이미동쪽에 있었다가장 얇은 그 새벽나에게 동쪽은한 사람...
김회자
한글은 계시였다 2026.01.23 (금)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Kpop의 박동, 드라마의 서사, 영화의 감정, 음식의 향기까지. 그러나 그 모든 ‘K’의 중심에는 조용히 빛나는 한글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래 살고 나서야 비로소 깊이 깨닫는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도, 기술적 발명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된 정신이 글자의 옷을 입고 세상에 다시 나타난 계시였다.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군의 건국 이념에서 시작된다. 홍익인간—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 이 네 글자는 한 나라의 뿌리가...
심정석
 제목은 거창하게 대화의 기술이라고 했지만, 필자는 언어학자도 아니고 대화 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느낀 점들을 개인적으로 피력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고 싶고 이런저런 상담도 하고 싶지만, 잘 들어주지 않는 사람과는 말을 섞기도 꺼려진다. 남의 말을...
이현재
태풍 2026.01.23 (금)
난 바다 어디쯤외눈박이 눈을 하고달려오는 바람 하나거침없는 생이 부럽다 나 그렇게뜨겁게 산 적이 있었던가그렇게 겁 없이사랑한 적 있었던가 젖은 머리 풀고 질주하는구름기둥 끝에 매달려짧고 굵게 살다 죽는비결 한 수배워야 할까 보다
정금자
갓 지은 흰 쌀밥 같은삼백육십오 개의 이름 없는 하루 해와 달 경계에서 호명을 기다린다 아직 목울대에 후회가 걸려있는데때 묻은 손이다시 하루를 빚는다 덜 굳어 찌그러져도금이 번져 부스러져도 울음이 새지 않도록웃음 한 벌 문설주에 걸어 두고 욕심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먼저 박수를 내밀어야지 하루를 닫으며그래도 괜찮았다고 끄덕이게오늘의 이름 아래'사람' 쪽에 발 디딘다 응달로 찾아드는 얇은...
임현숙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