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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 화창한 봄날에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고택秋史古宅을 찾아갔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주택일 뿐 아니라, 조선 말의 문신으로 실학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를 마음으로 만나고 싶었다. 옛 주택은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 앞으로 펼쳐진 넓은 평야에 낮게 솟은 740m의 용산이 배산背山이 되고, 삼교천을 임수臨水로 삼은 추사 고택은 충남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돼 있다. 이 집은 추사의 증조부...
정목일
김밥 한 줄 2024.03.04 (월)
김밥 한 줄은 말줄임표(……)간단명료하다. 설명이나 사족을 붙이지 않는다. 말의 울림이다. 침묵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함부로 말할 수 없어 가슴 속에서만 숨 띄는 함축언어이다.김밥 한 줄은 가장 간소한 한 끼이다. 30초 만에 차려진다. 김 한 장을 펴고 밥을 담은 다음 준비해둔 당근, 부친계란, 볶은 햄, 우엉, 시금치. 단무지를 넣고 말아 올리면 된다. 은박지를 깐 접시 위에 놓인 검은 김밥 한 줄….김밥 토막들은 대열을 벗어나지 않고...
정목일
구월 2023.09.25 (월)
구월은 뜨거운 땡볕이 물러가고 하늘이 창을 열고 얼굴을 내 보이는 계절…….  하늘은 맑은 표정을 보이고 비로소 마음을 연다. 어느새 선선 해진 바람도 들국화나 코스모스꽃향기를 실어 오고, 열린 하늘을 향해 피리를 불면 가장 멀리까지 퍼져 나갈 듯싶다.  구월은 그리움의 심연에 조약돌이 풍덩 날아들어 잔잔히 물이랑을 이루며 마음 언저리에밀려오는 듯하다. 맑은 하늘을 보고, 햇볕을 편안하게 맞아들이며 가을의 속삭임에 귀 기울일...
정목일
수양매화 2023.04.17 (월)
   사월 중순, 경기도 축령산 자락에 둘러싸인 아침 고요 수목원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단번에 눈이 황홀해져 어쩔 줄 모르고 오랫동안 바라만 본다. 여인은 방문 밖으로 긴 주렴을 늘어뜨리고 그 안에서 홀로 가야금을 뜯고 있는가. 내 가슴에 덩기둥, 덩기둥 가야금 소리가 울리고 있다. 10만 평의 수목원을 가득 메운 꽃들 중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벚꽃, 매화, 목련 등 하얀 빛깔의 꽃이다. 나무 한 그루 씩이 거대한 꽃 궁궐을 이루고 있다....
정목일
 국립신라박물관에 가면 관람자의 눈을 환히 밝혀주는 신라인의 미소가 있다. 얼굴무늬수막새(人面文圓瓦當)이다. 기왓장에 그려진 얼굴 한쪽이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초승달처럼 웃고 있다. 이 얼굴무늬수막새는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름 11.5cm이며 경주 영묘사 터(靈廟寺址)에서 출토되었다.    얼굴무늬수막새는 다듬거나 꾸미지 않은 맨 얼굴이다. 서민들의 진솔하고 담백한 마음의 표현, 가식 없는 무욕의...
정목일
암각화 2022.12.19 (월)
영혼의 뼈 마디 하나 떼 내어만든 피리로불어보는 그리움눈물 있는 대로 빼내빈 적막오장육부썩을 대로 썩고뼈만 남아혼자 내는 인광燐光누군가등불 들고만 년 어둠 밟고 오는가
정목일
나비의 힘 2021.08.03 (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나비는 타고난 천상의 예술가. 몸매 자체가 신의 예술품이다.가느다란 몸체는 연약하지만, 양 편으로 두 쌍 씩, 네 장의 날개는 색채 미학의 결정체이다.좌우의 날개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대칭 무늬로 황홀감을 준다.나비는 타고난 패션 디자이너일 뿐 아니라 무용가이다.나비의 행보는 우아한 춤이며 사랑과 평화의 모습을 보여준다.내 초등학교 시절의 여름방학 숙제엔 ‘곤충 채집’과 ‘식물채집’이 있었다.다른...
정목일
시간과 수레바퀴 2020.09.30 (수)
인생은흐르는 것이 아닌 데도생명이란 표를 타면시간의 여행자가 되고 만다내 수레바퀴는어디로 굴러갈까종착지는 어딜까망각 속으로 이대로 사라져도 좋을까나는 어디서 내려야 할까정처 없이 굴러가는 시간의 수레바퀴
정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