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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 전표
2024.04.30 (화)
낡은 지갑 속에서낡은 쪽지 한 장을 발견 한다아버지 이름으로 입금된 송금 전표싸늘한 시체처럼 싸느랗게 떠오르는 이름 석 자이제 그 이름으로 입금 시킬 아버지가 없다적은 금액 속에 묻어 나는 까만 눈물풍수지탄風樹之嘆, 풍수지탄風樹之嘆내 얄팍했던 지갑이 원망스럽다아니다, 아니다 얇은 지갑이 죄가 아니다지갑 속에 숨어 있던 내 양심이 죄다아버지께 송금된 마지막 교신이 세상 큰 바다를 건너가신 마지막 흔적이제는 입금 시킬 곳 없는...
이영춘
밤의 날개
2024.03.08 (금)
이영춘 / 캐나다 한국문협 수석고문고요가 조용히 날개를 펼칩니다팔랑이는 이파리처럼, 이파리의 날개처럼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산비둘기들이 마을로 내려옵니다내려와 잠드는 내 집 처마 끝에달빛을 비춰줍니다고요의 숨소리가 들립니다달빛도 긴 그림자의 그늘을 접고나뭇가지에 어깨를 걸치고 앉아고요가 잠든 집을 지켜줍니다 고요가 조용히 일어나 잠들려는 나를살짝 깨웁니다눈뜬 별들의 바다가 깊습니다나도 살짝...
이영춘
소낙비 쏟아지는 날
2023.09.18 (월)
천둥 같은 빗방울들이 마당으로 쏟아진다마당은 금세 물 바다가 된다날 짐승 먹이로 남겨 둔 아버지의 경전 같은 콩 알들이둥둥 떠내려 간다아버지가 떠내려 간다지상에 남겨 둔 아버지의 유훈,목숨 가진 것들은 다 먹어야 산다고저 풀잎들은 산소를 먹고 수분을 먹고날 새들은 낟 알을 먹고 벌레를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유훈그 유훈 빗물에 둥둥 떠내려 간다텅 빈 마당,이제 아버지도 가고 콩알도 가고 새들도 숨죽이고 풀숲에 든다빈 하늘만 먹구름...
이영춘
강 둑 길을 따라 간다
2023.04.17 (월)
나는 잠의 나라에서 온 사람물 빛 수련 위로 물 새들 날아오르고꽃가루 속에 입술 묻었던 나비들물 안개 따라 날아오른다공기 방울, 물방울 같은 나비 날개들하늘하늘 잠들 곳을 찾아 날아오르고나는 먼 나라에서 온 집시처럼섬 같은 외로움 찍으며 간다물속에서 팔딱거리는 은빛 물고기들노을 빛 햇살 가르며 튀어 오르는데나는 물 속 돌 틈에 기대 앉아물고기처럼 한 쪽 발 담근다
이영춘
아들과의 산책
2023.02.02 (목)
서른을 훌쩍 넘긴 아들과 강둑길을 걷는다오래 묵은 이야기들이 체증을 뚫는 듯강물도 흥겨워 흥얼거린다느닷없는 아들의 말, 심장을 파고든다“엄마, 우리들 키우느라고 고생하셨어요.그 어려운 시절에우리를 이 집 저 집에 맡기면서......직장 다니시느라고......“아들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노을이 걸린 하늘을 올려다본다나는 하늘이 쿵- 내려앉는 듯오래 오래 삭혔던 눈물이 혈관을 타고 올라온다“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사각의 틀(型)...
이영춘
모래의 시간
2022.11.07 (월)
이 세상 끝에 와 있다는 느낌그 사이로 강물이 흘러가고발자국들이 지나가고슬픔 같은 이끼가 툭툭 걸음을 멈추게 하는데나는 건너갈 세상을 돌아본다어둠 저 끝에서 몰려오는 바람소리누군가 내 등 뒤에서 마음 한 끝을비수로 꽂고 달아난다이 세상 황량한 이중성의 간판들점멸등처럼 깜빡이는데어제는 바람이 되었다가오늘은 사과가 되고 오렌지가 되고 박제가 되어몸의 꼬리를 감추는 사람들탓하지 마라, 눈동자의 크기만큼 보이는세상 안에서...
이영춘
내 안의 아트만atman*
2022.09.06 (화)
벽속에 갇힌 벌레 한 마리, 간헐적으로 숨 멎는다 어둠이 벽을 타고 내려온다 어디로부터 오는어둠의 굴레인가어둠이 소리를 난타한다 난타 된 소리들이 모서리마다 걸린다 실오리같이 갈갈이 찢겨지는소리의 발광체,발광체 속에서 벌레 한 마리 간헐적으로 팔닥인다 숨 멎을 듯 곤두박질치는저만치 고개 숙이고 가는 이 누구인가저 강 언덕을 내려간 한 사람을 지우듯어둠은 나를 지우며 간다물안개 피는 저녁 무렵이다한 사람의 등 뒤에서 그림자...
이영춘
어느 우수憂愁주의자의 하루
2022.07.07 (목)
그가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다그의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이 지나가는지그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저장하는지새 소리 물소리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그러나 그는 듣고 있나 보다가끔 뭔가 생각하면서 희죽- 웃는 걸 보면나는 그의 등 뒤에서 그의 가슴 한쪽을 긋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 듣는다어느 궤도에서인가 잘려 나온 푸른 이파리 같은 그의 목덜미목덜미는 가끔 죽음으로 가는 붉은 신호등 앞에 망연히 서서혹은 의자에 앉아서 귀에는...
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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