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22-06-15 14:22

김춘희 사)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계속해서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가노라면 오른쪽으로 절벽에서 춤추듯 떠 날아내려 오는 색색 행글라이더(Hang Glider)의 모습이 푸른 바다와 어울려 진풍경을 선사해 준다. 띄엄띄엄 어촌이 나오고 수산 가공업 공장들도 보인다. 오른쪽 낮은 언덕 위에 집 뜰에 생대구를 말리는 천연 건조대가 보인다. 차갑게 불어오는 대서양의 바람과 따가운 태양을 받으며 대구는 노랗게 말려진다. 이런 풍경은 1980-1990년 사이 8, 9월 가스페의 모습이었다. 반세기도 안 되는 우리 가족 추억의 한 조각이다.
 그때는 아직도 대구잡이로 재미를 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점점 어획의 수가 떨어지다가 1990년 이후로는 가스페 대구잡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에는 물개 탓을 했다. 물개 사냥을 금지한 후로 급격한 번식이 급증하면서 녀석들이 대구를 다 먹어 치웠다는 설이 있었지만, 요즘은 지구 온난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해수의 온도 상승 때문에 대구 떼는 그들의 서식지를 버리고 더 찬 물이 있는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떠나야만 했다. 지구 온난화는 인간뿐 아니라 물고기도 피해 갈 수 없는 재앙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던 1986년이나 1987년 여름방학,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 강을 끼고 한나절 북쪽으로 가면 리무스키가 나온다. 거기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계속 북쪽으로 올라간다. 쌩 삐에르(성 베드로 마을) 혹은 쌩뜨 안 데몽(산위의성녀 안나 마을) 근처에 깨긋한 모텔에 여장을 푼다. 가스페 반도를 다 돌자면 적어도 4-5일 이상 걸린다. 우리는 반도는 돌지 않고 다만 대구 잡이가 가능한 어촌 마을에 머문다.

고기 잡이 쪽배를 전세 내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 한 가운데로 대구잡이를 나간다. 아니, 고기를 잡는다기보다는 고기를 끌어 올린다고나 해야 할 정도로 많이 잡혔다. 약 30미터나 되는 줄 끝에 갈퀴를 달아 물속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열심히 줄을 잡아 올렸다 놓았다 하노라면 이따금 손에 묵직한 것을 느낀다. 그러면 줄을 팍팍 걷어 올린다. 자그마치 어른 팔뚝만큼이나 큰 대구가 갈퀴에 걸려 올라온다. 아이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재미있어하고 배꾼은 생선 배를 갈라 정리해 준다. 나는 커다란 비닐봉지에 손질된 대구에 소금을 뿌려 가며 차곡차곡 집어넣는다. 이렇게 자루 가득 잡은 생선을 집에 갖고 와서 냉동 칸에 넣어 보관하면 1년 이상 푸짐히 생대구를 먹을 수 있다. 아이들도 가스페에서 갖고 온 대구는 무엇을 해 주어도 잘들 먹었다.
술을 좋아하던 남편은 생대구보다는 건대구를 선호했다. 찬물에 짠 기를 우려낸 후 올리브기름을 바르고 불에 살짝 구운 마른 대구는 맥주 안주로 제격이었다. 태양에 말린 대구는 기계로 건조한 것에 비교도 안 될 만큼 쫄깃하고 맛이 좋았다.

지난 가을 몬트리올 캐나다 국군 묘지에 잠들어 있는 남편을 찾아 다녀왔다. 그리고 가스페를 함께 놀러 다녔던 친구를 찾았다. 푸짐한 점심 대접을 받았다. 친구는 가스페 대구 거래소에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만에 가스페 어물점 아저씨와 통화를 했고 친구는 엄청난 양의 건대구 구입에 성공했다. 나는 친구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건대구를 쇼핑해 왔다. 대구 업자의 말에 의하면 가스페의 대구는 사라진 지 오래 되었으나 바닷바람과 햇빛이 좋아서 북쪽에서 잡은 대구를 구입하여 자연 건조하는 사업은 계속한다고 했다. 말린 대구 값이 비싼 이유다.

반세기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내에 생태계는 온통 수난을 겪고 있다. 한국 동해의 명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해양계의 끊임없는 연구 덕분에 명태알을 인공 부화하여 치어를 방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명태의 어획은 거의 미미하다고 한다. 명태나 대구는 태생이 냉수 어종이 아닌가! 녀석들은 한사코 차가운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대구떼의 수난은 우리들의 어머니(Mother Earth) 지구가 아프기 때문이다. 지구의 열을 식혀야만 인간도 생태계도 모두 살아날 것이다. 물고기들이 원래의 서식지로 돌아오기 위해서라도 어머니 지구의 몸을 식혀드려야만 한다. 그것이 지구 살리기 운동이다. 가스페 대구떼의 수난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대구떼의 수난 2022.06.15 (수)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김춘희
뿌리 내리기 2022.05.25 (수)
4월이 오면 나는 봄바람이 난다. 물병과 아이폰을 챙겨 넣은 망태기를 어깨에 메고 나 만의 산책길을 향해 집을 나선다. 재작년 옮겨 심은 참나물 뿌리가 제대로 잘 자라주면 좋겠다는 바램과 설레임으로 발걸음이 빠르다. 메이플 리지 동네 듀드니 길로 올라 오다가 230 가에서 오른 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 옆으로 잡풀을 헤치고 어렵게 안으로 들어가면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마치 나를 위한 참나물 밭처럼 파란 참나물이 무리지어...
김춘희
말하는 북 2022.02.09 (수)
  몬트리올 공항에서 밴쿠버 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키가 늘씬하게 큰 검은 색 피부의 두 청년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머리를 여러 갈래로 땋아 뒤로 묵고, 황금빛 바탕에 현란한 튜닉과 바지에 번쩍대는 금 목걸이와 금색 운동화를 신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외모보다 마치 새들의 지저귐같이, 큰 관악기의 고음처럼 들리는 그들의 언어가 더 나를 매혹 시켰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기내에서 한 자리 띄어 바로 내 옆에 앉게 되었다....
김춘희
캠퍼의 입양 2021.11.12 (금)
아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이 녀석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었다. 녀석의 나이와무슨 종자인지 그리고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까지 받아 보고 내게도 보여주었다.  '중간치 보다 좀 작은 듯해야 내가 데리고 다니기 좋고, 털 많이 빠지는 것도싫고..' 잔소리 하듯 중얼 거리는 나에게 아들은 녀석의 몸무게와 키는 어느 정도며 영국사냥개 스패니얼이 섞인 잡종이라며 엄마의 산책 견으로 좋을 거라 나를 안심시켰다.  동물 애호가...
김춘희
골목안의 풍경 2021.07.26 (월)
김춘희 / (사) 한국문협밴쿠버 지부 회원  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다. cul-de-sac(컬드싹), 한번 들어가면 나갈 길이 없다는 골목길. 나는 이 길을 주머니 길이라 명명(明明)한다. 주머니길! 얼마나 정 다운 이름인가.  작년 펜데믹이 시작되던 즈음에, 골목 어귀 한 쪽의 숲을 갈아 없애고 자그마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공원이 생겼다. 이 골목길의 아이나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공원에서 공도 차고 나...
김춘희
골목안의 풍경 2021.07.19 (월)
김춘희 / (사) 한국문협 밴쿠버 지부  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다. cul-de-sac(컬드싹), 한번 들어가면 나갈 길이 없다는 골목길. 나는 이 길을 주머니길이라 명명(明明)한다. 주머니길! 얼마나 정다운 이름인가.  작년 펜데믹이 시작되던 즈음에, 골목 어귀 한 쪽의 숲을 갈아 없애고 자그마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공원이 생겼다. 이 골목길의 아이나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공원에서 공도 차고 나 같은 노인들은 산책도 한다. 공원이...
김춘희
두 친구 2021.04.27 (화)
김춘희 / ( 사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그의 생애의 기쁨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  가정을 이루었을 때, 첫 딸 아기를 안았을 때, 캐나다로 이민 온 후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의 마음을 살펴본다.  낯선 남의 땅에 살면서도 소소한 기쁨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친구와의 만남의 인연을 첫 째 로   꼽아  본다 .     1979 년 이민 5 년 차 되던 그해 연말 부부 동반 동창회가 어느 동창 집에서 열렸다....
김춘희
천사와 별 2021.01.18 (월)
김춘희 / (사)한인문협 밴쿠버 지부 회원11월 마지막 주말이 되면 아들네는 모두 소나무 농장으로 나무를 사러 떠난다.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골라 톱으로 자르고 베어 차에 싣고 나면 어른들은 따근한 커피 아이들은  핫 쵸코릿을 사서 마시고  크리스마스 트리 쇼핑을 끝낸다.   거실에 사다리를 높이 올려 나무 끝까지 올라간 아들은 며느리와 아이들이 일러주는 대로 이리 저리 천사의 위치를 고정하고 장식 등을 키면 아이들은 나무...
김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