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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흔적을 접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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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8-09 08:28

민정희 / 사) 한국문협 벤쿠버지부 회원


옷장 정리를 하다 교복을 발견하였다. 중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부모의 결정에 따라 이곳 캐나다로 이민 오게 된 딸아이의 것이다. 더는 입을 일이 없는 교복을 왜 이민 보따리에 넣어 갖고 왔을까. 그 시절의 아이를 기억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나의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서인가. 교복을 펼쳐본다. 순수하고도 신선한 냄새가 전해온다. 규율과 절제, 금기와 인내의 단어가 떠오른다. 냉혹한 현실에 속하지 않은 꿈의 날개와 폭넓은 무지개가 보인다.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처럼 응축된 에너지, 비상하고픈 작은 새의 가슴이 느껴진다.

 

  추운 겨울, 교실 안을 가득 채웠던 학생들의 체온과 난로의 열기, 난로 위에서 덥혀지던 엄마표 맛집 양은도시락. 하굣길, 인사동 초입에 들어서면 물리치기 힘든 유혹의 냄새로 발길을 묶던 제과점. 모두 머릿속에 남아있는 아릿한 잔상이다. 설탕을 듬뿍 얹은 갓 구운 식빵, 젤리를 보석처럼 박은 팥빙수, 조각 떡이 들어 있는 단팥죽의 맛이 아직도 혀끝에 맴돈다.

 

  먼 시간의 저편으로 거슬러 가본다. 키가 작아 1번이었던 나에게 교복은 남의 옷을 얻어 입은 것처럼 컸다. 중학교 등교하던 첫날, 만원 버스에서 사람들 틈에 묻혀 이리저리 쏠리다 떠밀리듯 내렸다. 내리고 나서야 신발주머니를 놓쳤다는 것을 알았다. 차라리 걸어서 통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을지로 5가에서 청계천을 지나 종로2가까지 걸어가면, 인사동 길로 접어든다. 골동품과 고서적, 서예 작품과 동양화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던 길 끝에는 학교가 있는 안국동이 보였다. 6 년을 하루 같이 교복을 입고 걸었던 그 길은, 무거운 책가방을 든 키 작은 소녀가 걷기에는 꽤 먼 거리였다. 크기만 했던 교복이 어느새 맵시 나게 맞았고 어느 날 작아졌던, 내 성장의 모습이 담긴 길이기도 했다.

 

  학교는 안국동 한복판에 있었고, 몇백 년 묵은 은행나무가 옛 돌담을 끼고 우람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철마다 색깔과 모습을 바꾸며, 역사와 전통을 나이테에 새겨 넣은 교정의 안방마님이었다. 우리들의 추억과 정서는 그 은행나무 밑에서 무르익었다. 풋풋했던 꿈과 우정, 아슬아슬했던 짝사랑은 교복 속에서도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끔은 사복을 입고 친구들과 영화도 보러 가고 커피집에도 가며, 금지된 일탈로 스릴 있는 자유를 맛보기도 했다.

 

  교복을 입었던 시절에는 하루빨리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더디게 가는 것 같았던 시간은 어느덧 흘러, 교복을 벗고 꿈꾸었던 자유의 날개를 달았다. 그러나 더는 반항이나 일탈이 통하지 않는 사회적 질서 속에서, 교복은 구속이 아니라 다시 입을 수 없는 아름답고도 따뜻한 보호막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결혼하고 식구 수를 불리면서 나의 위치와 역할의 폭이 넓어졌다. 얽히고설킨 관계의 사슬은 나를 옥죄는 듯 숨 막힘을 주곤 했다. 가끔은 그 어떤 관계나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곳으로 자유롭게 떠나고 싶었다. 어느 날, 어렵고도 긴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걸으면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순례의 길. 800km에 달하는 이베리아반도를 종단하는 여정이었다. 모든 고리를 끊고 자연과의 교감만 느끼자는 목표는 원초적인 본능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배고픔과 피곤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욕심만큼 짊어진 배낭은 내 발걸음을 더욱더 무겁게 했다. 욕심과 본능을 다스릴 수 없는 한, 진정한 자유는 없다는 것을 오체(五體)로 터득하는 시간이었다.

 

  여행 중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생각만으로도 위로와 힘이 되었다. 광활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마주할 때면, 이 벅찬 감정을 가족과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이 샘처럼 솟구쳤다. 한때 굴레로 여겨지던 모든 것들은 내 삶의 바탕이요, 살아갈 이유와 힘이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귀한 체험이었다. 나를 구속하는 것은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딸 아이는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를 고르라고 한다면, 교복을 입었던 시기라고 한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면 끈끈한 전우애 같은 느낌도, 특별한 자부심도 있었다며. 어쩌면 그 기간이 너무 짧아 더 아쉬운지도 모른다고 회상한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가슴이 저리다. 한창 친구들과 우정을 다지고 진로를 고민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시기였다. 사춘기의 성숙이 채 다져지기도 전에 뿌리 뽑아, 낯선 환경의 한복판에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문화의 충격 속에 휩쓸린 우리는 함께 허둥대었고, 엄마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질 못했다. 자라는 과정도 없이 일찍 성숙해진 딸에게 늘 아쉽고도 고맙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교복을 고이 접어 상자 속에 넣는다. 하얗게 펼쳐졌던 기억의 조각들, 꿈과 열망이 가득했던 시절도 함께 접는다. 언젠가 딸에게 배내옷과 함께 물려줄 것이다. 새로운 땅에서 갖지 못했던 귀한 그리움의 흔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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