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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焚身)으로 삶 끝낸 전주 삼남매 아빠…“내가 죽어야 세상이 억울함 알아줘”

밴조선에디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2-06 12:16

[사건 블랙박스] “살아서도 뜨거웠을 텐데, 죽어서 또 불 속으로... 아빠, 어떡해.”

지난 2일 오후 1시30분 전북 전주 승화원에서 A씨의 유족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김정엽 기자
지난 2일 오후 1시30분 전북 전주 승화원에서 A씨의 유족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김정엽 기자

지난 2일 오후 1시30분 전북 전주 승화원. 40대 여성과 고등학생 딸, 중학생 아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전날 세상을 떠난 가장(家長) A(51)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자리였다. 화장로를 향하는 나무 관(棺)을 보며 유족들은 오열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A씨 지인은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이라며 “A씨 초등학생 막내딸은 충격으로 이 자리에 나오지도 못했다”며 눈물을 삼켰다.

A씨는 밀린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해 경영난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폐기물 수거업체 대표다. 지난달 28일 오전 9시쯤 전주시 덕진구 한 폐기물 수거업체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자신의 몸에 인화 물질을 끼얹고 불을 댕겼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지난 1일 숨을 거뒀다. 큰 충격에 빠진 가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A씨가 숨진 다음 날 곧바로 화장(火葬)이 이뤄졌다.

◇믿었던 시행사 “돈 없다”며 나 몰라라

A씨는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전북 전주시 한 빌라 공사 현장에서 건설 폐기물을 처리했다. 5개 동(棟), 64세대로 이뤄진 이 빌라 공사엔 A씨와 협력업체 32곳이 참여했다. 업체들이 시행사와 따로 공사 계약서를 쓰지는 않았다. 32억~34억원에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구두로 합의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공사 대금이 나왔지만, 시행사 대표 B씨는 이후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공사가 중단됐다. B씨는 “빌라가 준공되면 담보 대출을 받아 1순위로 공사 대금을 주겠다”며 공사를 재개할 것을 제안했다. 빌라 13세대(각 1억2000만원)에 대한 분양 계약서까지 써줬다.

A씨와 다른 업체 관계자들은 “나중에 돈을 못 받아도 분양 계약서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며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 지난해 4월 빌라 공사가 마무리됐다. 11월 23일에는 전주 완산구청으로부터 사용 승인도 받았다.

A씨가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건설 폐기물 수거를 했던 전북 전주시 한 빌라 공사 현장./김정엽 기자
A씨가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건설 폐기물 수거를 했던 전북 전주시 한 빌라 공사 현장./김정엽 기자

하지만 B씨는 공사비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 업체 대표들이 B씨와 몇 차례 만났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A씨와 공사 업체 관계자들은 지난달 중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피해 규모는 32억원으로 집계됐다. A씨가 못 받은 돈은 6200여만원이었다.

김정배 대책위원장은 “B씨가 빌라를 담보로 은행에서 38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우리에게 주지 않고, 어디에 썼는지도 밝히지 않는다”며 “전에 받은 분양 계약서는 휴짓조각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에 참여한 업체 대부분이 작은 규모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며 “공사를 마치고 1년 가까이 돈을 받지 못해 경영난을 겪었다”고 말했다. 특히 “A씨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고 했다.

함께 공사에 참여했던 업체 대표들은 A씨가 지난해 중순부터 집을 나와 자신의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생활했다고 전했다. 폐기물을 수거해 처리 업체에 넘기는 일을 했던 A씨는 몇 달 동안 처리 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일감마저 줄어들면서 사정이 더 나빠졌다.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주지 못할 정도에 이르자 A씨는 집을 나왔다. A씨 지인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공사장에 가장 먼저 도착할 정도로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인데 결국 삶을 이렇게 마감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죽어야 세상이 억울함 알아줘”

지난달 28일 오전 9시쯤 전북 전주시 덕진구 한 폐기물 수거업체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현장엔 A씨의 신발과 소주병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김정엽 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9시쯤 전북 전주시 덕진구 한 폐기물 수거업체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현장엔 A씨의 신발과 소주병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김정엽 기자

A씨와 협력업체 대표 10여명은 지난달 27일 오후 5시쯤 시행사 대표 B씨를 다시 만났다고 한다. 밀린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B씨와 몸싸움을 벌였던 한 업체 대표는 목과 팔 등에 찰과상을 입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협력업체 대표들은 “B씨가 도끼를 휘두르면서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날 오후 7시쯤 주변에 “공사 대금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사무실로 갔다. 잠을 청하려 했지만 눈을 감지 못한 것 같다. 주변에선 “B씨 폭언이 머리에서 맴돌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음날인 28일 새벽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았지만, 이날은 소주 2병을 마셨다고 한다.

A씨는 오전 8시40분쯤 온몸에 인화 물질을 끼얹었다. 김정배 대책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 유서도 다 써놨고 더는 살 수가 없다”며 “내가 죽어야 공사 대금을 못 받은 억울함을 세상이 알아줄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A씨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날 먹다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라면./김정엽 기자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날 먹다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라면./김정엽 기자

◇끝나지 않은 공사비 분쟁…”처벌 강화해야”

시행사 대표 B씨에게 돈을 받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은 A씨 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빌라 공사에 참여했던 C씨는 지난달 17일 지인들에게 문자 한 통을 남기고 차량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지인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C씨도 공사를 진행하면서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공사였지만, 전문건설공제조합 등에 공사비 지급 보증 신청도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소규모 공사라도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공사 계약서가 있어야 전문건설공제조합이나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공사비 지급 보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4일 C씨가 공사현장 옥상에 올라가 공사대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김정엽 기자
지난해 12월 24일 C씨가 공사현장 옥상에 올라가 공사대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김정엽 기자

이태호 대한전문건설협회 전북도회 사무처장은 “소규모 공사의 경우 대부분 구두 계약으로 하기 때문에 공사비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며 “영세한 업체들이 지급 보증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가입을 꺼리는데, 이럴 경우 원도급사에서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계획적으로 돈을 안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비 지급 보증은 원도급사 갑질을 막는 역할도 한다”며 “원도급사에게 돈을 못 받으면 공제조합에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원도급사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북 지역에서 형사 전문변호사로 활동하는 김기태 변호사는 “공사 대금 미납으로 형사 소송을 하면 대부분 사기로 고소를 하는데, 원도급사에서 회사를 여러 개 만들어서 자금을 빼돌릴 경우 사기죄 성립이 어려워진다”며 “공사 대금은 민사상 채권 채무 관계로 보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사기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보다 적극적인 수사를 통해 영세한 업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 대금 미납이나 체납에 대해 형사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사 대금을 완납해야 준공 허가를 내주는 규정을 만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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