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이든과 질바이든/트위터
조바이든과 질바이든/트위터
퍼스트레이디가 된 질 바이든 여사가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2일(현지 시각) 최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미식 축구장 하인즈 필드에 마련된 드라이브인 유세장에서 연설하던 모습./AFP 연합뉴스
퍼스트레이디가 된 질 바이든 여사가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2일(현지 시각) 최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미식 축구장 하인즈 필드에 마련된 드라이브인 유세장에서 연설하던 모습./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당선인이 7일 밤(현지 시각)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승리를 확인하는 연설을 한 뒤, 이어 무대에 선 가족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부인 질 바이든(69) 여사였다. 화려한 꽃무늬 드레스에 분홍색 힐 차림의 바이든 여사는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나왔다. 그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수많은 지지자들 중 화답해야 할 쪽을 먼저 안내하는 듯한 제스처도 취했다.

남편의 유세를 돕고 있는 질 바이든/트위터

이 장면은 이 미래의 퍼스트레이디가 바이든 당선인에게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끼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바이든 여사는 남편을 충실히 내조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내조형’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도 가졌지만, 그간 남편의 선거 캠페인부터 인사와 정책 수립에 전방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참모형’의 면모를 두루 보여줬다.

바이든 당선자는 평소 아내를 두고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고, 미 언론들도 바이든 여사를 “바이든의 최종 병기”라고 표현한다. 미 정가에선 “질 바이든은 적극적으로 정권에 간여했던 힐러리 클린턴, 그리고 착실한 아내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은 엘리너 루스벨트를 합쳐놓은 듯한 독특한 퍼스트레이디가 될 것”이란 말이 나온다. 그동안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해온 현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50)와도 확연히 대조될 전망이다.

1977년 재혼한 질 바이든과,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두 아들을 찍은 모습. /바이든 홈페이지
1977년 재혼한 질 바이든과,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두 아들을 찍은 모습. /바이든 홈페이지

질 바이든은 지난 1977년 상처(喪妻) 뒤 홀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던 8세 연상의 조 바이든 상원의원과 결혼했다. 질 역시 재혼이었다. 바이든 자서전에 따르면, 두 사람이 사귀고 있을 당시 6세, 7세였던 아들들이 “우리가 질하고 결혼해야겠어요”라고 아버지에게 조를 정도로 전처 자식들도 질과 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질은 4년 뒤 딸 애슐리를 낳았다.

바이든 여사는 영어 교사 출신이다. 장애아 대상 특수 언어교육이 전문 분야다. 결혼 후 델라웨어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고, 줄곧 고교·대학에서 강의해왔다. 그는 현재 버지니아 노던 커뮤니티 칼리지의 영어과 교수로, 지난 2009~2017년 세컨드레이디(부통령 부인) 시절에도 “나만의 영역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학교 일을 계속했다. 남편의 출장을 따라 에어포스투를 타고 다니면서도 시험지 채점을 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이번 대선 캠페인을 위해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휴직했다는 그는, 지난 8월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돼도 난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현실화된다면 사상 처음 별도의 직업을 갖고 일하는 미 퍼스트레이디를 보게 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질이 7일 저녁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승리 연설을 하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질이 7일 저녁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승리 연설을 하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바이든 여사는 그간 바이든 캠프 운영의 핵심이기도 했다. CNN은 “질이 카멀라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러닝메이트 후보군과 함께 대선 자금 모금 행사를 열거나, 장관 후보들과 정책 간담회도 열면서 남편에게 인사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교원 노조 출신인 질은 “바이든 정부에선 교육자 출신이 교육 장관이 될 것이다”고 공개 선언하기도 했다.

바이든 여사의 정치력과 활동 범위는 웬만한 정치인 뺨친다. 그는 올 초 민주당 경선 때부터 아이오와·뉴햄프셔 등 주요 경선 지역을 홀로 찾아 유권자들에게 “당신이 누구를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누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을지 따져보라”고 호소했다. 이번에 바이든에게 기적 같은 승리를 안겨준 조지아·애리조나 같은 남부 공화당 텃밭도 질 바이든 혼자 출격해 유세했던 곳들이다.


지난 2015년 7월18일 당시 평택 미군 오산공군기지를 통해 방한한 조 바이든(당시 부통령) 후보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연합뉴스
지난 2015년 7월18일 당시 평택 미군 오산공군기지를 통해 방한한 조 바이든(당시 부통령) 후보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연합뉴스

지난해 바이든 당선자가 여성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다는 논란이 일 땐 바이든 여사가 나서 “사람들이 남편에게 얼마나 많이 접근하는지 아느냐. 그는 선을 잘 긋지 못할 뿐”이라고 방어했다. 바이든 여사는 트럼프 대통령 측이 차남 헌터의 부패 의혹을 들추면 “트럼프 당신의 상대는 조 바이든이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고, 바이든의 고령을 거론하면 “바이든(77세)이나 트럼프(74세)나 비슷하게 늙지 않았나?”라고 일갈했다. 직접 아동용 ‘바이든 전기’를 펴내기도 했다.

특히 지난 3월 경선 당시 LA에서 바이든이 연설하던 연단에 시위자 2 명이 뛰어오르자, 질이 남편의 손을 잡은 채 한 손으로 번개같이 이들을 차례로 밀쳐내 격퇴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질 바이든이 지난 3월 LA에서 민주당 경선 당시 남편의 연설대에 뛰어오른 여성 시위자들을 격퇴하는 장면. / AP 연합뉴스
질 바이든이 지난 3월 LA에서 민주당 경선 당시 남편의 연설대에 뛰어오른 여성 시위자들을 격퇴하는 장면. / 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