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인 9일 경찰이 일부단체의 집회를 막기위해 광화문일대 도로에 차벽을 쌓고 인도에도 빽빽하게 바이케이트를 설치해 시민들을 통제했다. 시민들이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 미로처럼설치된 바리케이트 사이를 걷고있다./고운호 기자

“회사 출근은 해야될거 아니에요”

9일 오전 10시 50분 서울 종로구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에서 7명의 경찰과 30대 여성 시민 한 명이 승강이를 벌였다. 이 시민은 “여기서 200여m 떨어진 변호사회관 뒷편에 회사가 있다. 집회가 아니라 회사를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경찰은 “통제 중이라 지나갈 수 없다”며 시민을 막아섰다.

한글날인 9일 오전 경찰이 예정된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과 세종로, 서울광장 일대에 차벽을 세우고, 인도에도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곳곳에서 검문을 실시하고있다,/전기병 기자
한글날인 9일 오전 경찰이 예정된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과 세종로, 서울광장 일대에 차벽을 세우고, 인도에도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곳곳에서 검문을 실시하고있다,/전기병 기자

경찰은 “차벽을 지나서 크게 돌아가라”며 약 1㎞ 정도 걸리는 우회 루트를 안내했다. 그러자 시민은 “회사가 저 앞인데 왜 돌아가라는 것이냐”며 항의했다. 3분여간 실랑이 끝에 결국 여경 한 명이 다가와 ‘제가 회사까지 옆에서 안내하겠다’며 시민의 손을 잡았다. 시민은 경찰을 뒤따라가면서도 분이 안풀리는 듯이 “출근은 해야될 거 아니에요!”라고 소리쳤다.

9일 오전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에도 돌발적인 집회 및 시위를 차단하기 위한 정부와 경찰의 단속, 통행로 차단 등으로 광화문 광장 인근과 도심 곳곳에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경찰은 서울 시내 진입로 57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력 187개 중대 1만2000여명을 동원해 도심으로 들어오는 차량 등을 점검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전 7시쯤 광화문에서 서울시청으로 이어지는 세종대로와 인도 등에 차벽 설치를 마쳤다. 개천절 당시 차벽이 광화문 광장을 빙 둘러싸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일부 도로변에만 만들어진 상태다. 대신 인도에는 케이블로 고정된 철제 펜스를 미로 처럼 둘러치고, 광화문 광장 등 주요 집회 구역엔 펜스를 외곽에 둘러쳐 진입할 수 없게 했다.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차벽과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시민들이 미로를 걷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고운호 기자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차벽과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시민들이 미로를 걷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고운호 기자

광화문 방향으로 진입하는 차량을 차단하는 검문소도 재등장했다. 한강 27개교 각 북단에 설치된 ‘1차 방어선’ 검문소, 도심 30곳에 ‘2차 방어선’ 검문소를 통해 운전자와 차량 내부를 단속한다. 개천절(90개소) 보다는 33곳 줄은 57개소다.

◇인도에선 곳곳에서 보행자 통제…신분증도 확인

이날 오전 10시쯤 본지 기자가 시청역 7번 출구에서 광화문 7번출구까지 800여 미터를 걸어가면서 만난 검문소는 총 9곳. 경찰은 취재 목적으로 기자증을 소지한 사람에 한해서는 통과를 허락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광화문 광장 ~ 시청역까지 도로를 모두 통제하고 우회를 요구했다.

포르투갈에서 서울대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는 베르나르토 마르크(21)씨는 이날 덕수궁을 찾아왔다가 광화문 일대 도로가 전면 통제된 것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공휴일(한글날)을 맞이해서 친구들이 이곳 저곳 다 놀러가길래, 나와 친구는 덕수궁을 찾아왔다. 도로가 통제됐는 줄은 몰랐다”며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유럽에서는 대통령을 향한 시위던, 누구를 향한 시위던 이 정도로 통제를 한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9일 오전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특별한 단속 없이 광화문 광장을 통과하는 모습. /원우식 기자
9일 오전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특별한 단속 없이 광화문 광장을 통과하는 모습. /원우식 기자

단속 기준이 모호해 보이기도 했다. 차량과 달리 자전거에게는 특별한 통제가 없었다. 오전 11시 30분 자전거를 탄 약 15명이 1m 거리두기를 준수하지 않은 채 도로 한가운데 서 있다가 출발했다. 같은 시각 인근 검문소에서는 차량을 돌려보내고 있었지만, 자전거에게는 목적지를 묻는 등 조치가 없었다.

광화문 광장 인근 지하철역 4곳도 무정차 통과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날 낮 12시 30분 기준 정상 운영한다. 경찰은 무정차 시간을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다만 광화문 광장 방향 출입구는 통제됐다.

◇ “하루 종일 테이블 하나만 팔아”, 상인들 울상

시민들 통행 통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인근 가게들이었다. 세종대로의 한켠에 있는 슈퍼마켓 주인 80대 홍모씨는 이날 오후 ‘오늘 매출은 어떻느냐’는 질문에 “보면 모르냐, 여기 이렇게 다 막아 놨는데 무슨 매출이냐”며 “누가 들고 일어나서 펜스들 다 안 치우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인근 동남아 음식점도 이날 오후까지 한 테이블만 판매했다. 매장 테이블은 20~25개 정도다. 통행이 제한되기 때문에 배달도 여의치 않다. 배달원들은 차벽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도로 안쪽까지 걸어와 음식을 받는다. 통행을 제한당해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사장 전모씨는 “평소보다 하루 매출이 230만원 정도 줄었다”며 “배달도 10분이상 넘게 걸린다”고 했다.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변에 차벽이 설치돼 있다. 2020.10.9. / 고운호 기자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변에 차벽이 설치돼 있다. 2020.10.9. / 고운호 기자

◇곳곳에서 기자회견 “집회 자유를 허(許)하라”

일부 보수단체들은 광화문 인근에서 10명 미만 규모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행법상 집회는 사전 신고를 해야 하지만, 기자회견은 신고가 필요없다.

보수 단체 8·15 국민비상대책위원회는 오전 11시 서대문구 독립문역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4·15 총선은 부정 선거” “낙태법 개정안 반대” 등을 주장했다. 오전 11시30분, 한 보수 단체는 종로구 돈화문에서 정부의 감염병 방역을 성토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고 했다. 오후 12시 남대문 ‘정부의 교회 탄압’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에서는 “마스크 끼고 거리두기 유지하는데 왜 예배를 못하게 하느냐”며 “대면 예배 허가해달라”고 주장했다.

낮 12시 15분 쯤 돈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연 단체와 경찰이 마찰을 빚었다. 주최 측이 “광화문에서도 기자화견 하겠다”며 돈화문에서 걸어가던 중 안국삼거리에서 경찰 20여명과 대치했다. 집회 측은 “왜 우리만 막느냐”고 하자 경찰은 “다른 시민 분들도 통행 목적을 확인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거리행진을 하던 강연재 변호사 등이 경찰에 의해 광화문 쪽으로 가지 못하게 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거리행진을 하던 강연재 변호사 등이 경찰에 의해 광화문 쪽으로 가지 못하게 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후 1시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강연재 변호사가 구속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입장문을 대독했다. 전 목사는 “정부가 고발, 강제 연행, 체포, 구상권 청구로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며 “방역과 집회 자유가 조화를 이루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강연재 변호사와 기독자유통일당 대표 고영일 변호사 등 8명이 ‘X’자 표시를 한 마스크를 쓴 채 참가했다. 기자회견을 구경하던 일부 보수 유튜버들은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전 목사는 ‘위법한 집회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보석 조건을 어겼다는 이유로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오후에는 차량 시위, 조국·추미애 자택 행진

낮부터는 드라이브스루 시위도 시작됐다. 보수단체 애국순찰팀의 차량 9대는 이날 정오 수원역에서 짧은 기자회견을 가진 뒤 출발했다. 우면산터널을 거쳐 오후 1시 30분 서울에 진입해 서초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택 인근으로 향했다. 오후 4시 30분까지 추미애 장관의 광진구 자택을 종착지로 행진할 예정이다.

우리공화당의 차량시위대는 오후 2시 송파구 종합운동장 인근에서 출발, 잠실역∼가락시장사거리∼올림픽공원사거리∼몽촌토성역 코스로 이동한 뒤 오후 6시에 종합운동장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