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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말카(Kalamalka)호수 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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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8-10 09:02

김춘희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예정했던 모국 방문은 한바탕 꿈이 되어 버렸다. 언니와 형부께 드리려고 한 올 한 올 따다가 말려
예쁘게 포장 했던 고사리 묶음 단은 다른 선물과 함께 아직도 저만치 덩그러니 놓여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모든 계획을 그렇게 뒤 헝클어 놓았다. 넉 달 이상을 자가 격리 아닌 격리
생활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따분해지고 어딘가 가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내 속에서
기어오르고 있을 때, 마침 아이들이 오카나간 지역으로 3박 4일 가족 여행을 한다고 초대해 주었다.

코로나로 아직은 조금 두렵기도 했고 또 늙은이가 젊은 애들이 놀러 가는데 그만 집이나 보고
있을까 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집에서 혼자 뭘 하려고 하느냐고 함께 가자하여 바람이나 쏘일까
해서 따라 나섰다. 아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아들 차로 가는 게 맞지만 아들은 캄룹스(Kamloops)에
사는 친구들과 카누 여행을 한다고 미리 떠나는계획이라 나는 딸과 함께 이틀 뒤에 떠났다.

가는 곳마다 초목은 푸르고 띄엄띄엄 도로 옆 숲을 헤치고 흐르는 물들은 마치 동물들의 기갈을
풀어 주는 생명수의 흐름 같았다. 자연은 말없이 누가 보거나 말거나 시새움 없이 제철을 만나
고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메이플 리지(Maple Ridge)를 떠나 호프(Hope)라는 곳을 지나면서 나무숲은 더욱 우거져서 때로는
가파른 산에 울창한 활엽수들 사이로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동물들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호프를 지나 얼마를 갔을까, 갑자기 넓지 않은 도로 앞으로 덩치 큰 무스 한 마리가 황급히
길을 건너고 있었다. 운전하던 사위가브레이크 페달을 빨리 밟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녀석과 충돌 할 뻔했다. 나는 동부에 몇 십 년 살았어도 한 번도 무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무스와의 첫 대면을 여기 비시(BC)에서 치른 셈이다. 부채처럼 큰 뿔이 없으니 암놈이다. 조금
놀랬지만 자연의 신비를 맛본 듯 신기했고 여행하는 재미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아들네와 약속했던 칼라말카 호수 작은 마을로 들어 왔다. 언덕을 깎아 층층이 집을 지어 멀리서
보면 모두가 별장 같았다. 대궐 같은 예약된 집 이층 베란다에 나오니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듯한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칼라말카 라는 말뜻은 물과 치유라는 두 인디언 단어를 합쳐 만들어
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7월 초였고 아직은한 여름의 더운 날씨는 아니었다. 한 여름
햇빛이 작열하는 날 호수는 청옥색을 띄우다가 기온이 낮아지면 에메랄드색으로 변한다는 신비한
색깔은 보지 못했지만 나는 충분히 호수의 신비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먼 옛날
유학시절에 가 보았던 카프리 섬에서 쪽배를 타고 바다 동굴에서 보았던 옥색 바닷물이 떠올라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호수 물만 보고 있어도 치유가 일어날 것 같다.

도착 다음 날 아들네와 딸네 우리 7식구는 산책을 나갔다. 칼라말카 주정부 파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들어서려고 하는데 메추라기 한 마리가 우리를 반기듯 날아가지도 않고 입구에서
서성 거렸다. 희고 검은 줄무늬 메추라기를 보며 구약성경 탈출기에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먹었다는 메추라기 이야기가 생각났다. 저렇게 굼뜨니 잡기도쉬웠을 것이다. 메추라기는 이
지방에 많이 서식하는 동물 중에 하나라고 한다. 또 여기 저기 심심치 않게 보이는 사슴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평화를 즐기고 있었고, 산책 길 언덕 저만치 아랫동네 목장에는 양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코로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 버리고 호수 마을의 따스한 공기가 내
뺨을 스쳐 지나간다. 다음날 나는 나만의 조용한 시간과 휴식을 위하여 집에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카누를 타기도 하고 여기 저기 와이너리(winery. 포도주 양조장)에서 와인테스트를 즐긴 모양이다.

셋째 날 우리는 다시 집을 향하여 떠났다. 가는 길마다 체리 농장에 빨간 체리가 다닥다닥 달려
보기에도 탐스럽지만 체리를 따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인 것 같았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손이 모자라는 것이다. 지나는 길에 우리는 한 와이너리에 차를 세우고 모두 와인
테스트를 하러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술을 못하므로 마당에 잘 차려진 의자에 앉아 포도밭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없이 펼쳐진 포도나무 밭, 길게 뻗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푸른 포도송이가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포도송이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달려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포도
가지 버팀목 때문이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버팀목, 그리고 그것을 이어주는
단단한 줄을 타고 가지들은 편하게 그 위에 몸을 의지하고열매를 맺지 않는가. 포도 수확을 가능케
하는 균형 있는 버팀 목과 밧줄은 포도 수확의 필연적 메커니즘인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버팀목으로 살고 왔는가? 사색에 잠겨 있는데 딸이 ‘엄마 여기 봐!“ 하고 찰깍
사진을 찍어 주었다. 오늘도 나는 그 사진 안에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섰던 자리들이 버팀목의
자리였는지 아니면 균형 잃은 버팀목으로 살지나 않았는지 인생 막장의 성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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