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 캐나다 한국문협
여러 생명체들로 북적 이는 정원은 이른 봄 기지개를 펴면서부터 여름을 지나 초가을에
들어선 지금까지 숨차게 달려왔다. 꽃이며 나무, 벌레나 새들이 제각각 부산스레 술렁이며
마당을 활기로 가득 채웠다. 식물들은 끊임없이 가동되는 생명의 생산라인을 따라 예쁜
꽃들과 싱그러운 잎들, 탐스런 열매들을 척척 내놓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알맞은 성장을
하느라 예민하고 분주했다. 사이사이 벌레들도 지지 않고 터전을 잡느라 설레 발을 쳤다.
개미는 땅을 헤집어놓았고 거미는 거대한 집을 지었다. 새들은 신이 나서 까불까불
드나들었다. 나무와 꽃들의 일 년 살이 도 사람들의 생활만큼이나 바쁘고 힘겹긴
마찬가지다.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정원을 많이 돌봐주지 못했다. 술렁술렁, 시끌벅쩍한 식물들의
성장 통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부는 열심히 자라 한여름을 이겨내었고 어떤 것들은 소리
없이 사라져 쇠했다. 식물들의 한살이는 찬란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스스로 꾸려나가는
생명의 신비가 고맙고 기특했다. 이 와중에 같은 식물이건만 늘 환대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잡초도 한여름을 지나며 무자비하게 무성해졌다. 명절도 다가오니 틈을 내야만
했다. 작정하고 일주일 내내 풀들을 정리하고 무성한 가지를 쳐내고 시든 꽃들도
잘라주었다. 악다구니를 하는 모기들과 전쟁을 치러가면서.
오랜만에 개운해진 마당을 보며 앉았다. 마당 욕심이 있는 나는 틈만 나면 꽃들을 사서 심고
나무들을 사들였다. 다른 집 정원에 못 보던 꽃이 있으면 나도 꼭 구해다 심어야 직성이
풀렸다. 매일 인터넷을 뒤지며 새로운 꽃이 나왔는지 살피고 신품종이 출시되면 바로
구매했다. 요즘 인기 많은 꽃들은 금세 품절이 되기 때문이다. 사계절 꽃들이 끊이지 않게
갖춰놓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려 했다. 꽃이나 나무에 대한 욕심은 다른 욕심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자꾸 더 들이려 했다. 점점 일이 많아졌다. 체력이 필요한 일이고 정성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돌봄이 필요한 생명들이기 때문이다. 마당 일이 쌓여가면서 보기만
해도 지쳐갔다.
한 해를 그저 바라만 봤던 마당이 중요한 것을 일깨워주었다. ‘소유’한다는 것에 자주
생각이 머물렀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은 물건에 대한 욕심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많이
많이’를 외쳤는데 식물을 갖고자 하는 욕구도 어찌 보면 다른 물건에 대한 소유욕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꾸고 손질할 수 있는 만큼, 그 생명과 유쾌하게 지낼 수
있는 만큼이 내가 가질 수 있는 한계일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도 지나치면 그저 그런
소유욕과 다르지 않다. 대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형편을 살펴주는 것이
즐거움이고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마당을 가꾸며 식물을 접하며 사는 것은 무욕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은 여기서도
쉽게 욕심에 빠진다. 무욕은 어디서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도 단지
욕심인지 삶의 윤기가 되는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은 소유라기보단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스스로 자라고 소멸하고 또 다른 생명을 낳는다. 하지만 식물이 스스로
자라도록 하는 보살핌과 정성은 꼭 들어가야 한다. 꽃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만져주고
돌봐주다 보면 내 마음의 모양새가 잘 드러난다. 좋은 일이다.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으면 귀한 게 무엇인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김선희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