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
그리 만만한일 아니기에 숨 죽여 울던 날도 있었니라
들국화 아름 피어 시냇물에 얼비치던 날
가을비 촉촉이 내려 등성이가 오소소 추워져
햇살 한줌이 그리 그리운 날도 있었니라
일찍 떠나 아무 기억도 사라진 아버지 잊은 지 오랜
등꽃 피던 날 아침처럼 휭 하든 기억도 이제 세월을 이고
한 줌이나 될까 모를 울 엄니 가는 허리 흔들며
후루루 흘러내린다.
자식들 자라 줄줄이 떠난 자리엔 하얀 모란이 피어도
꿈으로도 잊으면 안 되는 새끼들의 모습 붙들고
늘 그리움에 젖는다.
그것만이 생의 전부로 남은 아흔 넷의 어머니
자는 듯이 가야할 터인데 기도 제목으로 일번을 두시지만
그래도 자식들 곁에 머물고 싶은 정이야
손자 녀석 장가가는 것 보고 가야할 터인데
숙제처럼 염려시다.
개명세상(開明世上)에 좋은 것 보고 하고 싶은 것이야
사람의 욕망이니 너거 아부지 색(色) 보는 일은
당연한 일이니 못 본 척 하거라
산들산들 기생첩 앞세우고 헛기침하시던
세상 활량이시든 아버지 가신지도 옛 그림자처럼 아득고
그런 엄니 내 가슴에 별처럼 자리하신다.
칠순을 바라보는 여식을
아직도 어여쁘다 눈에 담고 계시니
송구한 마음 전할 길 없어 만리(萬里) 바다 넘어
목메여 긴 편지를 띄운다.
참빗으로 빗어 내린 반달 같은 쪽머리
흰 고무신에 고운 한복 차려입으신 어머니
오늘도 사쁜사쁜 천국나들이 가실게다.
**천국나들이: 교회가시는 어머니의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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