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집밥 이야기”

김유훈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1-06 09:46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지금  한국의 T.V.방송에서는 “집밥”과 관련된 프로가 한창이다. 각 방송사 마다 요리사들이 등장하여 음식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 즉 “먹방”이라 불리고  있다. 심지어 백년손님에서 예전 유명 씨름선수의 장모님까지 이 먹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여 활약 중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먹는 일”이다. 잘 먹어야 건강하고 사회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 말에 “밥이 보약이다”란 말이 전해 내려 오듯이 밥을 잘 먹는 것이  건강의 척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하여도 홀로 먹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하면 더욱 맛있고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와 함께 식사 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집을 나설 때 밥은 물론 각종 반찬을 작은 그릇에 담아 짐을 꾸린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나 매일 소풍 떠나는 사람이야”하며 들 뜬 기분으로 집을 떠나온다.  그리고 트럭에 와서 음식은 냉장고에 잘 보관하여 갈 길을 재촉하며 달린 후 식사 때가 되면 그 음식을 꺼내어 홀로 먹노라면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벌써 이런 나의 트럭생활 13년 째,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집밥은 며칠마다 이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트럭 안에서  나 홀로 하는 식사이다. 그러나 외국에서의 삶이 녹녹치 않고 이만한 수입 역시 이민자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라 이 외로움은 사치려니하며 나 홀로 하는 식사를 잘 견디고 있다.

그리고 운전 중 여러가지를  돌이켜보면 우리 두 애들 키우며 함께 오손도손하며 살 때가 즐거운 추억이였다. 네 식구가 식탁에 앉아 하께 떠들며 서로 이야기하고  애들 이야기 들어 줄 때 식탁 밑에 두 강아지들이 서로 먹을 것 달라고 짖어대는 그 소란했던 모습이 더욱 그립다. 그러나 세월이 어찌 이렇게 빨리 지나갔는지 어린 두애들은 벌써 다 커서 집을 떠나 있고 나와 아내가 애들 없이 빈 둥지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나 역시 집을 떠나 노숙자 처럼 트럭에서 생활해야 한다. 결국 집에 혼자 남아있는 아내 역시 홀로 식사를 하고 있겠구나 하고  아내가  안스러워진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하루에 여러번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어디냐?, 언제 쯤 집에 와?”하며 묻는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밥”, 하루에도 세번을 먹어야하는 우리들의 밥이다. 그 “밥 중에 밥”은 집밥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집밥을 먹는 시간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언젠가 어느날 세상을 떠날 때를 “밥 숫가락 놓는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들의 삶과 죽음이  “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대대로 모든 인사가  “밥”과  관계가 많다. 집 떠난 있는 식구에게 “밥이나 먹고 다니냐?”, 아침 인사가 “진지 드셨습니까?”, 등등 밥은 우리 민족의 가장 민감하고 절실한 생존의 대명사였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좋아져서 밥의 절실함을 잊고 지내겠지만 나처럼 트럭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밥중에 밥”인  “집밥”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지난 세월 돌이켜보면 가족들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장면들은 추억속에  남아있지만 그래도 지금 집으로 달려가면 아내가 준비한 집밥을 함께  할 수 있는 희망에 나의 마음과 핸들은 한결 가볍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내가 카나다에 온지 벌서 25년, 처음 정착한 곳이 써리였는 데  외국치고는 좀 시골 분위기가 있었다.  뿐만아니라 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이다. 시내로 나가려면 좁은 패툴로 브릿지를 이용해서 가는 길과 No.1고속 도로를 이용해야한다. 더우기 나는 유학생으로 밴쿠버 서쪽 끝에  있는 Regent college를  다니는 데 너무 힘들어 부득이 이사까지 하였다. 그 후 내가 다시 써리에  정착한지 20년, 처음에 낯설고 외국같던 이곳은 이제 우리...
김유훈
밴쿠버의 4월, 정말 아름답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계절이다. 시내 곳곳을 다녀봐도 정원과 같은 꽃길이 수없이 널려있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내가 와서 살게 된 것은 운명인지 필연인지 잘 몰라도 나에게 행운이 아닐 수 없다. 25년 전 지금과 같은 봄날, 우리 가족은 유학생인 나를 따라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당시 나는 처음 본 꽃길과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무척...
김유훈
“집밥 이야기” 2015.11.06 (금)
 지금  한국의 T.V.방송에서는 “집밥”과 관련된 프로가 한창이다. 각 방송사 마다 요리사들이 등장하여 음식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 즉 “먹방”이라 불리고  있다. 심지어 백년손님에서 예전 유명 씨름선수의 장모님까지 이 먹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여 활약 중이다.생각해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먹는 일”이다. 잘 먹어야 건강하고 사회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 말에 “밥이 보약이다”란 말이 전해...
김유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밴쿠버는 쾌적한 자연 환경,  안락한 주거,   그리고 여러가지로 조사한 생활 조건들의 평가로 세계에서 가장 상위권에 있는 곳이다. 카나다 정부는 이민 신청자들의 재산, 학력,경력,  나이 그리고 언어등등을 점수로 환산하여 이민을 허락하는 정책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민을 온 많은 분들은 어느정도 본국에서 성공한 계층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상당수의  이민자들은 한국에서...
김유훈
 한국에서는 “의리”가 열풍이다. 얼마나 의리가  없으면 의리가 재조명 되었는 지를 생각해 볼 때  좀 서글퍼진다. 그러나 과거 우리들의 6-70년대는 의리가 당연했을 뿐만아니라 이를 배신하면  요즘세대의 표현으로 왕따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되는 과정에서  의리는 대부분  온데 간데 없어지고 말았다.그런 잊혀진 의리를 오랫만에 발견하게 된 일이 있었다. 지난 9월 나는 한국에 가게 되었다. 동생이 어머님께서...
김유훈
나의 카나다 생활, 벌써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언제나 젊음이라 생각했던 내 나이 내년이면 정부에서 노인연금을 준다고하니 실감이 안간다. 그동안 이곳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빠르고 특별히 이룬 것이 없어  좀 후회가 든다. 유학과  목회는 미완성 그리고  커피가게와  지금의 트럭커 일까지 나의 발자취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서 함께 지내온 많은 분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과거 한국에서의 나의 삶은  극히 적은...
김유훈
우리 가족의 고향은  평북 의주이다.  해방 후 사업을 잘 하셨던 아버님께서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게 된 이유로 서울로  오게 되셨다. 그래서 형은 신의주에서 나는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우리 가족을 서울로 오게한 분은 아버님의 여동생이였다.  즉 우리 고모 두분이 이미 서울에 계셔서 아버님을 오도록 하였다. 이렇게 두 분의 고모님 덕으로 우리 가족은 서울로 올 수 있었다.  당시 큰 고모님은  남편과  올망 똘망한 남자...
김유훈
우리가 살고 있는 밴쿠버 아랫 쪽에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이 있다. 내가 트럭을 몰고 미국으로 가려면 언제나 이 도시를 통과해서 다른 지역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노라면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 생긴다.  왜냐하면  “라디오 한국”이 24시간  우리말 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 방송은 고국 소식은 물론 노래, 교민 소식, 각종행사...
김유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