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빚 갚으면 바보” 버티는 채무자들

손진석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2-27 09:43

'국민행복기금 18조' 공약 기대… 연말부터 빚 갚는 비율 하락
보통은 연말에 빚 많이 갚아, 이번엔 '도덕적 해이' 생긴 듯
정부 주도 서민금융상품도 연체율 급격히 오르는 추세
"혜택받을 대상 빨리 정하고 여유있는 층, 빚 탕감 막아야"

"새 정부가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빚을 탕감해 준다니까 그걸 신청할래요. 그러니 지금은 빚을 갚을 수 없어요."

A신용정보의 채권추심원 최모씨는 지난주 빚을 갚으라며 정모(44)씨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 채무자 정씨는 은행에서 빌린 아파트 중도금 대출 600만원을 갚지 않고 있는데, 연체 기간이 길어지면서 은행 측이 A신용정보에 채권 추심을 의뢰한 상태다. 정씨가 계속 버티자 추심원 최씨는 "420만원까지 원금을 감면해줄 테니 갚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정씨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더 많이 감면받을 수 있으니까 당분간 못 갚는다"며 전화를 끊었다.

빚 탕감 공약 기대하고 빚 안 갚아

박근혜 정부가 연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가계 부채 대책을 공언하면서 채무자들 가운데 빚을 갚지 않고 버텨보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은 국민행복기금 18조원을 조성해서 금융회사가 가진 연체 채권을 싼값에 사들인 다음 채무자에게 원금의 50%(기초생활수급자는 70%)까지 감면해주고 장기 분할 상환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공약에 기대를 갖고 채무자들이 빚 갚기를 회피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본지가 고려·솔로몬·SGI·우리·서울신용평가 등 신용정보업체 5개사의 채권 추심 매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5개 사의 지난해 12월 매출은 182억원으로 11월보다 13억원 감소했다. 채권 추심 매출이란 신용정보회사가 금융회사의 채권을 받아낼 경우 일정 비율로 수수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이게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채권 추심이 잘 안 됐다는 뜻이다.

이런 결과는 채권 추심업계의 '상식'을 깨뜨린 것이다. 채무자가 연말에 빚을 털고 가려는 심리가 있고 추심업체도 연말 실적을 쌓으려고 바짝 영업을 하기 때문에 매년 11월보다 12월에 실적이 높게 마련인데 유독 2012년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4년 동안은 이들 5개 업체의 11월 대비 12월 매출이 어김없이 증가했다. 이에 대해 한 신용정보회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일부 채무자 사이에 빚 갚기를 거부하는 행태가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경기가 더 나빠져 빚 갚기가 더 버거워진 것이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연말에 채권 추심 매출이 줄었다는 건 빚을 안 갚겠다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서민금융도 연체율 상승

최근 은행권에서 주택담보대출자들이 법원에 부채 탕감을 기대하며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점도 예전엔 못 보던 풍경이다. 주택대출자들의 경우 예전에는 집값보다 전체 빚이 많더라도 개인회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은행이 집을 경매에 넘겨 오갈 데 없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관리부장은 "은행들이 새 정부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집을 마음대로 경매에 부치긴 어려울 것이란 계산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햇살론·미소금융·새희망홀씨 등 정부가 지원하는 서민금융 상품의 연체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것도 대출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확산을 걱정하게 만드는 점이다. 미소금융의 경우 연체율이 2010년 1.6%였다가 작년 9월에는 5.2%까지 치솟았다. 그 이후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지만, 금융 당국은 박 대통령이 가계 부채 대책을 공약으로 발표한 11월 이후 연체율이 더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대출자들이 서민금융 상품은 정부가 보증을 서기 때문에 우선 부채 탕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3년 부채 탕감 악몽 재현되나

채무자들 사이에 모럴 해저드가 확산하는 징후가 포착되면서 금융권에서는 2003년의 악몽이 재연될까 걱정하고 있다. 당시 카드 사태 파장이 커지자 자산관리공사는 2003년 10월 원금의 최대 30%까지 면제해준다고 발표했고, 이 때문에 당시 카드사들은 채권 회수에 어려움을 겪어 경영 상태가 더 나빠졌다. 당시 LG카드에서 근무했던 한 금융권 인사는 "탕감 방안이 발표되자마자 갑자기 연체율이 올라서 증자(增資)를 통한 회생안이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행복기금 혜택을 받는 대상을 하루빨리 확정해서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구제 대상자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움을 못 받고 여력이 있는 사람이 채무가 면제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미국에서 오는 13~14일(현지 시각) 내년 세계경제와 금융 시장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발표가 잇따라 나온다. 11월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3일 발표되고, 이튿날인 14일 오후...
“화이자 치료제는 팬데믹을 끝내는 원자 폭탄 같은 겁니다.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돼 2차대전이 끝난 것처럼요.”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의 진행자인 짐 크레이머는 5일(현지 시각)...
일손 내려놓은 한국 관료사회
"나라 위해 일한다고 애썼는데 누굴 위해 일했단 말인가".."정책 결정에 최씨 개입…신뢰 상실해 추진동력 잃어"..장차관들 "동요하지 말라" 메시지 보내 다독거리기[한국]최순실씨의 국정...
지난 8일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58)이 탈옥 6개월 만에 붙잡힌 계기가 된 미국 배우 숀 펜과의 인터뷰를 주선한 여배우 케이트 델 카스티요(44)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네팔 대지진 참사… 餘震·눈사태·후폭풍 계속 이어져
25일 네팔 대지진에 따른 눈사태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8848m)에서 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가 난 가운데, 정상과 베이스캠프 등에 800여명이 고립돼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27일까지 이미...
유라시아·인도 지각板충돌지점 위치한 네팔건축물 안전규제 거의 없어이번 지진의 피해가 큰 이유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 약 700달러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이 지진에 무방비...
교황이 대학살로 지칭하자… 터키, 바티칸 대사 소환
“20세기 최초의 대학살(genocide)로 여겨지는 비극을 아르메니아인들이 겪었습니다.”12일(현지 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1915년 발생한 아르메니아 대학살 100주기...
경찰서장 辭意… 경찰관 2명, 시위대가 쏜 총에 맞아
작년 8월 백인 경찰관이 쏜 총에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이어져온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12일 새벽 경찰관 2명이 시위대가 쏜...
점령 지역에 있는 인류의 문화 유산을 파괴하고 있는 IS가 2000년 역사를 가진 이라크의 고대 도시 유적인 ‘하트라’도 부수기 시작했다고 이라크 관리들이 7일(현지 시각) 밝혔다.하트라는 고대 파르티아 제국이 건설한 원형 요새 도시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조직원 6000명… 충성 맹세
 나이지리아 무장단체 보코하람은 여학생들을 집단으로 납치한 뒤 팔아넘기고, 축구 경기를 시청하다는 이유로 폭탄 테러를 가해 수십명을 살해하는 등 기행적이고 악질적인 범행을...
2일(현지 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펑크서토니.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몰려나와 그라운드호그(groundhog·사진)라는 동물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라운드호그는...
국제 유가(油價)가 기록적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글로벌 석유 기업들이 수조원대의 대형 투자 프로젝트를 줄줄이 중단하고 있다. 기반 산업인 석유 분야의 투자가 위축된다는 점에서...
'사면초가' 푸틴, 밀 수출 통제
세계 5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루블화 폭락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자국산 밀 수출 통제에 나서면서 세계 곡물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또 러시아 중앙은행이 이번 경제 위기 후 처음으로...
한국계 배씨는 시드니 공대생, 중국계 첸도 대학 재학 중
15일 오후 5시쯤(현지 시각) 이란계 무장 괴한 만 해론 모니스(50)가 인질극을 벌이던 호주 시드니 시내 린트(Lindt) 카페. 경찰이 삼엄하게 에워싼 가운데 앞치마를 두른 두 명의 동양계 여성...
2012년부터 올 7월 사이 3만4000여개 세관 신고
올해 들어선 프라다가 역전한국 사람들은 어떤 명품 브랜드를 선호할까. 해외 여행객들이 사오는 물품을 브랜드별로 분류해봤더니 핸드백은 루이뷔통, 시계는 태그호이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6일 관세청이 기획재정위원회 강석훈 의원(새누리당)에게...
세계에서 7번째...1인당 소득 3만달러·인구 5000만명
소득 수준·인구 규모 다 갖춘 强國 대열에 올라선다는 의미내년에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달러와 인구 5000만명을 동시에 갖춘 국가를 의미하는 '30―50 클럽'에 가입한다. 전 세계에서...
수령자 90%가 공항 검색요원
외국에 나갈 때 세관에 미리 신고하지 않고 미화 1만달러(1044만원) 이상의 현금을 소지하면 불법입니다. 외국환거래법 위반이죠. 작년 한 해 동안 1727명이 688억원에 해당하는 돈을 몰래...
[한국] 내년부터 해외 여행객이 면세(免稅)로 살 수 있는 물품의 구입한도가 현재 1인당 400달러에서 600달러로 상향 조정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6년간 400달러로 묶여 있는 해외 여행객 면세 한도를 시대 변화에 맞게 600달러로 올리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신참 3급 항해사가 운항… 선장은 조타실 밖에서 휴식
승객 475명을 태우고 침몰한 세월호의 원래 선장은 1급 항해사 신모(47)씨였다. 하지만 신씨가 휴가를 떠나자 2급 항해사인 이준석(69) 선장이 운항을 맡았고, 16일 오전 사고 순간에는 3급...
'국민행복기금 18조' 공약 기대… 연말부터 빚 갚는 비율 하락보통은 연말에 빚 많이 갚아, 이번엔 '도덕적 해이' 생긴 듯정부 주도 서민금융상품도 연체율 급격히 오르는 추세"혜택받을...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