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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자빠졌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9-19 00:00

김미화는 웃기는 여자다. 일자 눈썹을 진하게 붙인 그녀는 남편에게 함부로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댔다. 그 모습에 남자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여자들은 통쾌하게 손뼉을 쳤다. 남자들은 웃겨서 웃었다. 여자들은 속 시원해서 웃었다.

 그녀의 극중 남편 김한국은 늘 기 죽어 살았다. 등등한 부인의 그늘 아래서 다소곳이 지냈다. 가능하면 부인의 화를 돋우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 인가. 그는 늘 사고를 쳤고 그때마다 김미화의 야구 방망이는 용서를 몰랐다.

 개그 프로그램을 떠난 김미화는 여전히 바쁘다. 그녀는 50여개의 복지, 시민 단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웃음을 나누어 주던 그녀는 이제 삶을 나누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사 프로그램에 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시청자들을 사로잡던 그녀의 웃기는 솜씨는 여전하다. 인간이면 누구나 두렵고 꺼려하는 죽음조차도 그녀에게 걸리면 한낱 웃기는 개그의 소재로 변한다. 김미화는 죽은 뒤 자신의 묘비에 쓰여졌으면 하는 글을 직접 선택했다.

 “웃기고 자빠졌네.” 그녀가 스스로 고른 묘비명이다. 기발한 착상이 아닌가. 김미화의 묘비명은 개그 우먼의 번득이는 재치와 간단치 않은 삶의 깊이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원래 “웃기고 자빠졌네”에는 비아냥이 담겨 있다. 결코 호의적인 말이 아니다. 하지만 김미화의 묘비명에선 다르다. 세상을 실컷 웃긴 개그 우먼 김미화가 여기 잠들어 있다. 자신이 이승에서 한 일을 이처럼 재미있게 표현한 묘비명이 또 있을까.

 “웃기고 자빠졌네”에는 삶과 죽음이 함께 담겨 있다. 개그 우먼 김미화는 웃기며 살아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을 웃기는 일은 그녀의 삶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죽을 게 분명하다. ‘자빠졌네’는 죽음을 표현하는 말치고 경망스럽다. 하지만 재미있다. 그 정도 가벼움은 개그 우먼의 유머로 용서 될 수 있다.

김미화의 묘비명 “웃기고 자빠졌네”는 씹을수록 맛이 우러러난다. 한 사람의 만족스런 삶과 거리낌 없는 죽음을 한 눈에 엿볼 수 있다. 김미화의 삶이 얼마나 화려한지, 또는 고단한 지 나는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연예인의 삶만큼 요란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숱한 연예인들의 허망한 죽음을 지켜봤다. 화면 속에 꽃 같은 그들에게 스스로 생을 마감할 만큼 절박함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모두가 웃고 떠들며 즐거운 표정이었는데. 왜 그토록 서둘러 한번밖에 오지 않는 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김미화의 죽음은 평안할 것 같다는 예감이다. 적어도 그녀의 묘비명을 통한 느낌은 그렇다. 실컷 웃겼으니 이제 그만 가야겠다는 세상과의 순탄한 이별이 짐작된다. 아등바등 삶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절제가 담겨 있다.

죽어서도 할 일이 남은 사람은 유달리 생에 집착한다. 죽는 순간에도 남길 말이 많다. 개그 우먼 김미화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녀의 묘비명에는 이제 그만 웃기고 쉬고 싶다는 완주자의 유종(有終)이 느껴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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