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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을 위하여 마이애미로”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6-13 00:00

꿈같은 파나마운하 크루즈(1) 허억(밴쿠버 문인협회 회원)

여행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그것도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 함께 다니면 외롭지 않고 즐거움은 더한다. 버스로 다니는 투어(tour)가 늙어가면서 힘들어지니 이번에는 배를 타고 유람하는 크루즈(cruise)를 택했다. 우리 일행은 늘 함께 다니던 8명에 두 분이 추가되어 열 사람으로 일개 분대의 막강한 병력이다.

여행의 일정은 4월 20일 마이애미를 떠나 카리브해를 서남쪽으로 항해하여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콜롬비아를 돌아보고 파나마운하를 건너서 태평양 연안을 북상하며 멕시코와 미국의 주요 도시를 구경하고 밴쿠버로 돌아오는 19일간의 크루즈에다 마이애미 관광 2일을 더하여 21일간으로 짜여졌다.

우리는 4월 18일 밴쿠버를 떠났다. 밴쿠버 공항의 집합시간은 오전 5시다. 전원이 전쟁하는 군인과 같이 정시에 집합했다. 거의가 은퇴한 늙은이들이니 좀 늘어질 만도 한데 어떤 이는 한잠도 못 잤고 또 어떤 이는 겨우 두 시간 정도 눈을 부친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렇게 시간을 칼날같이 지켜 도착한 것이다.

우리를 태운 보잉 737-400은 엷은 구름을 뚫고 힘차게 아침 하늘로 솟아올랐다. 흰 구름 사이사이 바다 물결이 고기 비늘처럼 반짝인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면서 귀에 찍~ 찍~ 신호가 오는데 어젯밤 잠을 설친 일행들은 이내 단잠에 떨어진다.

오레곤주의 상공인가? 해님은 우리를 에스코트하고 있는데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잔잔한 호수의 표면이 흰색에서 엷은 푸른색으로 살짝 바뀌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비행기내에서는 마실 것만 주고 먹을 것은 돈을 받고 팔지만 우리 일행은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와서 서로 나누어 먹으니 맛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조금 큰 보잉 757기로 갈아탔다. 밴쿠버에서 30분 연발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가서 겨우 시간에 댔다. 5시간 20분 동안의 긴 비행 끝에 마이애미의 상공에 도착했다. 시간이 세 시간 빠르기 때문에 벌써 오후 8시다. 뉘엿뉘엿 지는 해에 떠나온 고향생각이 머리를 스치는데 염전같이 보이는 바둑판 모양의 갯벌이 해변 가에 이곳 저곳 보인다.

우리는 마이애미공항에서 내려 두 대의 대형택시에 나누어 타고 예약해 놓은 호텔이 있는 마이애미비치로 찾아간다. 전등불만 환하게 비치는 낯선 거리를 택시 기사에게 몸을 맡기고 마냥 달려간다. 이제 완전히 나그네가 된 기분이다. 찾아간 호텔은 1924년도에 지은 4층 짜리 구식 건물인데 엘리베이터의 문이 덜커덕 하고 닫히자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창문이 안쪽으로 주르륵 하며 이중으로 닫힌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헤리티지 건물이라고 자랑한다. 저녁을 먹으러 나와서 밤거리를 걸었다. 우리가 있는 호텔 근처 서너 블록이 온통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음식물 샘플을 길가에 만들어 놓고 무명가수의 생음악도 들려주면서 지나가는 손님을 부른다. 좀 비싼 음식이지만 우리는 떠들어대면서 맛있게 먹었다.

침실은 두 개만 빌렸다. 남자는 남자끼리 한방을 쓰고 여자는 여자끼리 한방에 잤다. 여행경비도 줄이고 또 친선을 위한 특별배려라고 하지만 나같이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가능한 한 코를 적게 골기 위하여 엎드려서 잤지만 이튿날 아침 다른 사람들의 빙그레 웃는 모습을 통해서 가히 짐작을 할 수 있었다.

4월 19일, 오늘은 마이애미 관광을 하는 날이다. 쾌청한 날씨에 섭씨 25도. 택시를 타고 마이애미항구로 달린다. 길가에 늘어선 야자수가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항구에는 대형 유람선이 4대나 정박해 있는데 우리가 탈 Norwegian Sun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50여 명 탈 수 있는 관광용 보트에 몸을 실었다. 마이애미항구는 이 때까지 내가 본 항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됐다. 다운타운의 고층건물도 예쁘게 잘 조화를 이루지만 동쪽 해안을 따라 울타리처럼 늘어선 길쭉길쭉한 섬들과 곳곳에 만들어진 23개의 인공 섬들 그리고 남아공에서 하나에 만 불씩 수입해 왔다는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과 비취(jade) 색깔의 바닷물은 한 폭의 그림인양 가히 환상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던 일행 중에서 한 아가씨가 약간 질투심이 발동한 듯 “밴쿠버만 못 해요” 하고 소리쳐서 다같이 한바탕 웃었다.

해변가에는 수천만 달러짜리 저택이 즐비하다. 유명한 배우나 가수들이 ‘rich and famous’의 상징으로 가지고 있는 별장들이다. 어떤 집은 뒤뜰까지 냉방시설을 해서 화씨 98도의 기온을 68도 내려놓고 산다고. 여기서 우리는 기가 막힌 꼴을 보았다. 해변가 집 앞에 허리 높이 정도의 나무 상이 있고 그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중년의 여인이 엎드려 있다. 그리고 건장한 흑인청년이 온몸을 마사지한다. 우리 배가 가까이 가자 흑인청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세상 사람 사는 방법도 참으로 여러 가지다.

마이애미에는 ‘Little Havana’라고 하는 쿠바인들의 촌이 있다. 쿠바 망명객들이 처음에 오막살이집을 짓고 살다가 이제는 제법 괜찮은 가옥을 짖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산다. 우리가 다녀온 지역에는 어디서나 스페인어가 많이 쓰였다. 멕시코 작곡가가 지었다는 베사메무쵸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른다.

4월 20일, 아침을 먹은 후 우리 일행은 해변가 산책을 나갔다. 화창한 날씨에 끝도 없이 펼쳐진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를 최남단까지 몇 시간 동안 걸었다. 동양사람이 거의 없는 이 지역에서 한국청년 두 사람을 만났다. 영어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무엇인가 많이 배워가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호텔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크루즈 터미널로 갔다. 대형 호화유람선이 6대나 정박해 있다. 80에 가까워 보이는 택시기사는 우리가 탈 Norwegian Sun의 바로 앞까지 조심스럽게 태워다 주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승선 수속을 하고 있다. 내 뒤에 홀로 서있는 50대의 여인은 온타리오주 키치너에서 3일 동안 기차를 타고 왔는데 크루즈가 밴쿠버에서 끝나면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간다고.

우리는 각자의 크레딧 카드를 보이고 선내에서만 쓰이는 새로운 카드를 받았다. 이 카드는 선실 문의 열쇠도 되고 신용카드도 된다. 선실은 의외로 넓고 좋았다. 전화기가 침실에도 있고 화장실에도 있다. 샤워장에는 의자까지 준비됐고 안전을 위하여 손잡이 레일을 설치했다. 전기 소켓도 110볼트와 220볼트가 나란히 있어 쓰기에 편리하다. 알고 보니 70이 넘은 노인들에게는 조금 더 크고 안전한 방을 주었다.

출항하는 시간에 맞추어 13층 갑판 위로 올라갔다. 유럽으로 먼저 떠나가는 Norwegian Jewel이 뚜뚜- 하고 기적을 울리자 우리가 탄 Norwegian Sun이 뚜- 하고 응답한다. 예정시간보다 4시간 연발해서 저녁 8시에야 우리 배는 출항했다. 파일럿 보트의 안내를 받으며 마이애미항의 좁고 긴 채널을 빠져나올 때 우리는 마이애미 도심의 석양에 비친 아름다운 고층건물을 향하여 연실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다.

우리는 11층 맨 뒤쪽 갑판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에는 3인조 밴드에 맞추어 흥에 겨운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는 즐거운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같이 보였다. 우리 일행이 손을 흔들자 우리에게 뛰어와서 함께 춤을 추자고 권한다. 우리는 그들과 하나가 되어 춤을 추고 떠들고 또 웃어댔다. 참으로 꿈같은 낭만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나와 함께 춤을 춘 여자는 캐나다 사스캐처원에서 왔다고 했다. <계속>

*허억(밴쿠버 문인협회 회원)씨의 파나마운하 크루즈 여행기를 이번 주부터 매주 목요일자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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