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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Buck Trail 봄나들이산행길에서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6-07 00:00

老鹿小路迎春山行
Old Buck Trail 봄나들이 산행길에서

春風忽已近淸明 봄바람이 잦아드니 청명절기 가까운지
干宵千林水雲重 하늘찌른 숲 끝자락 물안개만 자욱하네
兩岸靑苔經雨潤 양쪽언덕 푸른 이끼 비온 뒤라 윤기나고
澗曲春水空自鳴 구비진 실개천엔 봄물 졸졸 노래하네
古逕寂莫松根蟠 묵은길 적막한데 솔뿌리들 뒤엉켰고
怪石削出煙霧濃 깎아지른 기암괴석 연기안개 어렸어라
雨晴山色正澄鮮 비갠 뒤의 산의 빛깔 저리도 해맑은데
看向湖海心還廣 호수바다 바라보니 이내마음 넓고넓어

丁亥陽三月十八日與二人四十里力走老鹿小路中梅軒記遊
3월18일 두 사람과 함께 old buck trail 40리길의 산행 중 매헌은 느낌을 적다.

모진 비바람 광풍이 유난하게 잦았던 지난 겨울, 그렇게 많이 내린 비가 산정상엔 모두 적설로 둔갑하여 5-6m가 훨씬 넘다보니 산의 표고가 그만큼 높아진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봄이 오고 있다. 계절의 순환은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의 운행을 계속한다. 봄이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는 우주라는 시간은 무왕불복(無往不復)하는 동심원(同心圓)이다. 노자는 이를 가리켜 "되돌아 오는 것이 도의 움직임"(反者道之動)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우리 동양의 순환적 우주관을 대변하는 명제이기도 하다. 만약 사계절의 순환이,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일월의 운행이 뒤죽박죽이 되어 예측을 불허한다면 지구는 결단이 나고 만다. 봄이 온다는 확신이 있기에 농부는 이른 봄에 씨를 뿌리며, 가을이 어김없이 온다는 철석같은 믿음이 있기에 여름의 뙤약볕 밑에서 구슬땀을 흘릴 수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계절의 순환을 통해서만 인간은 우주라는 시간단위를 철석같이 의식하고 하느님같이 신뢰할뿐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소위 지구 온난화 또는 온실효과(green house effect)때문에 인간이 느끼는 계절의 순환에 전혀 박자가 맞지 않는 대란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태양의 공전에 대하여 지구 자전의 중심축이 기울면서 일조의 각도를 달리하는 전체적인 운행체계는 전혀 이상이 없으나 60억 인구가 쏟아내는 쓰레기나 생활하수, 에너지의 과대 소비에서 발생하는 탄산가스로 우리 생태계가 비닐하우스 속에 갇힌 꼴이다.  한국은 겨울이 거의 실종된 데 이어 봄이 없이 바로 여름으로 진입하는 개판기후로, 머지않아 아열대지역으로 반갑지 않은 편입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남해안에서만 꽃을 피우던 동백이 이제 충청도까지 북상하고 남도에만 자라던 감나무가 충청 경기지역까지 재배지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하니 문제의 심각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적송이 기후변화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머지않아 멸종될 것이라는 보도에다, 철새들도 기후변화에 헷갈려 갈팡질팡한다는 소문도 있으며, 이미 지구상에서 멸종되거나 멸종 직전에 있는 동식물이 수천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지구촌의 당면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문제의식이 생태학(ecology)이요, 이를 어떻게 해서든 보호해야겠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 환경공학(environmental engineering)이다. 21세기 인류 최대의 당면과제는 경제 발전이 아니라 바로 환경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파괴는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땅덩어리 위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을 합산하면 약 10조톤이 되는 생물권(biosphere)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생물권이 조화를 이루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태학적 기존상태(ecological status quo)가 최대로 보존되고 육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주의 운행으로 생멸이 초래되는 것은 우주자체의 운행 법칙에 의한 것이므로 해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인위적으로 그 미묘한 균형이 깨어질 때 원상복구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문제다. 너무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지면을 허비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필자는 온실효과의 최대 원인은 인간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식에 있다고 본다. 굳이 교토 의정서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에너지 과다소비로 일산화탄소를 제일 많이 방출하는 주범은 바로 미국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풍요를 자랑하며 그 큰 집을 짓고 난방에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양이 얼마이며 6000만대에 육박하는 자동차로 매연을 뿜어대며 허비하는 에너지가 얼마인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60, 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는 19공탄 한 개의 에너지로 하루의 난방과 취사를 해결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아끼려고 날이 여간 춥지 않으면 불구멍의 걸레 마개를 좀처럼 개방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랴? 농촌은 농촌대로 모든 생활하수를 완벽하게 리사이클하였으니 하천의 오염이란 도시의 문제였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개념이었다.

하다 못하면 길바닥에 널리 소똥도 주워다가 퇴비로 사용했으며 오줌 한방울도 아끼려고 집집마다 통나무 속을 파내고 만든 오줌 구유(저장탱크)까지 있었으니 하천엔 온갖 종류의 민물고기들이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헤엄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엔 워낙 찢어지게 가난하여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환경문제라는 말은 단어마저 생소하지 않았던가. 산업화가 좋고 풍요가 좋은 것만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풍요는 환경파괴라는 반갑지 않은 신진대사를 동반할 뿐이다. 그렇다고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밖에 없는 땅과 하늘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중금속에 절어 버리고, 우리가 마시는 하천이 물고기가 서식하지 못할 정도로 오염되고, 우리가 들이쉬는 공기가 매캐하여 코를 들 수 없을 정도라면 경제발전이 무엇이며 국민소득이 5만달러인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연에 순응할 때 소위 장엄한 화엄의 세계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용의 제 1 장에 나오는 구절이 떠오른다. "중화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제 자리를 잡고 만물이 여기에 자란다"(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그렇다 우리가 사는 하늘과 땅은 미묘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천평저울과 같다. 그 조화를 이루어야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 육성되어 제 명을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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