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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 올라 고향산하 그리며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3-15 00:00

登小羚山坐雪而有送年之懷
Little Goat Mt.에 올라 눈위에 앉으니 송년의 회포가 있어

皓潔萬峰天際容 천만봉 눈산들은 하늘 끝의 얼굴이요
雪晴淑氣灑溫城 눈갠 경치 맑은 기운 밴쿠버를 씻어주네
神光輝煌蒼海闊 신비한 빛 찬란한데 태평양은 광활하고
俯仰乾坤一蕩胸 하늘땅을 굽어보니 이내마음 상쾌하네
寒華松柏盡孤節 눈꽃만발 송백들은 외론절개 다하는데
漫有浮生詩興長 부질없는 이내인생 시흥은 꼬릴 무네
遙望天涯思故鄕 저 멀리 아득한 곳 고향산하 생각하니
餞罷殘年淚滿睛 이 한해도 저무나니 눈물만 눈에 가득

丙戌陽十二月二十一日與四人小羚山上痛飮之中梅軒賦
병술년 양 12월 21일 네 사람과 함께 Little Goat Mt. 산상에서 통쾌히 잔을 들고 매헌은 시를 짓다.

양력상으로 불과 사흘 후면 병술년의 묵은 태양이 저 태평양너머로 스러질 것이고 그러면 다시 정해년의 새해가 록키 산맥을 넘어 밝아 올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두 달 후인 2월 18일이 음력상 정해년 원단이 되는 셈이니 엇박자 캘린더 시스템을 우린 병용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이 동양을 군림하기 시작했던 19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서양의 직선적 사관(史觀)을 반영하는 서력기원을 쓰지 않고  12천간(天干)과  10지지(地支)의 가능한 60개 수학적 조합의 반복 순환을 가지고 세월을 계량하는 캘린더의 틀로 삼았다. 이것은 곧 동양의 순환적 우주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시간이란 곧 우주이다. 우주라는 시간을 인간은 의식할 길이 없다. 다만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1년이라는 시간 단위를 의식하고 달의 차오름과 이지러짐의 사이클로 한 달을, 그리고 태양의 떠오름과 스러짐의 반복으로 하루를 의식할 뿐이다. 그래서 인생도 60갑자 홱 돌도록 살면 살만치 살았다 해서 이를 자축하는 회갑잔치를 벌였었고.... 그 이후로 사는 삶은 덤으로 사는 수복(壽福)으로 여겼던 것이다. 필자는 소띠로 기축생이다. 이제 2년만 있으면 나도 살만치 산 환갑을 맞는다.

정갈하게 풀을 먹여 다림질한 두루마기에 갓망건을 정제하신 조부님께 큰 절을 올렸던 1962년의 회갑연 기억이 바로 엊그제 같아 정말이지 실감이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4년 전 암이라는 죽을 고비를 넘긴 나로서야 그 이후의 하루 하루는 덤으로 쳐 덤덤하게 살고 있으니 회갑잔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한해가 기우는 길목에 서면 어쩔 수 없이 회한과 상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서부경남의 지리산 오지의 선영을 등진 것은 안의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67년. 그 후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어렵사리 마친 서울의 대학생활 4년, 군복무와 직장생활 3년. 다시 1975년 한도 많은 이민길에 올라 토론토에 도착한 것이 정확히 그 해 8월 3일이었으니 이제 올 여름이면 정확히 32년을 캐나다 땅에 산 셈이다. 철부지 유소년기를 뺀다면 나는 인생의 2/3를 캐나다에서 보낸 것이다.

나같이 산자수명한 정든 고향산천과 선영을 버려두고 온 사람은 망향의 정이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분들 이상으로 애틋하고 강렬하다. 때로는 태평양이 보이는 언덕에 오르거나 해변을 거닐면 서쪽의 태평양 하늘 끝을 바라보며 항상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조선 성종조 이후 한양의 벼슬살이를 마다하고 안의에 은둔을 시작한 중시조 이후 근 400년간 살아왔던 고향을, 그것도 우리 동래 정씨 집안의 장손인 내가 '배정이향'(背井離鄕)했다는 죄의식이 이민이후 나를 항상 옥죄고 있었다. 더구나 나를 그렇게 귀여워해 주신 할아버지에 대해 제사는 모시고 있지만 성묘하지 못하는 죄책감은 말해서 무엇하랴. 묵향이 물씬 풍기는 사랑채 서당에서 고추를 내놓은 터진 멜빵 바지차림의 코흘리개인 나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하늘 천 따 지"를 가르치시던 일하며.... 뜻도 모르고 앵무새처럼 조잘거리면 꺼칠한 수염투성이 입술을 내 볼에 갖다 대시며 "아이고 내 새끼야"를 연발하시던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야 아무리 먹고 살기 바쁜 이민생활 중이나 한시라도 잊은 적이 없다. 가끔은 꿈에 현몽하시어 그 호랑이같은 두 눈을 부라리시고 "내 이놈, 선산을 버리고 간 놈이 잘 되는 것 못 봤다. 썩 물러가지 못할까" 라며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식은 땀을 흘렸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벌초는 그간 종조부쪽 조카들에게 돈을 보내 계속하고 있지만 늘 그들에게 미안하다. 재작년 22년 만에 나간 귀향길, 조부님 산소에 무릎을 꿇은 나는 북받쳐 오르는 통곡을 금할 수 없었으니.... 사죄의 눈물을 후련하게 쏟아버리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나에겐 또 꿈이 있다. 나도 언젠가 이땅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면 저 세상에서 할아버지와 만날 것이고, 조손간에 미니 시회(詩會)나 열어 운을 맞춰간다면 그 동안의 죄를 다 용서하실 것이고, '고 놈 참 기특하다'며 옛날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것을 기대한다.

어디 나 같은 사람이 한 두 사람이리오만은 생각하면 이민이라는 게 자기 뿌리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라 마음에 켕기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조부님은 그렇다 치고 조모님은 경기도 파주땅 광탄의 천주교 묘지에 묻혀 계시고, 아버님은 토론토의 천주교 묘지에 묻혀 계신다. 나도 결국은 이곳 밴쿠버에 미상불 묻히게 될 것이다. 우리 삼대(三代)가 뿔뿔이 유택을 달리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다 이민자가 치러야 할 응분의 대가이지 싶다.

하지만 유택의 지리적 분산이 어찌 우리 삼대간의 끈끈한 천륜의 정을 끊을 수야 있겠는가. 어차피 인생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고... 또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 하니, 우리는 오늘의 이생을 열심히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날 모처럼 활짝 개여 눈 시리게 아름다운 설원에 올라선 채, 태평양의 금빛 물결을 바라보며 두 눈에 고여오는 눈물이 "찬란한 슬픔"의 눈물임을 쉽사리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6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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