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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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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7-03-12 00:00

마음에선 솟구치나 시간적으로나 또는 여타의 이유로 나들이가 여의치 않을 때는 잠깐 짬을 내서 고궁에 다녀온다든지 책방에 들러 책을 뒤적거리는 것으로 나들이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겠다. 나들이의 핵심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인데 고궁이나 책방 모두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이긴 매 한가지인 까닭이다.

그 가운데서도 책방나들이는 두 겹으로 나들이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책방이라는 공간이 그 한 겹이요, 또 한 겹은 책방의 수많은 책들이다. 책방은 당연히 서점을 일컫는 말이나 여태껏 벽(癖)에 들지 못하는 나의 책 읽기가 부끄러운 탓인지, 내게는 서점보다는 책방이라는 단어가 공연히 만만한 것 같아 줄곧 그렇게 부르고 있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서화가 조희룡(趙熙龍)은 난(蘭)을 치는 것조차 만권의 책을 독파하여 문자의 기운이 창자에 뻗치고 뱃속을 떠받치고 있어서 열 손가락 사이로 넘쳐 나온 뒤라야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천하의 서적을 읽지 못했으니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라며 자책했으니 그 독서에의 열광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아무튼 책방나들이는 독서에 박한 내게도 꽤 쏠쏠한 즐거움을 선사하여 어떤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방에 머무르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의 책방나들이에 있어 예전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예전처럼 꼭 갖고 싶은 마음이 들어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이 점점 줄어든다는 거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하고는 그걸 사 들고 마냥 들뜨고 설레던 아주 오래된 기억이 이젠 가물가물하다. 혹자는 시원치 않은 책들이 날로 많아지는 연유가 발달된 제지 기술, 흔해진 종이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말들이 내게는 궤변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다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리저리 찌들어 점점 탁해진 내 마음이 책 한 권의 그런 설렘을 몰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우세하다. 이 대목에선 그런대로 순수의 정열을 지녔던 예전의 날들이 어김없이 떠올라 그리워진다. 그리고 나의 설렘을 감퇴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을 들자면 책에 대한 환상을 덜어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책이라고 다 믿을만한 것은 아니다, 책 속에 진리가 있기 보다는 누구누구의 입장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라는 생각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다치바나 다카시(立花 隆)는 이 시대 일본 최고 지성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언론인이자 평론가며 저술가다. 아울러 그는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방대한 독서량과 도서 소장가로도 유명한데, 고양이 빌딩으로 불리는 도쿄의 그의 작업실 겸 서재에는 수 만 권에 이르는 책과 자료들이 가득하다. 그의 독서 벽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작되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자신의 독서를 되돌아보는 장문의 독서력(讀書歷)을 발표할 정도였다. 다치바나는 이와 같은 방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아주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또한 그가 저술한 수많은 책들을 살펴보더라도 정치, 사회에 관련한 것들에서부터 우주, 과학에 관련된 것들에 이르기까지 아주 광범위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역시 그의 방대한 독서량에 기초하고 있음이다.

다치바나는 지독한 독서광(讀書狂)답게 자신 나름대로의 독서론, 독서술을 설파하고 있는데, 흡사 기독교의 10계명처럼 구체적으로 14가지 항목을 들어 소위 다치바나 식(式) 독서법(아사히 저널, 1982. 5)을 제시했다. 그가 든 14가지 독서법은 취미를 위한 독서와는 무관한, 일과 교양을 위한 독서법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는데, 사실을 말하자면 그의 독서법이 아주 특별하고도 독창적인 내용은 아니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모두 습성적으로 취하게 되는 자연스런 태도를 항목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평범한 것일수록 내공이 깊은 것, 그의 독서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겉으론 평범하지만 실상은 매우 심도 있는 독서의 중요성과 방식을 새삼 깨닫게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14번째 항목은 마음에 턱 걸려 책방나들이에 더욱 부지런하게 만든다.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되는 지식의 양과 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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