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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연하게, 비장하게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2-24 00:00

운동경기를 승리로 이끈 선수가 겨우 숨을 고르며 카메라 앞에 선다. 아직 그의 목소리는 흥분에 싸여있다. 물론 오늘 경기에서의 승리 때문이다. 오늘 게임은 꼭 이기자고 선수들 모두 열심히 뛰었던 것 같은데, 이긴 거 같아서 기분 좋은 것 같아요.

이른 아침, 텔레비전 프로그램, 어느 바닷가 마을을 찾은 리포터가 그 지방의 맛난 음식을 소개한다며 호들갑이다.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는 더욱 흥분한다. 이 맛을 시청자 여러분께 직접 전해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정말 아쉬운 것 같아요. 너무 맛있는 것 같습니다.

방금 경기를 이기고도 이긴 것 같다고 말하며, 또 맛난 음식을 먹고 있으면서도 맛있는 것 같단다.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말들이다. 이렇게 애매모호한 언어들이 셀 수도 없이 전파를 타고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 생활 속에 침투한다.

직접적인 불쾌감내지는 혐오감에서 끝나는 게 아닌 애매모호한 말이나 앞뒤가 다른 말들, 이러한 언어들이 알게 모르게 조장하는 신뢰의 붕괴, 미래에의 불신, 또는 신념의 약화와 같은 것들은 더욱 심각하다. 매사 목에 핏대를 올리고, 똑 부러지게 살 순 없다. 그러나 한 세상 살아내자면 최소한의 비장함은 필요하다. 애매모호한 언어들이 집중적으로 흔드는 건 바로 우리 삶 속의 비장함이다.

한 가지 더 들여다 본다. 거리한복판을 지나는 시위행진, 사람들은 지쳐있고 내두르는 팔은 기운 없다. 구호 또한 맥이 빠져 있지만 이마에 두른 띠에 적힌 구호만은 오싹하다, 결사반대(決死反對).

평온해 보이는 어느 아파트 단지. 장을 봐오는 사람들, 한가롭게 걷는 사람들, 세발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이 평화롭다. 그러나 무슨 대형쇼핑몰이라도 새로 들어오려는지 아파트 옥상으로부터 늘어뜨린 커다란 현수막의 붉은 글씨는 섬뜩하다, 결사저지(決死沮止).

이렇듯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단호한 언어들 또한 그 나름의 극단으로 치달아 툭하면 결사(決死)란다. 살면서 죽음마저 불사(不辭)할 일이 얼마나 될까. 목숨을 건다는 것 말고는 결연한 의지표현의 성이 차지 않는 극단의 단호한 언어들은 애매한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생명력을 점점 주저 앉힌다.

우리에게 놓인 한 세상, 우리의 귀한 삶을 곰곰이 새겨보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그 앞에 결사니 뭐니 하는 극단적인 언어들을 습관적으로 갖다 붙이면 우리의 고귀한 삶은 알게 모르게 가벼워진다. 우리의 인식 안에서 삶이 가벼워지고서야 숙연함이나 경건함은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뒤틀어진 언어가 일상생활을 감염시키고 그것이 습관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요즘이다. 우리 스스로에 의해 우리들의 언어가 오염되고 있다. 오염된 언어생활이 축적되는 가운데 생성되는 부작용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이러한 심각성은 단순히 우리의 언어문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생명력이 감퇴된 나약한 사회, 곧 병든 사회로 치닫는다.

습관되어버린 왜곡된 언어들은 마치 내성이 더욱 강화된 변종 바이러스처럼 더욱 집요하게 우리 사회를 갉아먹는다. 물론 우리 사회의 여러 병리적 현상이 생활에 스민 오염된 언어때문만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추측의 언어들, 애매한 언어들, 그리고 습관적인 극단의 언어들이 난무하면서 우리의 판단이나 신념은 흐려지고, 사회의 생명력이 점점 나약해지는 것에 일조하고 있음을 완전히 부인하지 못하겠다.

요즘 잇따른 젊은이들의 자살 소식에 참 우울하고 안타깝다. 푸르른 희망의 시절을 살아갈 그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한 고통의 무게를 알 도리가 없다. 또한 그들을 짓눌렀을 고통을 두고 고통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느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없는 입 발린 말은 차마 할 수 없다. 그저 목만 잠긴다.

그러나 우리 일상에 만연한 신념을 흐리게 하고 나약함을 조장하는 언어들, 숙연함을 잃게 하고 가벼움을 조장하는 언어들이 그들을 짓누른 고통의 무게를 더욱 견디기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하여 원통하다. 삶을 경시하고 나약하게 하는 병균처럼 몹쓸 병균은 없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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