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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밴쿠버 문협 신춘문예 입상작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1-25 00:00

 

시 부문 가작

아침 파도

김 석봉

부풀어 밀려오는
저 은빛 파도에,
밀려오고 또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지구가 돌고
세상이 돌고
세월이 돈다.

밀려와서 부서지고
밀려오면서 또 부서진다.

무슨 말이
그렇게도 하고 싶은가

무슨 사연이
그렇게 많은가

문득
파도가 남겨 놓은 여울이
길게
내 마음을 적셔 온다 .

그리고,
갯벌에 남겨진
많은 조개 껍질들

다 못한 가슴이
남긴 이야기들

오늘 아침
은빛 바다에 손님이 되어
오래된 파도 이야기를 듣는다.

시 부문 가작

아침

홍현승

한 밤을 지새우고
창가에 선다

블루제이는 창공을 날며
여명(黎明)을 포르테로 지휘한다

빛의 향연(饗宴)이 시작 되는구나

풀 한 잎 네가 없었다면
이슬은 어디서 쉼을 얻을까

바쁠 것도 없는 일상
마음의 여유 없어
지나쳐버린
작은 소중함들

언제 한 번
하늘을
제대로
바라 보았던가

살아 있음이
이토록
가슴 벅찬 것을

오늘만은
안단테로 걷고 싶다

 

수필 부문 가작

거꾸로 뒤집히는 배

허 억

이웃에 새로운 집이 건축된다. 6000평 대지에 3층 건물로 아마도 1만 평방피트는 되어 보인다. 아주 좋은 건축재료를 써서 우아하게 지은 건물에 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으니 보기에 너무도 좋다. 나는 백악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주인은 어떠한 사람일까?

남자는 건축업을 하는 사람인데 60세가 좀 넘어 보인다. 부인은 40대로 보이는 상냥한 미모의 여인으로 언제나 조용한 미소를 띠어 친근감을 준다. 그 여인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전남편의 소생이란다.  이 집은 현재의 남편이 그 아름다운 여인을 위하여 짓는 것이란다. 부부가 같이 살면 두 사람 명의로 등기하겠지. 그리고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자연적으로 부인의 몫이 되는 것이니까 부인을 위하여 짓는다는 말이 옳구나, 추리했다. 

집 건축이 끝나고 조경작업이 시작될 무렵 그 중년의 부인이 임신했다는 소문이 돈다. 남자나 여자나 적지 않은 나이인데 참으로 정력도 좋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조경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를 쫓아냈다는 것이다. 덩치도 크고 우락부락하니 무섭게 생긴 남자를 가냘픈 여자가 어떻게 쫓아낼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자는 예쁘게 생긴 딸을 낳았다.  유모차에 태우고 밀고 다니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그리고 자기 남편은 자기가 내버려서 이미 섬으로 이사갔단다.

울타리는 다 세웠지만 대문은 아직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작업이 중단되었다. 집 주위에 잡초가 아이들 키만큼 자랐다. 잘 지은 집이 무성한 잡초로 완전 포위가 되니 보기에 매우 흉물스럽다. 남자가 없으니 돌볼 수가 없는 것이다. 여인은 별채에 사람을 들였다. 집 안팎으로 풀을 깎기 시작했다. 별채에 세든 사람이 정원 일을 맡은 것이로구나. 나는 지나가며 그 남자에게 손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만났을 때는 서로 악수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자기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그 여인의 전남편으로서, 지금 그 여인이 데리고 있는 큰딸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는 스물 여섯 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으며 그 애는 자기를 만나기 전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낳은 것이란다. 참으로 의외의 희한한 말을 힘도 들이지 않고 낯선 나에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여자에게는 세 자녀가 있는데 그 아버지가 각각 다른 것이다. 그것도 남편과의 사별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여자의 적극적인 자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거기다가 헤어진 전남편까지 불러서 풀을 깎게 하다니 과연 여자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 인생의 삶을 하나의 항해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어렸을 때에 탄 배는 이제 거의 전복되어 파선 위기에 있는 것이다. 과거 1세기 동안의 변화가 그전 5000년 동안의 변화보다도 훨씬 클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한국동란을 통하여 혼자된 분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재가하지 아니하고 자녀를 위하여 전 생애를 희생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낡고 고장난 배를 아낙네가 홀로 이를 악물고 험한 파도를 헤치며 조금도 기울지 아니하게 여기까지 타고 온 것이다.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쥐를 잡는 고양이와 같이 무서운 존재였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여왕을 모시는 시녀에 불과하다고 하면 좀 지나칠까? 한국에서는 시어머니들이 김치를 만들어 며느리에게 갖다 바치는데 그것을 들고 며느리가 있는 아파트 문까지 가져가서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냥 아파트 수위에게 맡겨 놓고 전화를 걸어 알려주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의 가정분위기를 보면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는 일이요, 다음은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요, 그 다음이 자기의 아내를 외롭지 않게 돌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첫째가 아내를 지성으로 사랑하는 것이요, 다음이 자식을 키우는 일이요, 그 다음이 부모를 돌보는 일이 아닌가.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의 배가 이만큼 전복되어 있을 것이다. 배가 그만큼 뒤집혀 있으므로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지구에 거꾸로 서서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같이 이제는 거의 전복된 배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 중심의 가정이 형성되지 않고 성적으로 문란했던 원시 시대에는 여성중심으로 가족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점차 남성이 권력을 잡고 세상을 움직이자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고 부계사회가 형성되어 지금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이제 그 배는 뒤집혀 간다. 이미 자식들의 성을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는 법적 제도마저 마련되어 있다. 다만 아직은 사람들이 별로 실천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현실을 다시 한번 응시해 보자. 한 여자의 세 자녀가 모두 성이 다르다. 아비들은 모두 쫓겨나서 아무런 말도 못한다. 자식들은 왜 성이 다르냐고 어미에게 질책한다. 골치 아픈 일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어미들은 아예 자식들에게 자기 성을 주어서 모두 다 같은 성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그리고 조금 있다가 여성중심으로 새로운 족보가 나오지 않을까? 그때에 우리 모두는 이미 전복된 배를 버리고 새로운 배에 올라타서 아무렇지도 않게 희희낙락 웃으며 항해하지 않을까?

 

수필부문 가작

변신                              

김진민

우리는 가끔 아주 생소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싶어 한다. 나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어떤 모습으로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야한 화장도 그렇고 또 분수에 맞지 않는 옷단장도 그 중의 하나다. 무대 화장을 하듯 파란 마스카라를 찐하게 그려 보기도 하고 언밸런스한 나풀나풀한 치마로 멋을 부려 보기도 한다. 또 머리를 염색하여 어울리지 않는 서양의 미모를 흉내내보기도 한다. 이렇게 외모의 변화로 무엇을 충족해 보려고 한다. 채우지 못한 욕구를 채워보려는 방편으로 엉뚱한 짓을 한다.

 며칠 동안 폭염으로 찌는 듯 덥더니 오늘은 서늘하다. 아시아에 몰려온 태풍의 영향일까! 지구의 정반대인 이곳은 여름날씨답지 않게 서늘하다. 그래도 한낮에 더위를 피하여 아침 일찍부터 작업을 한다.  편안한 청바지와 꽃무늬가 울긋불긋한 긴팔 T셔츠, 긴 장화에 삐딱하게 걸쳐 쓴 밀짚모자, 목장갑을 끼고 윙윙거리는 전기 톱을 들고 부산하게 나무를 자른다. 회양목들을 동그란 모양으로 또 사각형으로 자른다. 10년 넘게 자란 나무들이 제 모양대로 틀을 잡고 있다. 여름 한철 우뚝 자랐다. 정교하게 숙련된 솜씨로 잘라낸다. 긴 전깃줄을 피하여 장화발로 걷어차며 요리조리 돌려가며 모양을 만든다. 동그랗게 잘라야 할 것이 잘못하여 하트 모양으로 자르고 있다. 누가 보면 일부러 만든 모양이라 생각하겠지만 원의 한쪽이 잘라진 것을 복구하기위한 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땀 흘리며 작업을 한다.

 어느 날 친구가 산수 좋은 곳에 고대광실 한옥이 있는 그림카드를 보내 왔다. 무슨 뜻으로 보냈는가! 생각 끝에 내가 답장하기를 "안방마님 나가시니 가마 대령 하렸다!" 이렇게 답장하였다. 가끔 친구들과 나누는 편지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어 좋다. 모시 한복 곱게 입고 살랑살랑 부채로 바람을 날리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으니 가마를 준비하라는 나의 대답이다. 깊은 산속 대가 집 안방마님이 되고 있다. 대청마루에 곱게 모시적삼 입고 책장을 넘기며 부채질이나 하는 여인. 급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는 도도한 여인이 되어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본다. 이렇게 탈출하여 변신을 해본다. 모양으로 나타낼 수 없지만 상상하며 나의 변신을 시도해 본다.

  윙윙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는 정원 가득 울린다. 새들도 놀랐는지 얼씬하지 않는다. 눌러쓴 모자를 추켜올려 본다. 작업 복장으로 아주 폼 나는 모양새다. 적당하게 흙이 묻어 장화 속으로 밀어 넣은 바지통, 가끔 나뭇잎이 들어가 벗어 턴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목이 긴 검은 장화 이것도 나의 모양새를 갖추는데 한몫을 한다. 

 나를 본 친구가 하는 말 "멋있는데..." 이 말을 들은 나는 두 팔을 벌리고 한 바퀴 삥 돌아본다. 그 친구 상상하지 못한 나의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꼈나 보다. 곱게 차린 정장차림만 보다 촌티나는 작업 복장의 나를 본다. 또 윙윙 거리는 전기톱을 들고 작업하는 것을 보며 멋있다고 한마디 하는 친구, 그 친구야 말로 정말 멋을 아는 친구다.

  그 친구 상상하지 못한 나의 모습, 청아한 모습으로 곱게 단장하고 그림 속의 여인처럼 부채 바람이나 날리는 모습을 상상했을까! 아니면 명상 속에 눈을 감고 음악이나 들으면서 차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했었나! 이렇게 신선하게 작업하는 모습을 좋다고 멋있다고 하니 나는 절로 좋다. 정말 편안하고 아무 걸릴 것이 없어 좋다. 땀이 흘러 젖어 내려도 엉덩이에 흙과 낙엽들이 잔뜩 묻었어도 아무데나 앉아도 편안한 모습 편안한 복장이 아닌가!

  불편한 굽이 높은 신발을 신는다. 땀이 나면 지워질까 염려하는 화장도 하여 본다. 무엇이 묻거나 모양새가 어그러지면 어떻게 하나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나를 규제하는 모든 것에서 해방된 편안함과 자유 함을 맛보려 한다. 어울리지 않은 색의 매치, 너덜너덜 남루하고 헐렁헐렁한 허리춤을 추켜 본다. 흙과 나뭇잎이 뒤범벅이 된 장화 이렇게 대조적인 나의 변신을 시도해본다. 모양새의 변신이지만 마음까지도 완전하게 변신하고 싶은 내 뜻을 그 친구는 알 수 있을까! 이렇게 변신한 나의 모습, 남들이 모르는 편안함을 느낀다.

 

 시 부문 입선

신(新) 창세기(創世記)

박동순

첫째 날,
내 두툼한 손엔
우아(優雅)한 당신의 모습이 담긴
잘 찍은 사진이 한 장 들려 있다.
한 시간이 스물 네 번,
이제 월요일의 스물 네 시간이 지나갔다.

둘째 날,
글썽이는 내 눈은 생글 웃어 보이는
사진 속 당신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
한 시간이 스물 네 번,
간신히 화요일의 스물 네 시간이 지나갔다.

셋째 날,
응어리 진 듯 답답한 내 가슴은
보고 싶은 당신으로 가득하다.
한 시간이 스물 네 번,
기어서 수요일의 스물 네 시간이 지나갔다.

넷째 날,
오감(五感)이 내 귀로 쏠린 듯
잠자고 있는 전화기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한 시간이 스물 네 번
힘겹게 목요일의 스물 네 시간이 지나갔다.

다섯째 날,
마구 깨물린 듯 헐어버린 내 입 안.
침은 마르고, 도대체 입맛을 찾을 수 없다.
한 시간이 스물 네 번
가까스로 금요일의 스물 네 시간이 지나갔다.

여섯째 날,
그리움으로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사지가 후들거린다.
한 시간이 스물 네 번
거의 멈춘 것처럼 겨우 토요일의 스물 네 시간이 지나갔다.

일곱째 날,
세상을 움직이는 원(原). 동(動). 력(力).
사랑은 그렇게 태어났다.

시 부문 입선
 
 
양철 지붕 집
 
홍애니
 
 
검은 콜타르를 칠한 양철 지붕 집
복사꽃밭에서 뭉게 뭉게 피어나는 분홍 구름이
봄 마다 날카로운 생철 치미에 걸려 찢어졌다.
죽거나
태어나거나
사라지거나
떠나거나
사람들의 일은 늘 그랬다
봄 바람이 몹시 불고
분합문의 유리는 깨어져 나갔고
솜씨 없는 목수가 다녀간 뒤에
처마끝에 디룽거리던 양철 차양은 떨어졌다
비가 들이쳤다
내 책이 모두 젖었다
펌프로 물을 길었다
내가 길어 나른 몇백 양동이의 물들이 다시 내게로 쏟아졌다
걸레를 빨아 걸레질을 했다
모든 문에 걸쇠를 질렀다
몹시 덜컹거리는 솜씨없는 목수의 분합문은
소리를 지르더니 더욱더 빨리 삭아 갔다
걸쇠의 구멍은 쉽게 헐거워 졌고
우리집 처마는 너무 짧았고
봄 햇살은 회벽의 틈새로 재빨리 빠져나갔다.

 

수필 부문 입선

이름 외우기 
    
박혜정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달란트가 다 다르고, 그 반대로 잘 하지 못하는 것도 다 다른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전화번호와 사람이름을 정말 잘 외우지 못한다. 그래서 당황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유전인가 싶었는데 우리 어머니를 보면 위의 두 가지에는 탁월한 재능이 있으신 듯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외우신다. 인간 전화번호부라고 할 정도로. 그러니 유전은 아닌가 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제일 힘들 때가 말썽꾸러기를 지적해야 하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이다. "야, 너, 너, 아니 너 뒤에," 그렇게 부르다 보면 왠지 나도 미안해진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 이름 대신 별명을 효과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즉 아이들이 가장 안 되는 부분을 별명으로 불러서 고치게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내가 바이올린 선생이다 보니 연주할 때 활을 똑바로 긋지 못하는 아이한테는 '똑바로', 임시표 등을 지키지 않는 학생에게는 '지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또 도전 의식이 강한 어떤 남자 아이는 쉬운 곡이라고 하면 미리 못 하겠다고 하고, "어려운 곡인데 할 수 있을까?"라고 하면 오히려 잘 한다. 그 아이에게는 '청개구리'라는 별명을 붙여서 부른다. 이렇게 부르다 보니 아이들의 나쁜 습관이 고쳐지고, 나도 이름을 외우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는 일석 삼조의 효과가 있었다. 나는 이름은 외우지 못해도 별명 만드는 것에는 달란트가 있나 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수업을 한다고 하니까 예전에 본 영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이 생각난다고도 한다.

이름을 외우지 못해 당황스러웠던 일화를 몇 가지 소개해 보면, 얼마 전에 전화를 걸었는데 누구한테 전화했는지 이름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서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생각해내기 위해 "아, 거기 이러이러한 학교에 다니고, 어쩌고저쩌고......" 시간을 끌면서 겨우 이름을 떠올린 적도 있었다.

또 한번은 문학의 밤 행사에 갔는데 갑자기 선배님이 오시더니 "다같이 노래 부르는 순서에 나가서 노래 좀 같이 해줘요" 라고 하셨다. 그래서 "피아노 반주는 있어요?" 라고 했더니, 반주 없이 해 보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망설이고 있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서 일단 단상 위로 올라갔다. 단상에 서니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피아니스트가 눈에 띄었다. 나의 경우 일상적일 때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그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름이 생각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마이크에 대고 "저, 피아노 반주 좀 부탁합니다"라고 했더니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내가 가리킨 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간신히 내가 누구를 가리켰는지 알고 그 분이 피아노를 쳐주어서 노래 부르는 순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만, 왠지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그 피아니스트가 조용히 내게 와서 물어보았다. "내가 누군지 이름을 모르셨어요?" 그 순간 웬일인지 이름이 기억 났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제가 왜 모르겠어요. 이문희씨잖아요" 라고 말하면서 그 순간을 넘겼다.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 사람이 오면 멍멍 짖거나 졸졸 따라다닌다.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처음 온 학생 엄마가 "이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어보았다. "쿠니예요"라고 했더니 그 엄마가 바로 "쿠니야"하고 불렀다. 그랬더니 조금 전에만 해도 짖기만 하고 반응을 별로 보이지 않던 우리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도 자기 이름을 부르면 꼬리를 치며 좋아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들이 있은 얼마 후에, 이름을 외우지 못해서 당황했던 기억들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왜 그렇게 이름이 외워지지 않는 걸까? 이젠 정말 난처해지기까지 하네." 그 말을 듣고 한마디 말 대신 나에게 "이런 것 들어 봤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 가만히 들어 보니 바로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였다. 열 마디의 말보다도 그 시 한 편으로 느껴지는 바가 컸다. 정말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무의미한 존재에서 의미있는 존재로 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이름을 외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심사평

가능성 많은 글 발견 반가워

이영철 / 심사위원장·문학평론가
전 밴쿠버 문인협회 회장

이 새해에 신인들이 쓴 작품들을 대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 중 가능성이 많은 글을 만나게 되면 반가움이 첨가된다. 문학의 정서가 풍성한 사회는 어느 시대건 건강성을 잃지 않는다. 건강성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인격, 삶의 품격과 내일에 대한 꿈을 지탱케 한다. 금년 역시 많은 작품들이 들어왔다. 가볍게 느껴지기만 하는 인터넷 문자들의 홍수 속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지면에 버젓이 나오는 블랙메일성 사유들의 난무 속에서도 신춘문예 응모작들이 이렇게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가.

시 텍스트는 언어(기호)의 축과 표현(개성)의 축, 그리고 현실(체험)의 축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지거나 결핍되거나 할 경우 진정한 시의 생명은 사라지고 만다. 이 삼위일체 긴장을 숙성시키는 유무와 차이에 따라 시의 맛은 구별된다. 김석봉의 '아침 파도', 홍현승의 '아침', 홍애니의 '양철 지붕 집', 박동순의 '신창세기'외 1편이 선별되었다. 후자의 경우 시적 긴장감의 익숙한 전개가 눈길을 멈추게 했다.

수필은 무엇보다 삶의 체험이 바탕이 된다. 비단 꾸며진 이야기일지라도 소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수필 부분에서 허억의 '거꾸로 뒤집히는 배'는 자신의 이웃을 통해 무너져가는 인간관을 다룬 단단한 작품이다. 정재연의 '복도 많은 여자'외 1편에서 산만한 이미지 전개만 다듬는다면 적지 않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김진민의 '변신', 박혜정의 '이름 외우기'는 일상을 통한 수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소설 부문에서 예심을 넘어온 전주현의 '동상이몽', 조명의 '추락'은 기교적 측면에서 볼 때 무리가 없었다. 두 작품 모두 인물, 주제 설정에 있어 다소 어색한 점은 있었지만 소설에 대한 잠재력들이 이를 감싸기에 충분하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금년 심사위원 전체의 동일한 의견은 '작품들의 수준에 편차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글쓰기의 기본을 거친 일정한 수준을 넘는 글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요, 하나는 눈에 띄는 수작이 보이지 않아 당선작이 없다는 것이다. 입상권에 들지는 못했어도 아까운 작품들이 적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신춘문예는 완성된 작품 이전에 가능성이 있는 신예들을 기다리고 있다. 응모자 모두가 정진하여 건강한 삶을 제시하는 문학인들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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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Hines Ward 2007.02.08 (목)
by Angela MacKenzie I freely admit that I'm not a sports fan by nature, and of all sports, football has always appealed to me the least. But even I wasn't immune to the hype surrounding the Super Bowl Game this year.So this past Sunday afternoon, as I flipped through the TV channels, I paused on the game's pre-show programming, hoping to catch one...
치대 임상 학생들이 진료... 지도교수가 감독 대기 기간 길어 서둘러 예약하는 것이 중요
캐나다에 이주한 한인들이 공통적으로 놀라는 것 중 하나는 치과 치료를 받은 후 지불해야 하는 진료비가 한국보다 크게 비싸다는 점이다. 매년 한두 번씩 받는 일반 정기 점검도 부담스러운데 좀더 전문적인 치료를 요하는 경우라면 그 부담은 더욱더 늘어나게...
대부분의 새 이민자들은 근무와 관련되어 병을 얻었거나 상해를 입었을 경우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정보가 부족하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노르반 폭포를... 2007.02.08 (목)
노르반 폭포를 바라보며 술잔을 높이 들고
望雪中魯磐瀑布而擧杯눈 내리는 Norvan 폭포를 바라보며 술잔을 높이 들고 紛塵君莫道 골치아픈 세속일랑 그대여 말하지 마라仙興我方濃 신선의 기분  바야흐로 난 무르익네宇宙瀑聲裏 우주라는 시간, 폭포 소리 가운데 있고乾坤一杯中 천지라는 공간, ...
일교차가 큰 환절기가 되면 한차례 감기가 유행한다. 특히 요즘 대학 캠퍼스에서는 화창한 오전 날씨만 보고 화사한 봄 옷을 꺼내 입거나 탱크 탑에 얇은 재킷을 걸치고 한껏 멋을 부리고 나왔던 학생들이 다음날에는 콧물을 훌쩍거리거나 기침을 하며 수업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칼 와이먼 UBC 교수
지난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칼 와이먼 박사가 올해 1월부터 UBC에서 일을 시작했다. 캐나다 대학 중
밴쿠버 주말여행 동호회
밴쿠버 주말여행 동호회는 여행을 좋아하는 주부 정혜정씨가 밴쿠버 근교 여행을 즐기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네이버에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고 회원들과 모임을 가진 것이 지난해 9월. 평균연령 30대, 현재 가입 회원 수 200명을 넘어섰다. 한국에서 가입한...
노숙자 문제 2007.02.08 (목)
희대의 살인마 로버트 픽튼에 대한 재판이 캐나다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점점 드러나는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행 방법과 자신의 죄를 모르는 살인마의 소식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49명을 살해하고 1명을 더 채워...
BC 지진발생 위험 가장 높아 작은 지진 하루 평균 4건 꼴
지난 주말 BC주 남부 해안에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지진에 대한 문의가 쏟아졌다.
과학교육혁신 위해 UBC '삼고초려' 영입 연구 뿐 아니라 교수법에도 최고로 인정
[특별인터뷰] 노벨상 수상자인 칼 와이즈 UBC 교수는 지난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3개월간 1500여건
밴쿠버 경찰은 최근 다운타운 지역에서 차량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운전자들에게 주의를 촉구했다. 경찰은 지난 3개월간 주차장이나 길가에 세워져 있는 차량의 유리창을 깨고 차 안에 있는 물건을 훔쳐간 사건이 무려 1500여건이나 접수됐다고 밝히고...
뉴웨스트민스터와 리치몬드를 잇는 퀸스브로우 브리지 양방향 차량 통행이 다음 주 14일과 15일 밤 12시 30분부터 새벽 4시 30분까지 임시 통제된다. 차량 통행이 통제되는 시간 동안 운전자들은 나이트 브리지나 패툴로 브리지를 이용해야 하며 퀸스브로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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