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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끝난 자리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1-15 00:00

우리나라의 상가(喪家) 풍경을 가만히 떠올리면 세계 여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것들이 참 많다. 깊은 슬픔의 상주가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빈소 앞의 조문객들은 경건하게 망자의 명복을 비는 모습까지야 여느 나라의 그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지만, 조문객들이 마지막으로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빈소를 벗어나 조금 옆자리로 옮기면서부터는 완전한 분위기 반전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상가 풍경이다. 향내만큼이나 엄숙하던 사람들은 상주가 마련해 놓은 술자리에 합류하면서 반가운 얼굴, 아니면 그 동안 소원했던 얼굴들과 왁자지껄한 만남을 이루는, 그야말로 잔치에 들게 된다. 죽은 자와 이별하는 공간에서 산 자들이 만나는 공간으로 전이(轉移)되는 것이다.

동일한 공간 안에서 침잠하는 죽음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산 이들의 생명력이 너울대는 공간을 일궈내는 우리의 상가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청준의 소설 ‘축제’에서도 상가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고, 서로 화해하는 가운데 침통한 장례마저도 더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들의 잔치로, 축제로 승화시키는 공간인식전환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우리 상가의 풍경이 표면으로는 무척 자연발생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잔치에 임하는 우리 고유의 심성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복잡한 내적 작용을 거치면서 감동이 머무는 축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의도적 노력이 작용한다는 얘긴데, 그 의도의 핵심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나는 잔치 또는 축제의 구성원들이 지니는 허(虛)한 마음이며,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서 서로 건네는 위안과 화해 같은 나눔이라 하겠다. 허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나누는 것도 없는 자리는 애초에 잔치로 성립될 수 없다.

이러한 핵심의 전제는 장례가 잔치로 전이되는 것과 같은 특별한 곳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잔치, 축제에 적용된다. 허한 것도 없고 별반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잔치나 축제가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잔치나 축제는 일상의 연장이 아니다.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시간, 특별한 모습을 지니는 것이 잔치와 축제의 형태다. 단조롭고 고단한 일상에서 축적되는 마음의 허함을 지니고 나와, 모자란 대로 그나마 서로에게 내어주는 위안과 위로가 모든 잔치와 축제의 본연 모습이라는 관점에서, 허하지도 않고 또한 내어줄 것도 없는 이들에게 축제의 필요성은 상실된다.

무대와 공연 현장에서 지내온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그 동안 무대를 들이고 내던 일이 도대체 얼마 일까. 무대를 들이면서는 가쁜 긴장과 기대에 소름이 돋았고, 무대를 내면서는 말로는 다 못할 허전함에 빠져들었던 게 그야말로 숱하다. 그런데 요즈음엔 공연이 끝난 텅 빈 무대, 축제가 끝난 빈 자리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예전에는 없던 느낌에 젖는다.

똑같은 망치질인데도 무대를 만들 때의 소리와 무대를 거둬낼 때의 망치소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이다. 잔칫상을 차릴 때와 치울 때의 소리도 전혀 다르게 들린다. 같은 망치질이라도 무대를 거둬낼 때의 소리가, 그리고 잔칫상을 치울 때의 소리가 훨씬 울림이 크다.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이 저마다 소박하게 내놓은 위로와 위안들을, 다시 마음마다 죄 나눠 담아가고 텅 비워진 까닭이다. 잔치가, 축제가 모두 끝나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 자리는, 차릴 때와는 비교 할 수 없는, 보다 큰 공명을 만들어 낸다.

잔치는, 축제는 그리고 무대는, 선한 의도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에 의해 성립되는 생명체다. 가족과 친구와 또는 연인과 손을 꼭 잡고 그 곳으로 소박한 걸음을 옮겼던 사람들, 그 날만은 세상사는 악다구니도 없이 선한 미소를 나누었을 사람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의 그런 의도적인 마음 씀이 스스로를 축제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축제를 성공에 이르게 한다. 또한 잔치가 끝나면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한, 잔치는, 축제는 계속 된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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