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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크릭 온천을 찾아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1-04 00:00

丙戌晩秋探淸溪溫泉有詩興而題
병술년 늦가을 Clear Creek Hot Spring을 탐사한 후 시흥이 일어 제시하다.
 
衰病各山遊 노쇠하고 병든몸이 산이 좋아 노니는데
探勝不辭遠 비경을 찾는데야 길먼것이 문젤소냐
馳輪岐嶇路 가파르고 험한 길을 차를 몰아 들어가니
幽谷樹參天 심산유곡 나무들이 하늘을 웃찌르네
繞泉煙霧凝 연기안개 자욱히 온천주위 어려있어
漬身羽化仙 이내몸을 푹 담그니 우화등선 나로구나
紅塵豈敢犯 세속의 더런먼지 어찌감히  범하리요
淸溪自流前 옥같이 맑은 시내 절로 앞에 흐른다오
 
丙戌陽十月十九日於湖裏鎭附近淸溪溫泉梅軒鄭鳳錫得意
병술년 양10월19일 Harrison 부근 Clear Creek자연온천에서 매헌 정봉석은 뜻을 얻다.

21세기의 첨단의학이 암 치료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는 하나 암은 여전히 난치병이다. 환자 자신의 암에 대한 공포야 말해서 무엇하리요마는, 암환자들에게는 여전히 "곧 죽을 사람"이라는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이 아직도 찍혀서 따라다닌다.

암에 걸려본 사람이 아니면 그 심정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요즘처럼 체험문화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해도 암체험을 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어디 있을라고... 그런 의미에서 암에 직접 걸려본 사람들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서 그들의 암울한 심리적 스펙트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투병 중 주위 사람들에게 느꼈던 미묘한 감정의 기복도 주위에서 이해한다면 보다 밝은 투병환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필자는 3년전 청천벽력 같은 대장암 선고를 받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고의 투병 생활을 통해 이 문제의 현장 체험을 톡톡히 한 사람이다. 산행을 통해 발견한 비경의 묘사도 중요하지만 나로선 산행이 암을 극복했던 비장의 무기였던 만큼 그 이면의 투병과정과 적나라한 체험을 있는 그대로 피력하는 것 또한 그만큼 중요한 일이지 않을까.

이게 암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던 것이 2003년 11월. 하지만 검진 정체현상으로 병원에서 확인 진단이 나온 것은 2004년 2월. 다시 예의 줄서기를 거쳐 우여곡절끝에 수술을 받은 것이 그 해 4월이었으니, 조기 발견 수술이 암치료의 관건이라는 상식이 이곳은 통하지 않았었다. 수술을 받기까지 거의 6개월 동안의 기다림이란 메가톤급 심리적 고문에 다름 아니다. 가뜩이나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와중에 병원에서 연락은 없고 자나깨나 암세포가 점점 기세를 떨쳐 시시각각 모든 장기로 전이되어 간다는 것을 생각하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나는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하는 듯한 분노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무력감에 치를 떨어야 했었다.

화부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 엎친 데 뒤친 격으로 우리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었던 커피숍마저 이업계의 기린아 'S'커피가 몰내에 쑤시고 들어와 문을 닫아야 하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도 병마와 함께 약속이나 한 듯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럭저럭 나에 대한 불길한 소문이 퍼져나가 집 또는 병원으로 위문을 오기 시작했다. 정말 진심으로 고마웠다.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점만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제 1차적으로 느끼는 환자들의 공통된 심리 상태이다. 왜냐하면 환자 자신은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아니 이제 곧 세상과 결별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해있으니 그렇다. 그런 계제에 '마음을 크게 먹어라'느니 '암은 낫는다'라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암환자들은 친속을 포함한 여타 건강한 모든 사람들과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의 궤를 같이하고 교분이 있었다 해도 암선고를 받는 순간부터 주파수를 달리한다. 이세상 그 누가 와서 위로를 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위로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만이 계신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다름 아닌 환자 자신일 뿐이다. 이 글의 모두에 피력한 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런 이상 암환자들은 초감도로 인정세태의 변화를 감지한다. 암환자들은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은연중에 변하고 있거나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음을 초감도 안테나로 수신한다. 전부다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막말로 '저 사람은 이제 곧 갈 사람'이니 나와의 이해관계도 이제 끝났다는 식으로 대하거나, 숫제 백안시 하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 유명한 서한(西漢)시대, 불후의 사성(史聖)으로 회자되고 있는 사마천(司馬遷)이 중과부적으로 적에 투항한 명장 이능(李陵)을 변호하다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자신의 생식기를 절단 당하는 궁형(宮刑)을 당했다. 그 후 요양 중 자기의 절친한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피눈물로 쓴편지 '보임안서'(報任安書)에 "염량세태"(炎凉世態)라는 말이 나오는 데 필자는 투병기간 중 이 말에 얼마나 공명했는지 모른다. 사마천이 사관의 성격상 한무제에게 직언을 하다 남자로선 죽느니보다 못한 가장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자, 그전에 절친하고 뜨거웠던 주위의 옛 친구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을 빗대어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던 것이다. 암환자들이 느끼는 심정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오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암투병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 말에 철저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투병현실에 직면한 내가 취할 수 밖에 없었던 선택이 바로 산행이었다. 결핵이나, 소위 한센씨병이라는 나병, 그외 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이 산자수명하고 한적한 곳을 요양지로 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인간은 변덕을 부리지만 산은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서있으니 그렇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시사철 옷만 갈아 입을지언정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친구로 저만치 항상 서 있지 아니한가. 나로서도 사람들에게 위로받기 싫어 문병을 사절하고 산으로 향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던 것이다. 산행을 나가 듬직하고 믿음직스런 산으로부터 푸근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 산으로 향했던 것이다. 산은 모든 것을 실어주고, 길러주고 , 감싸주고, 포용하고, 위무한다. 초로인생이라는 보잘 것 없는 목숨이 의지할 곳은 집도 아니요, 병원 침대도 아닌, 저 산에 있었던 것이다.

나의 클리어 크릭 온천 산행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투병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지극히 작은 점의 하나일 뿐이다. 자연 온천이 제공하는 가슴 뿌듯한 낭만과 우화등선한 느낌도 암세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은 전리품의 하나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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