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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나무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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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6-08-14 00:00

프레이저밸리 한국어학교 이사 김재상씨

그는 한그루 나무 같았다. 뿌리는 힘차게 땅으로 뻗어 내렸고 견뎌 온 세월의 풍파만큼 굵은 나이테를 자랑하는 아름드리 나무. 쉴만한 그늘을 만들고 바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김재상 옹(翁)의 집은 한반도 모양을 본 뜬 연못과 독도까지 표시한 장미정원이 볼거리다. 담장 밖으로는 아보츠포드(abbotsford) 근교의 농가풍경이 고즈넉하다. 수구초심(首丘初心)하는 마음으로 아내 길명자씨와 함께 정성 들여 가꿔왔다. 5에이커(약 6200평)에 달하는 정원마당 곳곳에는 조국사랑이 물씬 배어나온다. 그는 “백두산 천지도 만들어 조만간 한반도 전체의 모습을 완성하고 싶다”며 40여년전의 시간으로 되돌아 갔다.

# 기억 하나 – 오늘을 있게 한 사람들

1966년 이민했으니 올해로 만 40년, 강산이 네 번 바뀌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맥라우드(Macleod) 박사와 맥도날드(MacDonald) 박사를 떠올렸다. 맥라우드 박사는 토론토대학교 부설 커넛 의학연구소장으로 뇌염백신을 함께 개발한 주역이다. 뇌염백신의 인체실험까지도 자진했던 맥라우드 박사는 그를 친아들처럼 여겼다. 주경야독하며 바이러스학의 체계와 이론도 이때 갖추었다. 맥도날드 박사는 그가 BC주 농수산부 동물질병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할 당시 고락을 함께한 직장 상사다. BC주 수의학회장을 지낸 맥도날드 박사는 근검절약하면서도 사회에 봉사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두 사람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은인이자 귀감(龜鑑)이었다.

# 기억 둘 – 34대 1의 경쟁 실력으로 뚫어

1975년 BC주 농수산부 동물질병연구소에서 치른 면접시험은 경쟁률이 34대 1. 전국에서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이 모였지만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면접관을 상대로 문제점 해결의 방안과 입사 후 계획을 당차게 설명했다. 역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유색인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도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실력으로 넘었다.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동물질병진단 방법인 ‘PCR’기법을 개발, 캐나다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또, 소나무의 일종인 헴록과 닭똥을 섞어 만든 버섯 재배용 비료를 개발하고 농가에 보급함으로써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었던 이 연구소에서 2000년 정년 퇴임했다.

# 기억 셋 – 희망의 나무를 심다

1933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재상씨에게 6.25전쟁과 한반도의 분단은 큰 아픔이다. 기억마저 아린 상처, 전쟁이후 한번도 가본적 없던 북한 땅이었다. 1990년이후 세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그곳에 희망의 나무를 심었다. 북한의 설탕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캐나다 단풍나무(Maple Tree)의 종자 50만개를 공급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오듯 캐나다와 미국 전체를 수소문해 어렵게 구했다. 캐나다 단풍은 토양도 비슷하고 기후환경으로 볼 때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어느덧 10년 이상 자란 단풍 나무들은 곧 메이플 시럽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사진)

# 기억 넷 – 민족학교 설립의 꿈

‘나무는 큰 나무 밑에서 자랄 수 없지만 사람은 큰 사람 밑에서 큰다’는 말이 있다. 김재상 옹이 필생의 과업처럼 추진하고 있는 일도 ‘사람 키우는’ 일이다. 그는 “우리말 교육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치 않을 우리 정신의 뿌리이자 토양”이라고 강조했다. 찾는 이들마다 ‘뷰티풀 코리아’를 연발하는 장미정원은 민족교육과 민간외교의 현장으로 삼았다. “이민 1세대의 의무이자 동포사회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하는 한국민족학교(KEI) 설립의 꿈도 조금씩 여물고 있다. 사람들의 뜻을 모으고 힘을 보태는 10년 목표의 큰 걸음은 이미 시작됐다. 그는 프레이저 밸리의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 

캐나다 밴쿠버 동포사회의 원로 김재상씨는 1933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제일고보 재학 중 6.25전쟁을 만났다. 월남후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며 배재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1993년 프레이저밸리 한인회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프레이저밸리 한국어학교와 밴쿠버 한인장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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