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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오선지 2020.11.09 (월)
가을의 오선지유우영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단풍잎이 팔랑거리다가 지루한 지덧줄을 걸치고 나뭇가지에 쉼표를 그리면새들도 지지배배 음표를 새기며 허공으로 날아간다 금 수저로 태어난 잎은 가을 내내 뽐내더니시들시들 어디론가 사라지고뒤늦게 햇살에 물오른 단풍잎들숨 날숨 풍성하게 화음을 이루고한음 한음 음계를 밟고 사뿐히 내려온다
유우영
틈새 2020.07.14 (화)
언덕 넘어 날아온 풀 씨모퉁이에 오롯이 자리 잡는다틈새 사이로 피어오르는 들풀잘났네 못났네 다툴 사이 없이키 순서대로 고개를 내민다 빈틈만 보이면 올라서기 바쁜 세상살이 올려다보느라 고개 아픈 내게무릎 굽히며 내려다보게 하는 민들레 모든 걸 내려놓고 하얀 씨방이 되어가볍게 날아오르며 나를 힐끗 뒤돌아본다
유우영
뜨개질 2020.02.10 (월)
                                       안 뜨기 겉뜨기 엮으면서 들숨 날숨 오늘도 하루를 저어간다 오징어 문어다리 만들어가는 동안 끊어진 실마리 새롭게 묶으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원앙새 한 쌍 새겨 넣는다 돛단배에 순풍 달듯 희망의 날개 펼쳐보지만 세상살이 만만치 않다 언젠가 팔아먹은 금반지 떠올라 한 눈 파는 사이 피라미 새끼가 달아나 버린다 깜짝 놀란...
유우영
여름 끝자락 2019.08.29 (목)
베란다 난간에 힘겹게 기어오르는 나팔꽃 쪼르르 날아온 새 한 마리가 그 주위를 서성인다 한줄기 빗방울에 꽃잎은 생기가 돌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조잘거린다 새가 떠나자 나팔꽃 홀로 흔들거리더니 눈물 몇 방울 매달아 놓는다 가을은 새색시처럼 사뿐사뿐 걸어오는데 어머니 치마끈 놓친 아이처럼 나만 뒷걸음질 치고 있다 
유우영
선물 2019.01.29 (화)
들끓는 세상 속으로 아기천사가하얀 눈가루 선물을 뿌리신다어린 시절 새벽송이 어렴풋이 들려올 때면문 앞에 선물이 걸려 있곤 했다금방울 은방울 흔드는 구세군누군가의 선물을 건네고 싶은 오늘늘 내 곁에 오시는 당신을 생각하면서날리는 눈 한점 손바닥 위 받는다
유우영
칠월 2018.08.08 (수)
하늘과 함께 자라나는 숲기린처럼 목이 길어지고퍼즐처럼 초록물감 번져간다.숲이라 해서 한곳만바라보는 것은 아니다날아다니는 새에게 손짓하고건너편 숲 친구에게 한 눈 팔면서어부렁더부렁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바람도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휘파람새도 졸음 쫓는 7월때론 바깥세상 꿈꾸며키 작은 나무가자꾸만 목이 길어지는 7월
유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