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봄은 오고야 만다 2017.02.04 (토)
봄은 눈으로 온다흰 솜이불 아래 연두색 풀빛으로언 땅 뚫고 나온 크로커스의 여린 입술로 봄은 귀로 온다얼음꽝 아래 졸랑거리는 도랑물로봄 빨아들이는 나무의 힘찬 박동으로 우리의 봄은 아직 멀었을까눈에 귀에 봄빛 선연한데살갗 파고드는 한기 가시지 않아 아린 겨울 난 나무가 더 튼실하다지긴긴 어둠에 지쳐있는뿌리에 희망의 흙손 한 삽 덮어주고 겨울이 깊으면 봄이 더 찬란할 거야꽃샘한파에 떨고있는무명의 풀들에게...
김해영
꽃등을 켜고 2016.10.08 (토)
나이탓이아닌게다마음의등불이까막까막한게설레임이잦아들고분별의날도너무벼려이젠사랑못하리라그리여겼었다버려둔묵정밭에성근볕물고수줍게매달린꽈리한줄기,불현듯소녀를불러와마음에환한꽃등피어난다나이탓이아닌게다꿈이여윈탓이지
김해영
1 %의 기적 2016.06.17 (금)
한 사내를 만났다머리 속에 좀이 슬어한 달밖에 살 수 없었던 사내,불가마 속에서 얼마나 담금질을 당했을까까맣게 타버린 사내의 사마귀 손에들린 책 두 권,숯불 그을은 내가 났다아니 비릿한 피내인지도 모른다잉걸불 지피느라 얼마나 풀무질을 했을까식은태 무늬진 이마를 들추며1%의 기적이 일어났다고자랑하는 사내 앞에서망각의 패총에 묻힌내게 왔던 기적을...
김해영
창 밖에 어둠의 자식들이 서성인다백련차 한 잔이 생각 나는 건떨고 있는 짐승의 그림자 얼핏 본 탓마구 빚은 황토빛 찻잔에팔팔 끓다 문득 멈춘 찻물을 붓고찻잎 호르르 날리니어둠의 비늘이 뒤따라 곤두박질친다바람을 머금고 속 비워내는대나무 수행하듯가시에 찔리며 목 놓아우는가시나무새 인고하듯함묵하는 세월 휘젓지 못하고고요히 묵상하다가흐물흐물해진아집과 번뇌를 벌컥벌컥 들이킨다창밖에 여명이 읍하고 서는 순간.
김해영
서리꽃 2015.12.04 (금)
이른 아침산에들에오톨도톨 돋는 소름 이슬이 되지 못한 눈물이안개가 되지 못한 번민이눈(雪)이 되지 못한 사랑이 떨군불면의 각질 삭이지 못한 사랑의 불꽃과털어내지 못하는 번민의 재와훔치지 못한 눈물방울 달고서 흔드는무채색의 깃발 훈기 없는 독수공방에어쩌다 멈춘 햇살 걸음 따라번지는소박녀의 홍소 시간의 태엽을 감으며 피었다저무는초로의 서리꽃
김해영
제 5의 계절 2015.08.08 (토)
우리의 불꽃놀이는 끝이 났는가여름 밤하늘을 수놓던불꽃 같은 사랑허무의 꼬리 드리우며지상으로 곤두박질치노니 한여름밤의 꿈이었던가하냥 봄일 듯성성한 여름일 성싶던 청춘도여윈 다리 끄을며노을 속으로 사위어가고 제 5의 계절에 살아야 하는가사랑의 불꽃도 사위고청춘의 돛폭도 찢긴 채별똥별처럼 추락하다가문득은빛 미리내 여울목에 이르노니
김해영
-하딩 아이스필드 트레일 익싯 빙하(Exit Glacier) 자락에서 캠핑하는 걸로 알라스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늘이 말린다. 창에 베일처럼 드리운 빗줄기를 보고 갈등을 한다. 하딩 아이스필드까지 포기해야 하나? 밴쿠버 산꾼에게 포기란 없다.   아침까지 하늘은 울음을 거두지 않는다. 그래도 비장비를 단단히 챙기고 주먹밥과 물병이 든 배낭을 메고 나선다. 익싯 글래셔 하이웨이 10km를 달려 익싯 글래셔 내추럴 센터에 도착...
김해영 시인
매킨리 산 베이스- 탈키트나 공원의 새벽길은 고즈넉하다. 인적 때문에 잠적했던 동물들이 새벽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그 바람이 헛되지 않아 널찍한 들판에 그리즐리 곰 가족이 보인다. 아기곰들이 서로 엉겨 장난을 치고 어미가 그 주위를 경계한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왼편 언덕 숲이 펄럭거린다. 작은 동물이 나무 그늘에서 이 편을 돌아보고 있는데 눈이...
김해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