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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 2015.08.15 (토)
장 담글 때 목까지 치솟는 울화통을 같이 묻어라 짠맛 단맛 버무릴 때 손가락의 골무자국을 벗기고땟국물 내리는 눈물로 우선 씻겨 내려라깊은 골이 진 이마주름 줄기의 땀도버무려진 장이 진국이 될 때흘러내리는 우수의 맛을 머금게 하리라한 수저 두 수저 급조된 인스턴트 맛을장독대 깊은 항아리 뱃단지 안에서 찾지 말아라후미각이 얄팍하게 길든 어제오늘의 사랑마저도 진득이 썩일 줄 알아야 하겠거늘제발이지 독 안에 몸이라도 한번...
김경래
뜨락의 단풍이 나를 섬겨 그늘을 만들고목련 나무는 우편의 전사처럼 내 옆을 지키며무수한 잎이 머리 위에서따가운 여름의 뙤양을 가려줄 때예쁜 암캉아지 두 마리 내 품에 와 안겨나의 심장이 사랑으로 고동을 친다왕이 되어 총애하는 후궁 났다고꽃을 손보던 왕비가 눈썰미를 찌푸리며지나던 참새들이 허다한 시녀같이재잘재잘 험담이다나는 가끔 왕처럼 대접을 받고시중을 드는 무리에 둘러싸여 밥을 먹는다깨끗지 못한 수족을 위해선 물수건을...
김경래
투명 유리 2015.05.01 (금)
사랑내가 그대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이유리문을 통과한 시간이다보이는 건 그대 얼굴인데부딪는 건 선입견이고 관습이었다하루도 쉴새 없이 통과해야 하는 관계와 환경이 유리문이었다 많은 이는 투명 유리가 회색빛으로 보일 때그 앞에서 멈추어버리지만사랑 그럼에도 눈멀어 그대를 보며오늘도 유리문을 마주하는 것 유리문 뒤의 그대만 보며 달리다가내 머리 부딪힘도 모르는 것 그래 그게 사랑이구나.
김경래
슬픈 선물 2015.03.27 (금)
데이트하며 걷던 종로 거리 누추한 좌판 앞에서 어머니 선물 고르는 가난한 자기 남자가 싫어그녀는 내 어머니에게 화가 났단다  장성한 아들 연애에 몰두할 시간엄마에게 준다고 아기자기 선물 들고 오던 길 그녀에겐 알 수 없는 아린 마음뿐이었단다.   결혼하고 낳은 아들 마음도 넉넉하게 자라더니 외출했다 돌아오며아기자기 선물 꾸러미 엄마에게 건네줄 때젊은 날의 남편 생각에 가슴 다시 아린단다  선물이 가난하면 가슴이...
김경래
앵꼬에 속지말라 2014.12.27 (토)
추운 날 배고픈 날 몸서리치는 날  차 안의 전등도 힘이 없다   내 차는 냉동 탑차처럼  머리 꽁지에 네모나케 난 작은 창이  한쪽 모서리 깨진 약간의 틈으로  바람이 쓰라리게 침투되고 입에선 이산화탄소가 새벽 안개같이  차 안을 간신히 덥힐 때 밥 달라는 아우성 차로부터 올지 몰랐다 들려오는 작은 신음 앵꼬 신호  계기판 얼굴에 시뻘겋게 달라붙은 저 닦달은  내 배고픔의 망각이다   목숨 같은 물 어서...
김경래
핏불의 울음 2014.09.26 (금)
옆집에 개 한 마리 있는데매일 시를 읽는다. 고저의 음률이 있고 슬픈 사정이 있다.다가가 보면 안기려고만 하는데가로막는 울타리가 있어서 들어줄 수가 없다. 옆집 개는 존재 자체를 무상하게 느끼는 것 같다.매일 밥 먹고 오평 짜리 마당에 풀어져 돌고 돌다 햇빛에 엎어져 잠이 든다.그게 다다 반복이다.길에 나가 맘대로 소변을 볼 수도 없고만남도 극히 제한적이라 사회성이란 게우는 시늉으로 근접하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옆집에 개가 있는데...
김경래
짧은말 한마디 "사랑해"미안해 한마디 "사랑해"그리워 한마디 "사랑해"부끄러 한마디 "사랑해"말은 많고 많지만 인간에게 남겨질 마지막 말 한마디는사랑한다는 그 한마디.  지금도 그 말이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은 것은 그 말이 꼭 사랑에서만 나와야 한다는결백한 나의 주장 때문. "사랑해"는 사랑하지 못해도 사랑한다하면 왠지 사랑스러워지는 것이고,미안할수록 사랑한다하면 미안함이 색깔이 변해 붉은 사랑으로 바뀌어지고,그리울 때...
김경래
아프니까 생각이 천연덕해진다. 고질병처럼 자기 자신 이기 골병 주의에 골몰해 지내더니아프니까 다 부질없어지더라. 내가 나를 알건대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프다고도 해봤고관심을 받으려고 아프다고도 해봤고지나친 관섭이 싫어 아프다고도 해 봤지만진짜로 아프니까 아픈 것이 뭔지 알겠더라아프니까 다 부질없어지는 그게 아픈 거더라. 누가 저 샛별 같은 거인들의 업적을 탐해도내가 아프면 이미 나는 거인의 범주에 우뚝 선 것이고아픔에서...
김경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