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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쩍’벌어지게 할 터!”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9-14 00:00

밴쿠버 타악그룹 ‘천둥’ 대표 김성일씨

외국인들의 가슴에 우리 문화 강렬하게 심어주고 싶어

◇ 오직 우리 문화를 알리고 교민 2세들에게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순수 국악난타팀‘천둥’을 키우고 있는 김성일씨. 무용계 파벌싸움과 병폐에 회의를 느껴 무대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떠난 일본 유학길에 골프 학교를 졸업하고 티칭 프로가 된 그는, 일 외 모든 시간을 11개의 국악난타 팀 지도에 쏟고 있다.

그의 발을 떼게 한 것은 한국무용이 아니라‘탈춤’이었다. 우리 나이로 열 일곱 살. 춤을 추면 구경꾼들의 어깨가 절로 들썩이던 타고난 춤 꾼에게‘너는 춤을 추는 게 좋겠다’고 권한 사람은 탈춤을 지도하던 선생님이었다.
망설임 없이 무용과로 진학한 그는 대학원에서 다시 무용교육을 전공했다. 이후 십 수년을‘호남살풀이 춤’에 몰두, 전수자가 되지만 춤을 버리고 무대예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일본 고베대학을 다니며 2년제 일본 골프학교에 등록, 하루 4시간씩 노력한 결과 개교 이래 최초의 조기졸업과 함께 수석졸업생으로 티칭프로 선수가 된다. 그의 과거와 현재는 수많은 땀과 노력, 강직함이 교차한다.

◆ 2세들에게 자긍심 심어 주고파

‘떵더덩 덩더덩~더덩더덩더덩…… !!’
천둥, 신명, 두드림, 얼쑤 등 밴쿠버 국악타악기그룹 11개 팀을 이끌고 있는 김성일씨. 신명 나게 북을 두드리는 학생들 가운데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리를 읽어내고 있었다. 학생들이 북을 두드릴 때 마다 그 강렬한 공명 속에서도 미세한 어긋난 장단 하나까지 정확하게 잡아내는 스승. 그때마다 질책에 앞서 북채를 쥔 그의 손이 움직이는가 싶으면 투박한 듯 청아하게 울려 나오는 북소리가 말을 대신한다.
그의 개인 연습실 벽에는 지난 무용가로서 살아 온 삶이 처연하게 걸려있다. 사진 속에서 그의 춤 사위는 여린 듯 깊은 한을 토해내고 있다.

◆ 호남살풀이 춤 전수자

무형문화재 15호 ‘호남살풀이 춤’ 최선(본명 최정철)선생의 수제자로 ‘호남살풀이 춤’ 전수자 김성일씨의 과거는, 대부분 한국무용가로서의 삶으로 채워져 있다. 이민 전, 전북도립국악원 수석무용수로 기방무용(妓房舞踊)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호남살풀이 춤의 명맥을 이을 다음 세대로 공인 받던 그는, 한(恨)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으면서 맺고 풀고 어르는 묘미와 함께 고도의 절제미가 잘 드러나는 춤으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그의 춤꾼 흔적은 전북도립국악원 홈페이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전북도립국악원은 99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타이틀로 청소년들과 일반인들이 국악을 쉽게 감상하고 이해 할 수 있도록 판소리, 관현악, 한국무용 등 국악의 다양한 장르를 엄선하여 토요일마다 우리 문화공연 무대를 마련했다.
 “춤이 좋아서 미친 듯 춤을 추며 제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10대 20대 시절을 몽땅 쏟았지만,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갈고 닦은 실력을 가진 제자들을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키려면 ‘뒷거래’가 아이의 재능을 앞지르는 일…… 그러기 위해서 가장 순수해야 할 예술인들이 학부모와 거래를 해야 하고…… 무대 밖에서 이루지는 일들이 도저히 적성에 맞질 않아 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춤 꾼은 오직 춤을 추는 무대 위에서 ‘춤’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춤만 잘 추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좌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듯. ‘무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을 들으며 춤이 전부이던 그가 춤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그것 뿐이었다.

◆ 최선 선생님과 공연, 잊을 수 없는 감격

“선생님과 한 무대에서 공연 하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이미 10년 무용을 했지만, 선생님 아래서 다시 5년을 더 배운 뒤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 감격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죠. 눈물을 흘렸습니다.”
최선 선생은 제자에게 예술가 이전에 ‘겸손’을 먼저 가르쳤다. 그때 배운 스승에 대한 예우와 고마움은 교민 2세들로 구성된 난타 팀 ‘천둥’을 지도하며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스승보다 젊은 제자가 힘도 좋고 순서도 잘 외우지만 예술은 그런 게 아니란 거죠. 무용이나 예술은 순서가 아니라 수 백 번 공연을 하면서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이끌어내는 감정을 그 세월을 겪지 않은 제자가 절대 표현해 낼 수 없습니다. 어차피 선생님이나 저나 동작이나 순서가 같으니 뭐 별거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제자가 흉내내지 못하는 선생님의 춤 사위가 있지요.”
그 역시 아직 제자들과 같은 무대에 선 적이 없다. 이는 결코 권위적인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제자들의 실력을 얕잡아 본 행동도 아니다. 꼭 무대에 함께 서지 않아도 스승은 이미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에게 연습은 곧 공연이다. 철저하고 완전하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끌어내어 혼신을 다해 가르치는 그에게서 배우는 제자들은, 1년에 한두 번 무대에서가 아니라 날마다 연습실에서 스승의 실력과 마주한다. 진정한 스승의 가르침은 그래야 한다는 믿음, 당당한 자신감이다.

◆ 분신 같은 ‘천둥’ 지도에 혼신의 힘

“천둥은 취미생활을 위해 가르치는 팀이 아닙니다. 너희가 한국인이라는 것, 한국전통문화가 얼마나 대단하고 가슴 섬뜩한 건지 느껴봐라!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부심,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도 우리 한국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이 제 바램이죠.”
인간의 심장박동 소리에 가까워 본능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북소리로 밴쿠버에서 한국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그의 난타 팀은 무대와 거리를 가리지 않는다. 이미 랍슨거리와 위슬러 스키장 등에서 신명 나는 한 판으로 찬사를 받은 바 있는 그들은 외국인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한국문화이며 예술이고 곧 애국이다.
“한국문화가 이정도야? 잘못 알려질까봐 더욱 열심히, 그리고 정확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하죠. 내가 잘못 가르치면 공연을 본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 전체를 그렇게 알 까봐 겁이 납니다. 구경한 대가로, 열심히 했으니까 예의상 동정으로 치는 박수가 아니라 ‘입이 쩍 벌어지게’ 한국문화의 본질을 보여줄 겁니다.”
특히 우리 2세들로 구성된 ‘천둥’팀의 공연을 ‘여름날 소나기를 몰고 오는 천둥처럼’ 외국인들의 가슴에 우리 문화의 뿌리를 강렬하게 심어주고 싶다는 그의 각오는, 곧 색다른 모습으로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적 문화에 본질을 두고 전자바이올린과 올겐, 한국 춤이 가미된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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