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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함께 하는 삶이기에 행복합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8-03 00:00

김치웅씨 前성악가/ 現코리아싱어즈 지휘자

◆ 밴쿠버는 미국 음악 무대 위한 경유지

◇ 코리아싱어즈 지휘자 김치웅씨. 성악과 신앙은 그의 삶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성악을 전공하길 희망하는 차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빠르고 격정적인 표현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격정을 내면으로 절제하며 표현하는 성악가도 있음을 이해하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성악에 있어서 콩쿨에서 성적이나 등수에 연연하지 말고 좋아하는 그 길을 향해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최선’이라는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고.

성악가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김치웅씨.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마흔 일곱, 30년을 음악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또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기에 불혹을 훌쩍 넘긴 그에게 음악은 곧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민 전 그는 한양대학교와 총신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 또, 오페라 가수로 활동했다. 그가 섰던 오페라 무대 ‘라트라비아타’ 에서는 테너 주인공 ‘루돌프’역할을 맡아 호평을 받으며 촉망 받는 신예 성악가로 바쁘게 살았다. 
그의 목표는  미국 무대였다. 서른 두 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이태리 음악학교로 유학, 그리고 밴쿠버로 이민오게 된 것도 이를 위한 수순을 밟은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혼을 하고 유학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생겼어요. 다시 또 둘째가 생겼고, 하는 수 없이 혼자 이태리로 유학을 떠났죠.”
이태리 ‘아레쪼(Arezzo)’음악원과 ‘라티나(Latina)’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한 그는 영어권 음악계에서 문화를 이해하고 미국으로 가기 위해 밴쿠버를 경유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민 직후 시애틀과 LA 등 미국무대를 오가며 ‘메시야’ ‘천지 창조’와 같은 오라토리오 무대에 섰던 것.
“그때만 해도 젊어서 오직 음악을 할 수 있는 좋은 무대가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 갈 수 있을 것만 같았죠. 국경을 넘나들며 한 3년쯤? 왕복 6시간 이상 오가며 무대에 섰다가 돌아오면 정말 힘들어 결국 포기했습니다. ”
미국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생각했던 밴쿠버에 정착한 그는 ‘장로 성가단’과 ‘기독여성합창단’을 창단, 미국무대 진출을 포기한 아쉬움을 달랬다. 2003년에는 ‘마이클 제이 폭스’ 극장에서 솔로 독창회도 가졌다.

◆ 성악을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

“중학교 때까지 노래를 잘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성가대 지휘자와 학교 선생님, 교생선생님들까지 성악을 해보라고 하셔서, 잘 하고 있던 공부 집어치우고 성악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그러나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고 성악에 눈을 뜰 즈음 그의 집안은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파산상태가 된다. 설상가상 장남인 그가 성악 하는 것을 결사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생계조차 막막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악을 고집하던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편법이 횡행하던 예능계 입시부정이었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그 대학의 담당교수에게 레슨을 받는 것이 곧 합격을 의미하던 것을 말한다. 혼자 성악을 공부해서 명문대로 진학 하기란 ‘개천에서 용 나는 일’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음악대학 입학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과 함께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렇게 강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보따리장사로 자식들을 키우시는데, 75년경 한 달에 수 십 만원에서 백 만원씩 하는 교수님 레슨을 받을 여력은 꿈조차 꿀 상황이 아니었죠. 최고 명문대학교에 실기시험을 보던날, 그 학교의 교수님들까지 ‘수석’으로 합격할 것이라는 농담을 건넬 정도였고, 저도 만족할만한 실력을 발휘하고도 떨어졌죠.”
27년도 더 지난 일이다.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서 얼핏 ‘씁쓸함’ 같은 게 스친다.
아픈 경험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곧 실패로 이어졌다는 원망에 앞서 오히려 그를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인간적인 성숙함에 한발 다가서게 했다. 그 한번의 경험이 이후 성악을 그의 곁에 더욱 단단히 붙들어 매어 둔 셈. 신앙도 한층 깊어져 졸업 후에는 신학대학원을 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 지휘자로서 40대는 ‘어린’나이

성악가이던 그의 지휘자로서 변신은 음악의 틀 속에서 크게 변한 게 없어 보이지만, 성악과 지휘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30대에 유학을 떠났을 때처럼 40대에 지휘자로서 새로운 출발은 또 늦은 듯 하다.
“저와 같이 합창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다르지만, 음악계에서 지휘자는 50대도 젊은 나이로 대접받죠. 인천시향 상임지휘자셨던 임원식 선생님께서도 80세 되신 해에 인천시향 객원지휘자로 계시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첼리비타케, 게오르그 솔티, 번스타인, 카라얀과 같은 거장들의 말년 연주는 그야말로 감동적이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무대에 오른 그들이 일단 지휘를 시작하면 악기마다 최고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신비의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은 결코 나이만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또 나이 없이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음악세계가 무한하기 때문에 ‘음악은 젊은 나이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휘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원숙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70세가 되어야 비로소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덧붙인다.

◆ 지휘자 김치웅의 18번 곡은…

“모든 음악가들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저 처럼 합창지휘자는 음악을 사랑하고, 탐구하는 정신적 자세 이외 단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결국 저의 음악세계를 완성하는 바탕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악기가 연주하는 단원들이듯, 합창단 지휘자의 악기는 내 지휘에 따라 소리를 표현해내는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악기죠. 결국 나의 음악세계를 완성하는 것은 곧 단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단원들과 노래방을 가면 지휘자 김치웅씨가 부르는 18번 곡은 ‘사랑이 저만치 가네’,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단골. 이 노래는 ‘노래방’ 용으로 특별히 연습을 해 둔 노래다. 성악가인 그에게도 어쩌다가 부르는 가요는 또 새롭다. 그래서 앞으로 그가 이끄는 코리아싱어즈는 판에 박은 듯 관습적인 곡을 노래하는 방식을 탈피하고, 팝, 클래식, 가요, 뽕짝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폭 넓은 음악을 펼쳐 보일 계획이다. 또한 캐나다에서 자라나는 2세들이 음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유스 코리아싱어즈’를 창단할 야심도 갖고 있다.
지휘자로서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을 받으려면 적어도 ‘70살은 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대로라면, 걸어 온 길만큼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남아 있는 김치웅씨. 나이가 들수록 음악의 열정이 잦아들기는커녕 강한 듯, 부드럽고 깊어지는 그의 진정한 음악세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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