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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 집’출간 계획, 그림은 나에게‘삶’같은 것”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6-15 00:00

전(前), 호암아트홀 디렉터 현(現), 카툰 작가& 캐필라노 슈즈 리페어 숍 대표 이동훈씨

◆ “원래 다른 일 하시던 분이죠?”

“원래 이쪽에서 일하시던 분 아니시죠?”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왠지 어색함이 느껴지고, 또 조금은 불친절하다 싶은 대면 대면한 목소리, 얼굴에서 나이의 흔적은 보여도 세월에 맞물린 풍상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아 던져본 질문이었다. 직업적인 감이었다. 첫 대화가 그랬다.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 73학번. 그래픽을 전공한 그와 사흘 후 노스 밴쿠버 한식당 남한산성에서 막걸리 양은 주전자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나눈 두 번째 대화는 90%가 ‘만화’에 관한 것이었다. 분명 특별한 전직(前職), 과거 그 분야에서만큼 ‘자신 있던 일’ 관련 인터뷰라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작은 그의 그림에 대한 애정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카툰’ 이었지만 그것은 현재 진행형인 일이므로 과거사를 논하는 자리의 주제는 아니었다. 현재 노스밴쿠버 월마트와 나란히 붙어 있는 캐필라노 몰에서 ‘슈즈 리페어 숍’을 하고 있는 그와의 대화는 그렇게 그림 이야기로만 2시간을 넘기고서도 지루하지 않고 신선했다. 그리고 친근했다. 

◆얼떨결에 출근하게 된 첫 직장 고려화학

이야기는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졸업생 시절로 되돌아가 시작되었다. 쉰 살을 코앞에 둔 어느날 기억을 더듬어 지난 추억을 이야기 하기엔 깍듯한 존댓말보다 반말이 추억의 맛을 살려 주는 법.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15년은 족히 될 나이 차를 뛰어 넘어 ‘반 말’+ ‘온 말’이 뒤섞여 대화는 오가고 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 복학을 한 상태라 후배들과 함께 졸업하게 되었지. 어느 날 친한 후배가 광고대행사 ‘오리콤’과 ‘고려화학’에 입사원서를 냈는데 면접 날짜가 겹쳤다면서 자기는 ‘오리콤’을 가고 싶으니까 나를 고려화학 면접에 대신 좀 가달라는 거야. 별 생각 없이 경험 삼아 대리면접을 갔는데 덜컥 다음날부터 출근하게 된 거야. 좋다 나쁘다 생각할 틈도 없이 출근하게 된 거지. 허허.”
지금 생각해도 ‘허허’ 웃음이 나온다는 그의 첫 사회생활은 혼이 쏙 빠질 만큼 바빴다. 엉겁결에 입사한 경위는 그렇다 치고, 새파란 초년병시절부터 중역회의에 참석해 광고제작과 홍보물 기획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즐겁게 일했지만,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그래픽을 전공한 대다수의 미대생들이 동경하는 첫 번째 직업은 광고대행사와 공연기획사에서 일을 하는 것. 그에게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 꿈이 있었다. 
“생각하지도 않은 회사에 갑자기 출근하게 되어서 뭐가 뭔지도 모른 채 2년이 훌쩍 넘어갔지. 일을 좀 알고 막 진력이 날 즈음 중앙일보 본사에서 호암 아트 홀을 짓고 공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뒤도 보지 않고 뛰어갔지.”
얼떨결에 시작한 그의 고려화학 시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

◆ 중앙일보 문화사업부 디자이너로 입사

이씨가 중앙일보 문화사업부로 옮긴 때가 84년. ‘호암아트홀’은 이듬해 85년에 정식으로 개관을 했다. 중앙일보 본사 사옥과 함께 있는 ‘호암아트홀’이 개관되면서 디렉터를 맡아,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청춘’ 15년을 고스란히 바쳤다.
‘호암아트홀’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런던의 ‘위그모어 홀’처럼 크지 않지만 전통과 품위를 지닌 정통 공연장을 지향하며, 지금이나 그때나 100% 기획공연으로 대관공연장에서 보기 힘든 공연기획으로 명성을 얻어 강북의 대표적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그는 ‘호암아트홀’에서 발행되는 모든 자료와 홍보물 디자인 제작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가 소속되어 있던 부서에는 당시 중앙일보 계열사였던 TBC 동양방송국이 국가에 의해 강제로 폐쇄되면서, 이곳에서 일하던 무대감독과 촬영, 영상, 프로듀서 등 50여 명의 직원이 합류해 있었다. 모두 공연기획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의 집합체로 개성이 뚜렷하고 재미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탤런트 이찬 씨의 아버지로 현재 SBS드라마제작 국장인 곽영범 PD가 부장으로 함께 일했고, KBS와 MBC로 옮겨 가지 않은 사람들이 근무를 하고 있었죠. 모두가 유능하고 신선한 기획과 마케팅을 하던 사람들이라 일에 대한 즐거움과 보람이 굉장히 컸던 시기였어요.”
호암아트홀이 개관한 85년도에는 우리나라가 소련과 국교를 맺기 전. 하지만 86년도에 소련의 ‘볼쇼이 발레단’을 초청해 공연을 할 만큼 마케팅과 다방면에서 걸출한 인재들이 많은 부서였다.
 ‘피카소 전’을 비롯해 세계 유명 화가들의 명작 전시회를 개최하고 연주가 무용가 초청공연으로 일반 대관공연장과 차별화에 성공했다.

◆ 99년 퇴사 후 개인사무실 오픈, 카툰에 관심

“공연이 비수기에 접어드는 한 여름과 한 겨울에는 영화를 상영했죠. 그때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재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주 난해한 내용의 영화였는데도, 매회 매진사례를 이룬 거야. 예술적 감각이나 지식이 어지간히 해박한 사람이 아니면 무척 지루해서 ‘돈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한 영화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영화가 호암아트홀에서 상영된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던 거지.”
이씨는 15년만이던 99년 3월31일까지 근무하고 퇴사했다. 정확히 만 7년 전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가 일에 쏟은 열정이 그만큼 컸던 이유와 IMF로 인해 타의로 그만두었던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몹시 억울했기 때문이다. ‘도태되는 모습이 싫어서’라고 했지만 퇴사한 다음날 충무로에 디자인 사무실을 열었을 만큼 억울함이 컸다. 그가 얼마나 그 일에 열정을 쏟았던가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호암아트홀 디렉터로 일할 당시 직접 진행한 갤러리 ‘도록’ 가운데 특별한 몇 권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카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

◆ 세계 역사 속 사건 ‘카툰 단행본’ 출간 계획

현재 노스 밴쿠버 월마트 입구에 있는 캐필라노 몰에서 슈즈 리페어 숍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일주일에 3일 캐네디언 전문가를 고용해 일을 맡기고 그 시간을 이용해 특별한 일을 준비하고 있다. 이민 직후부터 틈틈이 그리고 있는 ‘카툰’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판할 계획. 카툰은 대상의 성격을 과장하거나 생략하여 풍자 혹은 비판하는 줄거리가 있는 그림이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내용은 날짜에 따라 그날 일어난 세계 역사 속에 기록된 사건을 카툰으로 그린 책. 외국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나라 경인철도 개통과 김구선생 암살 사건 등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발간되면 그는 한국 최초의 ‘역사 카툰 단행본’ 작가가 된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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