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경제학 게임이론’으로 본 탈레반과의 협상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9-13 00:00

철군계획 등 먼저 발표 서둘러 직접 협상 추진 “한국, 테러집단에 약해 나쁜 선례로 남을 수도”

경제적 득실을 따지는 경제학자의 눈에 아프가니스탄 인질사건은 어떻게 평가될까. 사건이 막을 내려 21명의 귀중한 인명이 구출됐지만, 한국 정부는 사태 해결 뒤 오히려 국내외의 비판을 받고 있다.

협상 타결의 득실을 검증하기란 매우 어렵다. 다만 경제학의 전략 이론인 게임이론〈키워드〉을 통해 들여다보면 한국 정부가 무얼 얻었고 잃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치킨게임에서 미리 겁먹은 격”

탈레반과 한국 정부가 대치하는 상황은 게임이론에서 나오는 ‘치킨게임’〈키워드〉과 비슷하다. 이 게임은 마주 달려오는 자동차 두 대 중 먼저 겁을 먹고 핸들을 꺾거나 속도를 줄여 멈추는(회피) 쪽이 지는 게임을 말한다.
게임 참여자는 당연히 자신은 ‘돌진’하고, 상대방이 ‘회피’해 이기는 경우를 선호한다. 거꾸로 최악의 경우는 자신과 상대방이 함께 돌진해 정면 충돌하는 경우이다.
이번 인질 사태에서 한국 정부로선, 탈레반의 요구 조건을 무시하는 것을 ‘돌진’, 인질 맞교환 혹은 몸값 지불처럼 대가를 지불하고 인질을 구하려는 것을 ‘회피’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탈레반의 입장에선 인질 살해가 ‘돌진’, 무조건적 인질 석방은 ‘회피’ 전략에 해당된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애초 아프간 인질사태의 경우 세 가지의 결과가 가능했다.
①한국 정부가 돌진, 탈레반은 회피 전략을 택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한국 정부는 큰 대가 지불 없이 인질을 구할 수 있다.
②탈레반이 돌진, 한국 정부가 회피 전략을 택하는 경우이다.
③양쪽 모두 돌진해 인질도 살해되고 탈레반도 섬멸되는 경우이다.
이 중 한국이 취한 선택은 ②였다. 즉 탈레반은 모든 것을 얻은 반면, 한국 정부는 탈레반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는 대신 인질을 구했다. 최악의 상황인 ③은 피했지만, 최선의 결과인 ①은 아니다.
치킨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최선의 전략은 게임 전에 자신은 절대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돌진한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믿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핸들이나 가속페달을 고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를 게임이론에선 ‘신빙성 있는 위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인질 사태 초기에 한국 정부는 서둘러 철군 계획을 발표하고, 직접 협상을 추진했다. 다시 말해서 ‘회피’ 전략을 쓸 것임을 너무 빨리 드러냈다. 반면 탈레반측의 ‘신빙성 있는 위협’ 전략은 한국에게 먹혀들었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결과는 피랍 초기부터 어느 정도 예정됐다고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는 독일 정부가 자국 인질 살해 위협에 대해 계속적인 무시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박찬희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정부로서는 더 많은 협상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제한된 선택을 해 버렸다”며 “인질 문제를 한 번도 다뤄 보지 못한 우리 사회의 수준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jhl@chosun.com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게임이론=소수의 사람이 서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을 검토하는 경제학 이론을 말한다. 포커나 바둑 등 게임을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하여 게임이론이라고 부른다.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일컫는다. 영화 웨스트사이드스토리(1961)의 한 장면처럼, 마주 보고 달리는 자동차 중 겁을 먹어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 대표적이다. 영어로 치킨(chicken)에 겁쟁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치킨게임이라 불리게 됐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