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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탈레반의 실체는?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8-10 00:00

탈레반의 궁극적 목표는 ‘이슬람 聖戰’ 기지 건설 아프간에 들어오는 외국인은 신성한 땅을 더럽히는 이교도로 간주

탈레반 전사들이 칸다하르 인근에서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있다. 로이터

한국인 의료·봉사단원 23명을 납치한 무장단체 탈레반(Taleban). 과거와 다른 행태 때문에 네오 탈레반으로 불리는 이들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위클리 조선 기사일부를 발췌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은 다섯 가지 의무가 있다. 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하마드(영어로는 마호메트)는 알라의 예언자라는 고백(샤하다·shahaadah), 일정한 시간에 다섯 번씩 기도하는 예배(살라트·salaat), 일정량 이상의 재산을 내는 기부(자카트·zakaat), 일정 기간 식사를 하지 않는 단식(사움·sawm), 일생에 반드시 성지인 메카를 한 번 방문하는 순례(하지·hajj)를 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을 통치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탈레반에겐 또 다른 의무가 있다. 바로 성전(聖戰) 지하드 (jihad)이다. 탈레반이 지난 6년간 미군과 나토군을 비롯한 국제안보지원군(ISAF)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벌여온 것도 여섯 번째 의무인 지하드를 수행하는 것이다.

탈레반에겐 아프간이 이슬람의 가장 신성한 땅이다. 때문에 탈레반은 아프간에 들어와 재건 사업을 돕거나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외국 민간인을 납치해 인질로 삼거나 살해하는 것을 지하드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엔 이들이 신성한 땅을 더럽히는 이교도일 뿐이다.

탈레반의 이런 사고방식은 최고지도자인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로부터 비롯됐다. 오마르는 스스로를 ‘구도자’라는 뜻의 탈리브(talib)로 부르면서 추종자를 모아 탈레반을 만든 인물이다. 탈레반 전사들은 1996년 4월 그를 아미르 알-무미닌(충실한 신자의 사령관)이라는 칭호를 붙여 아프간의 최고통치자로 옹립했다.

오마르는 1959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인근 시골마을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이슬람학교를 다니면서 신앙에 심취해오다 1980년 옛 소련이 아프간을 점령하자 펜 대신 총을 잡았다. 반(反)소련 무자헤딘 부대에서 전사로 활동하다 포탄 파편을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그는 파키스탄 퀘타의 마드라사(이슬람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고,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아프간은 1992년 친소 정권이 붕괴된 후 권력을 차지하려는 군벌 간 무장투쟁이 벌어져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오마르는 1994년 지역 군벌이 소녀 두 명을 납치해 강간한 사건이 발생하자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는 총을 들고 자신을 따르던 학생과 청년 30명과 함께 소녀들을 구출했다. 그의 이름은 사방에 알려졌고, 많은 학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들을 규합해 탈레반을 조직했다.

탈레반은 결성 2년 만인 1996년 수도 카불에 입성했고, 마침내 아프간을 통치하게 됐다. 게릴라 수준인 탈레반이 지역 군벌을 패배시키고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게 된 것은 국민의 지지 때문이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다수 종족인 파슈툰의 정통성을 계승한 데다 코란에 근거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오마르는 자신의 욕심만 챙기던 지역 군벌과는 달리 깨끗한 지도자로 인식됐다. 실제로 그는 심지어 자신의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등 철저하게 이슬람의 가르침을 앞세웠다.

그는 코란을 자구대로 해석, 별도의 정부기구를 만들지 않고, 대신 지역을 부족들의 통치에 맡겼다. 수도 카불 대신 칸다하르에 칩거한 채 예언자 무하마드가 이룬 신정(神政)일치의 초기 이슬람 공동체 복원을 꿈꿨다. 때문에 국가 이름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연방(Islamic Emirates of Afghanistan)’으로 바꾸었다. 그의 비호를 받던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도 “칼리프(무하마드의 후계자)의 시대가 아프간부터 시작됐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영국의 공격으로 두 달 만에 정권이 붕괴되자 오마르와 탈레반의 핵심 조직원은 아프간 접경의 산악지대에 은신한 채 힘을 비축했다. 오마르는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주년을 맞아 탈레반의 재기를 선언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이 해방되고 이슬람의 가르침이 재수립될 때까지 미국에 대한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는 이때부터 서한과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를 탈레반 지역 책임자에게 비밀리에 전달했다. 2003년 8월 보낸 한 서한에서는 “무슬림의 적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이다. 미국·영국·UN과 모든 서방 원조단체도 이슬람과 인류의 최대의 적”이라면서 지하드를 촉구했다. 이후 탈레반 전사들은 외국 민간인을 납치, 인질로 삼고 외국 군대의 철수 등을 요구하는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1000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지만 오마르가 숨어 있는 곳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탈레반의 각 캠프를 찾아다니면서 전사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전사들을 모집했다. 오마르는 최고 의결기구인 ‘지도자 위원회’를 구성, 탈레반 전사를 지휘하고 있다.

2003년 6월 처음 조직할 때 10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현재 18명으로 확대됐으며, 아프간 남부와 동부에 14명의 현장 지휘관을 임명해 테러 및 저항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 위원회가 주요 현안을 보고하면 오마르가 최종 결정해 통보한다. 이런 명령 계통이 과거에는 6주나 걸렸으나 지금은 24시간이면 가능하다. 오마르는 자신의 행적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물라 모바이둘라 전 국방장관과 물라 바라데르 등 측근 2명에게만 연락하고 있다. 그의 명령은 각 주의 현장 전투지휘관에게 전달된다.

탈레반은 지난해 미군과 나토군 등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가했다. 그 결과 전사 3000여명이 숨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해 연말 “모든 아프간인은 외국의 침략자들과 카불의 꼭두각시를 상대로 싸움을 할 의무가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 4월 자살폭탄 공격을 지시하기도 했다.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아프간 쪽으로는 남동부의 님로즈·헬만드·파라주가 있으며, 중앙부로 가즈니·우르즈간·자불주까지 확대되고 있다. 파키스탄 쪽으로는 남북 와지리스탄, 북서 변경주 등이 탈레반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 지역이다. 탈레반은 최근 들어 수도 카불을 향해 점점 세를 확장하고 있다.

탈레반의 목표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현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일 뿐 아니라 미군과 나토군을 비롯한 외국군을 모두 내쫓는 것이다. 오마르와 탈레반의 궁극적 목적은 아프간을 다시 ‘지하디스탄’으로 만드는 것. 지하디스탄은 ‘지하드’와 산스크리트어로 ‘땅’을 뜻하는 ‘스탄’을 합성한 단어이다. 말 그대로 아프간을 ‘이슬람 성전’을 위한 기지로 삼자는 얘기다. 그의 지하드가 탈레반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지는 모르지만 희생양은 아프간 사람들이 되고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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