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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삶도 결국엔... 낯선 이야기"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3-12 00:00

인터뷰 /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

영연방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부커상(Booker Prize) 시상식이 열리는 10월이 되면, 영국 출판계에서는 수상자를 맞히기 위한 도박이 벌어진다. 그러나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Yann Martel·44)이 상을 받은 2002년은 그 익숙한 풍경이 재연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출판인들이 “예측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마텔의 수상을 점쳤기 때문. 부커상 도박을 잠재운 이 소설은 그 후 부커상 최고의 판매 기록(누적 집계 500만부)을 세운 장편 ‘파이 이야기(Life of Pi)’이다.
 
 ‘파이 이야기’의 성공은 종교·신념·인생관이라는 삶의 본질적 화두들을 문학 밖으로 퇴출시킨 현대 소설을 향해 날린 마텔의 카운터 펀치이다. 그는 기독교·이슬람교·힌두교를 동시에 믿는 인도 소년 파이(Pi)의 사유와 모험을 통해 ‘삶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21세기 문학 독자들의 여전한 관심사임을 입증했다. 태평양을 표류하는 배 위에서 죽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마다 모든 신을 동원해 구조의 믿음을 되살리는 소년의 이야기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정신적으로는 공허함에 빠져 있는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꽃샘추위로 수은주가 곤두박질한 뉴욕 맨해튼 거리를 그와 함께 걸었다.

―주제의 묵직함과는 달리 소설은 흥미로운 사건들의 연속이다. 조난에서 살아남는 법, 서커스 조련사들의 호랑이 훈련법, 배 위로 날아드는 날치들의 습격, 바다거북 사냥 등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담이 펼쳐진다. 당신은 소설의 주제보다 이야기의 방식에 주목하는 것 같다.

“어떤 소설가들은 일상에서 평범하게 일어나는 사건을 쓰면서, 서술하는 방식만 낯설게 하려 애쓴다. 그러나 나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골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것은 소설 쓰는 기교가 아니라 스토리가 가진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좋은 스토리를 만나기 위해 나는 많이 읽고 취재한다.”

―귄터 그라스와 살만 루시디의 소설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도 그 때문인가.

“소설은 먼저 독자를 즐겁게 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설을 읽고 난 뒤 독자들이 정신적으로 고양된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재미와 의미, 소설은 이 둘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파이는 호랑이 밥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낚시를 해서 호랑이 배를 채워준다. 훗날 구조된 뒤 그는 “호랑이가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당신에게도 그런 (상징적 의미의) ‘호랑이’가 있는가.

“내게 호랑이는 내 소설 작품일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소설 속 호랑이처럼 삶을 힘들게 하는 저주인 동시에 나를 구원해 주는 축복이다. 소설 속 호랑이는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파이의 분신이고, 파이의 유일한 친구라는 점에서 인간관계일 수도 있으며, 두려움을 주면서 삶을 이어가게 하는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신이기도 하다.”

―당신은 이 소설에서 파이가 호랑이와 함께 구조된 이야기를 한 뒤에, 파이가 인육을 먹고 생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왜 같은 결론의 이야기를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전개했는가.

“나는 우리의 삶도 결국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믿는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좋아한 것도 이성으로 내 소설을 읽지 않고, 행복한 이야기로 내 소설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소설의 소재를 얻은 인도여행 경비를 캐나다 문화원에서 받았다고 했는데.

“예술은 늘 후원자를 필요로 했다. 사회가 예술가에게 지원하는 돈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꿈과 가능성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다. 내가 캐나다 사스카툰에 사는 것도 그곳 공공도서관의 문인 지원프로그램에 선발됐기 때문이다. 주 2회만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집과 생활비를 지원 받고 있다.”
 

■‘파이 이야기’는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민 가는 소년 파이의 가족을 태운 화물선이 태평양에서 침몰한다. 유일한 생존자 파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배 위에는 세 살짜리 인도 호랑이가 타고 있다. 배고픈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파이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시작한다. 227일 만에 구조된 파이의 입에서 다시 한 번 놀라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뉴욕=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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