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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로 보는 세상] 국장(國葬)을 준비하자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11-06 00:00

1차 세계대전이후 캐나다는 결코 옛날의 캐나다가 아니었다. 당시 전체인구 800만명 가운데 60만명 이상이 전쟁에 참전했다. 이들 중 6만명은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도 15만4000명에 달했다. 이러한 막대한 인명피해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쉽게 헤아리기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 1차 세계대전기간(1914~1918)동안 캐나다 군인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비미 리지(Vimy Ridge)나 파스샹달(Passchendaele) 전투에서는 무시무시한 명성도 얻었다. 이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캐나다가 존재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1차 세계대전과 우리의 끊을 수 없는 관계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참전용사 3명이 역사의 산 증인으로 남아있다. 로이드 클레멧(Lloyd Clemett, 106세), 존 뱁콕(John Babcock, 106세), 드윗 윌슨(Dwight Wilson, 105세)이 그들이다. 캐나다 정부는 마지막 생존자 3명의 용사를 위해 국장(國葬)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11일 현충일을 앞두고 캐나다 정부는 '역사 함께 나누기(Share the Story)'를 주제로 2세들을 위한 산교육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국장(State funeral)은 정부가 특정 개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행사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특정인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룸으로써 전장에서 산화해간 모든 전몰용사를 추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전용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위해 몸바쳤던 수많은 참전 용사들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캐나다의 온 국민들이 위대한 용사들에게 지고 있는 빚을 갚아야 할 때다. 그 방안은 형식적인 국가 공휴일로 지키는 겉치레가 아니라 국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국장은 전현직 총독이나 총리, 또는 정부 고위직 인사에 국한되는 사항이므로 참전용사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호주는 갈리포리 작전((Gallipoli campaign) 최후 생존자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렀던 선례도 있다. 영국의 경우는 국장까지는 아니지만 국민추도식(National memorial service)을 거행할 예정이다. 추도식은 웨스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며 추모행렬을 앞세우게 된다. 추도식을 국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상당한 예우를 갖춘 것이다.
 
남녀노소 모든 캐나다 국민들은 국장을 통해 1차 대전 당시의 숭고한 희생을 마음속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또, 자랑스런 유산으로 무엇을 기억하고 기려야 할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독립국 국민으로서의 성취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의 우리도 없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글로브 앤 메일 사설 'Hold a state funeral for the last WWI veteran'
이용욱 기자 블로그(http://blog.vanchosun.com/sennim)
 
[키워드] 캐나다 현충일
 
11월 11일은 캐나다의 현충일(顯忠日)이다. 이날 오전 11시, 캐나다의 전국민들은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들의 넋을 기린다. 1차대전이 종전되던 1918년 11월 11일 11시를 기념해 'Armistice Day'로 부르던 이날은 1919년부터 'Remembrance Day'로 이름을 바꾸고 국가 기념일의 하나로 지정됐다. 또, 매년 11월 5일부터 11일은 보훈주간(Veterans Week)으로 정해 각종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특히, UN군 창설 50주년을 맞는 올해는 '역사 함께 나누기(Share the Story)'를 주제로 2세들을 위한 산교육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
 
'잊지 말자(Lest We Forget)'는 파피(Poppy) 달기 행사와 함께 대표적인 보훈주간 표어다. 붉은 양귀비 꽃이 현충일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연유는 이렇다. 1차대전 당시 최대 격전지의 하나였던 이프르(Ypres) 전쟁터를 찾은 존 맥크래(John McCrae) 중령은 젊은 넋이 산화해간 그곳에 피어난 양귀비 꽃을 보고 ‘플랜더 전장에서(In Flanders Fields)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에 감화한 캐나다, 프랑스, 미국, 영국 등은 양귀비를 상징물로 삼기로 했으며 이후 전몰용사 추모사업기금 모금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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