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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씨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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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7-24 10:17

예함 줄리아 헤븐 김 /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내게는 석 달여 남은 올해가 가고 새해가 되어 연초록빛의 귀여운 새싹이 움틀 무렵이면 아흔 살이 되는 친구가 있다. 내가 1960년생이니 33년생 내 친구와는 무려 스물일곱 살 차이가 난다. 스물여섯 나이 차의 큰아들이 있으니 그 친구는 내게 엄마뻘인 셈이다. 그래도 우린 친구고 자매라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한다.
 우리의 만남을 주선한 이는 예수님이다. 나는 교회에서 ‘Usher’로 봉사하고 있는데, 예배 본당 입구에서 주보를 나눠주며 자석 안내를 돕는 일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부산 토박이 내 친구는 나를 외국인이라고 찰떡같이 믿고 계시던 분이다. 그런데 밴쿠버 아일랜드의 제법 큰 캐네디언 교회에서 한국어를 잘하는 안내자를 만나니 신기하고 무척 반가웠다고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 어릴 때 “네 엄마가 미국 사람이니? 아빠가 미국 사람이니?”라는 질문을 곧잘 받았다. 리어카의 사과 장수 아저씨조차 잘 익은 사과 하나를 쥐여 주시며 묻기도 해서 가끔 내 손엔 모르는 어른들로부터 받은 과일이며 떡 때문에 부모님께 야단을 맞았다. 심지어 청소년기에 유행하던 외국 친구와 펜팔 한다며 사복 입은 내 사진을 부모님께 보여 주고 용돈을 받아내던 친구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친구의 도발적인 감행에 동참한 꼴이 되었지만, 머리색이 한국인으로선 유난히 밝은 갈색에 그 당시 흰 피부와 오뚝한 코를 지녀서 종종 오해를 많이 받았다.
 ‘너의 엄마나 할머니 그 위에 분명 어느 나라인가 섞여 있을 거다.”라고 우리 집 족보(族譜)까지 바꿔가며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파란 눈의 동료들이 지금도 내게 말한다. 어찌 되었든 외국인으로 착각하며 몇 해가 지나가던 어느 날 “안녕하세요?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시지요?” 건네는 말에 “옴 마야~ 한국말도 잘하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기해하던 어르신. 나를 인식하기까지 몇 차례 같은 해프닝을 반복하고서야 비로소 내 이름을 불러 주셨다. 나도 그렇지만 한 번 머릿속에 각인된 것을 지우고 바꾸는 것이 옛 어른들은 어려운 것 같다.
 성경 잠언 3장 5절과 7절에도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의 편견이나 판단의 잘못됨을 주의할 것을 일깨워 준다.  
 내 이름이 어르신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 귀에 들려 오자, 함께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귀한 시간 속에 친구와 난 예수님 안에서 자매로 연을 맺어 갔다.
 
 내 친구 이름은 김옥녀이다.
 “촌스럽재?” 이름을 알려주며 멋쩍어하던 얼굴이 새악시의 볼처럼 내 눈엔 너무나 귀여웠다. 들어 본 듯한 이름인데… 그 순간 한계령을 떠올리며  “아, 설악산에 옥녀탕인지 선녀탕인지 있는 것 같아요.” 하니 “맞따! 맞어! 내 이름이 그리 촌스럽 따!” 뒤 음에 된 소리를 섞어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강조하시던 어르신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차로 삼분 여 우리 집에서 걸어가도 되는 이웃사촌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울창한 나무 사이를 비집고 화단을 가로질러 창문을 두드리면 커튼이 열린다. 환한 미소로 반기는 유리창 너머의 내 친구 모습이 참 좋다. 가끔 강아지 캔디와 산책길을 친구 집 방향으로 돌려 아무 때고 두드려도 뜻밖의 방문을 반가워하고 고마워한다. 그저 유리 벽 하나에 미소만 서로 나누고 있을 뿐인데도 그 시간이 감사하다. 혼자 사니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외로움을 고독한 소녀의 감성으로 즐기는 멋진 친구다. 대학에 다니는 손녀와 손자가 있고, 아들과 며느리가 있으며 한국에는 딸들도 있다. 단지 혼자 살 뿐이다. 코로나19가 평범했던 일상을 바꿔 놓고 새로운 일상을 들여놓기 전까지 또래의 지인들이 진을 치듯 늘 북적이고 상주했던 곳이 친구 집이다. 마치 그들만의 아지트처럼.
 어찌 되었든 처음엔 연세 지긋하신 분을 지칭하던 “어르신”을 예수님으로부터 소개받고 “자매님”이라 바꿔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이모님”이라 부르고, “우리 교회 자매님이세요.”라고 소개한다. 친정어머님이 나처럼 삼남일녀 막내딸이셨기에 ‘이모님’이란 호칭은 사실 어색하고 무척 낯선 단어이다. 그런데도 이모님이란 단어를 떠올렸던 건 어쩌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담아진 것 아닌지 새삼 이 글을 쓰며 잠시 생각해 본다. 내 친구는 이모님이라 불러도 좋아하고, 교회 자매님이라 남들에게 소개하면 뭔지 뭉클하고 또 다른 기분으로 좋다고 한다. 게다가 친구라고 하면 반색하며 최고다! 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멋쟁이 친구다.
 
 내년이면 구십 세가 되는 나하고 스물일곱 살 차이 나는 내 친구는 고집이 세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 고집을 부려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귀가 열렸고 마음의 문 또한 활짝 열어젖히고 이야기를 귀 기울이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라 해도 될 만큼 친구는 정말 훌륭한 노인이다. 그렇다고 자기 주관이나 주장, 뜻이 없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자존심도 어찌나 센지… 그런데도 “아, 그렇구나! 내, 오늘 새로운 거 배웠다 아이가. 고맙따!” 나이 어린 사람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진심을 볼 줄 아는 밝은 눈을 지녔다. 오랜 시간 본인이 갖고 있던 생각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도 아는데, 내 친구는 이해가 되면 바로 수긍하고 하나님께 감사로 이어진다.
“내가 뒤늦게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이 나이에 또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고맙습니다.” 내 친구의 진심 어린 고백을 통해 나 역시 기쁨의 감사 기도로 화답한다.
 
난 친구는 많지만 ‘내 친구’라고 말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그걸 아흔 살이 되는 내 친구는 안다. “영광이재, 나 같은 늙은이하고 친구도 먹어 주고, 놀아주니 내 울매나 복이 많노. 서울깍쟁이가 부산 촌닭하고 친구 하니 내 출세했다.”라고 즐거움으로 빠져드는 농담도 잘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 안에 쌓여가는 우정은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을 알기에 더욱더 서로 존중한다.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회개하며 감사로 사랑을 전할 줄 아는 마음은 나이와는 상관없다. 친구로 인정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겸손함으로 열린 귀와 겸허한 자세로 열린 마음을 서로 지니고 마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는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이 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하고 함께하는 비유에 내 친구와 나를 연관 지어 보기도 한다. 나이 차를 떠나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반박하기보다는 이해하려 하고, 공감하며 받아 주려는 마음. 그 마음으로 인하여 한 발 한 발 예수님을 향한 공통점을 찾아가며 사랑으로 부족함을 감싸 안는 우리의 모습. 어른을 향한 공경심과 나이 어린 사람을 향한 겸손함이 우리로 하여금 친구로 자매로 이어가는 것 같다.
 내가 친구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다.
투박하고 딱딱한 말투로 “고맙다 고마워. 이래서 내가 잘한 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아이가!” 지금처럼 모든 것에 감동의 감사로 즐거워하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감사로 우리의 시간이 이어 갈 수 있도록 나 또한 나의 씨밀레를 위해 기도하는 친구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친구의 사투리를 계속해서 들으며 살 수 있길 소망을 품어본다.
 
-2021. 시월이 시작하는 첫날에 불현듯 떠오른 나의 씨밀레를 생각하며…
*씨밀레 : 영원히 함께 할 친구를 뜻하는 순우리말
 
 
(-이 글은 2021년 시월이 시작하는 첫날에 불현듯 떠오른 나의 씨밀레를 생각하며 적은 글이다. 나의 씨밀레 김옥녀 자매님은 2023년 유월이 시작하는 첫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누구보다 나의 수필집을 기다리셨던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셨고 아흔한 번째의 생일 선물을 기뻐하시며 그로부터 불과 두 달여 만에 소천하셨다. 마치 내 수필집을 기다려 주신 것처럼…. 이 글이 신문에 게재되면 저 하늘에서도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계실 것 같아서 이 글을 그녀를 기억하는 지인들과 김옥녀 님의 영전에 받친다. 투박한 그녀의 경상도 사투리가 푸른 하늘에 퍼져나가는 듯한 오늘에 감사하며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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