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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코끼리와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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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7-17 13:22

예종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진리는 무엇일까? 있기나 한 걸까?
흔히 진리를 말하는 비유로 장님 코끼리 더듬기 비유를 든다. 모든 인간은 상황 안에서만 존재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의 한계가 그 사람의 진리로 여겨진다는 논리다.

코끼리의 다리 근처에 잇는 장님은 코끼리는 원통과 같이 둥글고 단단하며 중간 부분이 유연하게 굴절되는 동물이다 라고 할 것이다. 코끼리 배 근처에 위치한 장님은 코끼리는 벽과 같이 편편하게 엄청나게 큰 동물이라 할 것이고 머리 부근에 잇는 장님은 코끼리는 뱀처럼 길고 유연하지만 뱀처럼 힘 있게 감을 수 있고 또한 몸 양쪽에 둥글게 휘었지만 끝이 뾰족한 창을 양쪽에 지닌 동물이라 할 것이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다 맞지만 동시에 다 틀리기도 한 것을 우리는 안다.

이런 거대한 야생의 코끼리를 인류는 통째로 길들여 쓰기 시작했다. 지구 온도 변화와 화석의 발견을 토대로 대충 12,000년 전부터 인류는 농업을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인류의 농업화 과정에서 야생 동물의 가축화의 과정은 생산력과 효율은 올렸을 지 모르지만 선택된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재앙의 시작이었다.

코끼리라는 거대한 동물을 작은 인간이 잘 부리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야생의 본능을 거세하여 얌전한 코끼리로 만드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 의식을 파잔이라 한다.
파잔은 건강하고 역동적인 코끼리를 얌점하고 힘이 센 좀비 코끼리로 만드는 과정이다. 도저히 자신이 어떠한 노력을 해도 현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체험.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고 잘 이해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코끼리의 무의식에 깊게 아로 새기는 의식이다. 떨어지는 신호와 사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몰 이해가 바로 고통으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현실을 선명히 각인 시켜야 한다. 노예는 저항하겠지만 가축은 저항하지 못한다. 저항하지 못하는 노예. 영혼이 굳어버린 노예가 필요하다. 노예가 가축이 되면 이제 울타리 안에서 안전함을 느낄 것이다. 울타리를 벗어나기 두려워할 것이다. 그런 두려움으로 야생성을 포기하도록 파잔 의식을 잘 진행해야 한다.

뉴스에 의하면 대충 절반의 아기 코끼리가 그 험한 의식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서 죽게 된다고 한다. 먼저 아기 코끼리를 어미에게서 떼어오고 그 아기 코끼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작은 우리에 가둔다. 코끼리의 저항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굶기고 주기적으로 괴롭히고 규칙적으로 구타한다. 그 고통을 견디고 살아남은 강인한 코끼리는 관광객을 안전하게 태우고 때론 서커스에서 신기한 묘기를 보이며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돈을 벌어줄 것이다.

파잔 의식을 치르면서 아기 코끼리의 영혼은 이제 산산이 부서진다. 영혼이 부서지면서 아기 코끼리는 어렴풋이 깨달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것. 더 이상 엄마를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과 다시는 친구들과 뛰어놀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의식을 보면서 인간의 잔혹함에 새삼 치가 떨린다. 그 농민들의 잔인함에 분노한다. 하지만 힘겹게 그 분노의 등성이를 넘어 뿌연 시야가 걷혀지면 그 훈련사들과 그들의 강팍한 삶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도 희생자인지 모른다. 그들도 한때는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날카로운 쇠 꼬챙이가 아이의 손에 쥐어지고 눈앞의 아기 코끼리를 수시로 찌르도록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망설임과 혼란으로 아이는 거부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그 때 돌아온 대답은

"질문을 멈추어라 ““너는 아직 인생을 모른다.” 라는 준비된 답이었을 것이다.
질문을 하지 마라. 너는 현실을 모른다.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은 호기심이 아니다. 눈앞의 필요를 가져오는 힘이다. 힘을 키워야 한다. 당장의 필요와 가족의 생계가 작은 너의 손에 달려있다. 너의 헌신과 용기에 우리 가족의 숨이 달려있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삶이다. 약한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우리에게 사치이며 네 번민과 갈등은 비 효율의 연료이다. 너는 가난을 모른다. 그러니 굶주림의 파괴력도 모를 것이다. 네 가족을 먹이지 못해 서로 굶주릴 때 사랑하는 가족들이 서로 짐승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고통. 사랑하는 가족이 서로 증오의 대상으로 둔갑하는 그 어두운 늪의 깊이를 모른다.

그 어린 조련사는 호기심을 잘라내고 꿈을 거둬 들였을 것이다. 아니 자신도 모르는 미지의 시간으로 꿈을 출항 시켰을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더 어렵고 신기한 포즈를 코끼리에게 강요하며 주변의 찬사와 인정으로 평판을 쌓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좀비가 되어가며 소소한 행복과 가족들의 웃음 진 삶에 만족할 것이다.

삶은 여러가지 얼굴을 하고 있고 사는 방법에 한 가지 정답이 없다고 한다면 살아가는 데는 많은 여러가지 길이 있다. 위의 좀비의 삶은 그 중 한 가지 일 것이다. 코끼리 조련사의 삶은 건조하고 당당하지 못하다. 그 삶의 방식이 얄팍하고 건조한 이유는 관객들의 호기심 충족과 그 대가인 푼 돈에 의지하고 잇기 때문이다. 타인이 주는 인정과 그에 따른 인기. 평판에 나의 삶이 좌우된다면 이는 바람직한 삶이 아니다. 인기와 타인들의 평판에 디디고 있는 삶은 약하다. 아니 위태롭기까지 하다. 어떠한 삶이 힘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지속성으로 판단이 되는데 인기와 평판은 통제의 영역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통제되지 않으면 외부의 변동 사항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힘이 없는 삶. 통제되지 않는 삶은 작은 변동에도 그 운동을 멈추게 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코끼리와 조련사의 삶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그들과 우리의 삶이 구조적으로는 서로 닮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을 포기한 적이 있고 때로 주어진 책임에 반항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반항해도 조련사의 날카로운 쇠 꼬챙이는 결코 피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요구에 나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스스로 조련사가 되어 나보다 약한 아기 코끼리를 피가 나게 찔러 대고 괴롭혀서 주변의 부러운 시선에 자부심을 느끼고 뛰는 가슴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굴곡의 현대사를 돌아보면 많은 아기 코끼리와 좀비 코끼리. 용감한 조련사들을 본다.
그 과정에서 힘든 파잔 의식을 거부한 코끼리들. 그래서 죽음을 선택한 코끼리와 한때 훌륭한 조련사였으나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못하여 역사의 도덕적 평가에 극명하게 평판이 갈리는 과거의 조련사들도 본다.

한국은 지금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나라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가 ?
많은 조련사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흥행을 올리려 자신의 방식을 채택하려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옳은 조련 방식이 반드시 많은 흥행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관객의 취향과 동물에 대한 공감이 점점 중요해지는 현대에 위와 같은 파잔 의식은 동물 학대로 간주되어 점점 제한될 것이다. 관객은 서커스의 영리한 코끼리를 의심스런 시각으로 뜯어볼 것이다.

코끼리를 이용한 수익 구조는 코끼리에게 의존적이다. 조련사 스스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체 관광객의 호의와 쾌감에 의존할 수록 그 익숙함을 관성적으로 반복할수록 그 삶의 방식에서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제 마을 밖은 많은 변화와 포식자들의 욕망으로 가득하다. 명확하게 자신만의 진리를 외치는 장님들. 서로 자신의 진리가 맞다고 주장만 하지 말고 상대의 진리도 잘 들어보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의견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아오고 쌓아온 자신의 논리를 한순간에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상상만 해도 두려울 것이다.
이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듣지 않으면 된다. 또는 계속 말하는 상대방을 입 다물게 하면 된다. 메신저와 메시지를 구분하는 것은 평화로운 대화의 기반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 든 지 연결 시키면 된다. 답답해서 엉뚱한 소리를 하게 하거나 먼저 화를 내게 하면 된다. 대화가 왜 이리 거칠고 힘이 드는지는 우리는 대화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하여 이 시대에 기다리는 것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능력. 대화의 유연함. 상대를 먼저 듣는 마음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다른 의견. 다른 생각. 다른 이데올로기를 편안하게 주고받으며 더 나은 문제해결로 나아가는 삶의 생존 방식. 생명력 있는 오래가는 공동체와 단체들.
그러한 용기 있는 장님들이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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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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