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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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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7-05 08:48

김원식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사십여 년 전 내가 이곳 캐나다에 처음 정착 했을 때 주위 캐네디언들이 낯선 나에게 제일 먼저 묻는 말은 중국인이냐? 였습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러면 일본인이냐? 라고 묻고 또 아니라고 대답하면 필리핀, 혹은 태국사람이냐? 고 물어보는 사람마다 묻는 순서가 거의 비슷비슷했습니다. 나의 국적에 대하여 더 묻기를 포기한 그들에게, 한국에서 왔노라고 대답하면 한국은 어디에 있는 나라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대다수 캐네디언은 한국에 대하여 거의 몰랐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쟁으로 폐해가 많은 나라이고 외국의 원조를 받는 가난한 나라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그에 관련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 대형 마트였던 울코(WOOLCO)에 가보면 싸구려 한국산 장난감과 의류코너에 값싼 양말이나 티셔츠가 대만과 홍콩 제품에 밀려 한쪽 구석에 초라한 모습으로 진열되어있어 잘 살펴보아야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차종별로 수많은 한국산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고,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한국산 각종 전자 제품들이 위풍당당하게 진열 되어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IT 강국임은 물론, 일상생활의 필수품인 한국산 전자 제품에 대하여는 이곳 캐네디언들도 서슴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품질면에서도 우수하다고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BTS와 K팝은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우상의 아이콘으로 우뚝 서 있고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한식 등 한류가 세계인들의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고 얼마 후 국가 부도 사태(IMF)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사상 유례없는 최단기간에 이를 극복 하고 불과 반세기 여 만에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의 요인으로 높은 교육열에 의한 고급 인력의 확보와 실효성 있는 경제정책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깊은 내면에는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대명사 ‘빨리빨리’가 만들어낸 신화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한국 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 사용주들을 빗대거나 놀리는 말로 ‘빨리빨리’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빨리빨리’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부지런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인 사용주들은 어째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노동 현장에서 “빨리빨리”라는 그들에게 달갑지 않은 말을 입에 달고 살까? 나는 그 근원과 해답을 오천 년 동안 이어온 한반도의 뚜렷한 사계절이란 기후에서 찾고 싶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국적을 보면 대부분이 인도, 그리고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출신들입니다. 그곳은 기후가 항상 여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주식인 쌀과 농작물 생산에 일 년에 이모작 또는 삼모작을 그때그때 형편대로 지으면 됩니다. 또한 인체 생리학적으로 더운 기후에 장시간 빨리빨리 활동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서 그들에게 ‘빨리빨리’라는 말은 몹시 생소하고 부담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오천 년 동안 한국은 조상 대대로 인구의 9할이 농업에 의존하여 거기서 생산되는 쌀과 보리 등 농산물로 나라 전체 백성의 식생활을 책임져야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농자천하지대본’ 이라 하여 농업은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으로 알고 농업을 장려했던 것입니다. 좁은 국토에 7할은 산지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지는 불과 3할 정도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농지 또한 거대 지주가 아니면 양반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지주나 양반들로부터 논이나 밭 몇 두락을 얻어 거기서 생산되는 소출을 지주와 반타작하는 대략 그런 구조와 형태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반드시 모든 농작물은 일 년에 단 한 차례 수확을 할 수 있는 자연조건으로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의 경우, 농작물의 파종이나 모종의 시기를 놓치거나 여름 내내 힘들여 가꾼 농작물의 수확 시기를 놓친다면 그해 농사를 몽땅 그르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다 홍수나 가뭄 등의 자연재해까지 겹친다면 일 년 내내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지은 일 년 농사 전체를 망쳐 겨울 혹한과 그 힘들고 긴 보릿고개를 넘기고 다음 해 가을 수확할 때까지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가족 단위의 소농에다 지금에 비하면 거의 원시적인 농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또한 늘 부족한 일손의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철의 기후가 배려하는 만큼만 거둘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농민들은 언제나 제때 맞춰 심고 가꾸고 거두어들이자면 모든 농사일에 ‘빨리빨리’ 그리고 부지런하게 서두르지 않으면 한 가정 여러 식솔의 생사가 달린 한해 농사를 전부 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농자천하지대본’은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빨리빨리’ 신화의 유전자를 유산으로 대물림하여 이어져 왔고 지금의 산업 현장에 까지도 그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모든 국민이 새벽부터 늦은 밤중까지 숨돌릴 여유조차 없이 농업 현장에서 그리고 산업 현장에서 온갖 고난을 감내하면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빨리빨리’ 유전자의 신화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위업과 그리고 IT 강국을 이룰 수 있었던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한 박자 쉬어 숨을 고른 후 새로운 한국문화를 세계만방에 펼칠 수 있도록 국민 모두 심혈을 기울여 노력을 배가한다면, 요즘 요원의 불길처럼 세계로 번져나가는 BTS ARMY의 지축을 흔드는 떼창처럼, 새로운 한국문화의 강국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선 한류의 창달도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셨던 백범 김구 선생은 생전에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경제력은  생활을 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국방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고 새로운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소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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