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나는 금요일 밤을 좋아한다. 삶의 무게와 긴장의 끈을 풀고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금주의 음원차트를 확인하고 새로 나온 케이팝을 들으며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홀짝인다. 취기가 오르면 한 편의 시가 되어 흐르는 사랑 노래를 찾아 흥얼거린다. 오래도록 기억되고 불리는 노래들은 하나같이 사랑 이야기가 많다. 노래 속 연인들은 매 순간 숨 막히도록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가슴 저리는 이별을 반복한다. 누군가에게는 뻔하고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 향수의 노래는 잠들어 있던 생각과 감정을 깨우는 촉매제가 된다.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애절한 사랑을 꿈꾸던 젊은 날을 보내고 연인 관계를 관조할 수 있는 지금에도 나는 사랑 노래에 취해 금요일 밤을 불태우곤 한다. 그건 유한한 삶을 사는 불완전한 인간이 사랑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이상적인 사랑을 하지 못해 아프고 눈물겨운 날을 보내게 되면 좀 어떠랴. 사랑을 해 본 사람의 감수성은 봄여름가을겨울 삶의 모든 순간에 생기를 불어넣어 아름다운 꽃을 피울 테니 말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때는 언제일까? 지난날을 더듬어 본다. 사랑했던 날들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던 그 순간들이 다 아름다웠다. 특별히 어느 한순간을 꼭 집어낸다면 미래에 대한 핑크 빛 꿈을 키우며 연예를 시작했던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꿈을 키워가는 그 날들은 기적과도 같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는 것만으로도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 늘 오가던 익숙한 거리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영화 속 한 장면만큼이나 특별한 공간으로 바뀐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은 봄날 벚꽃만큼이나 화사하고 예쁘다. “후회없이 사랑하세요.” 이십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삶의 모든 순간이 생각만큼 녹녹치 않다는 것과 선글라스를 끼고 멋을 낼 수 있는 맑은 날보다 우산이 필요한 흐린 날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생각지 못한 불행이 도둑처럼 찾아와 일상의 평화를 빼앗아갈 때, 나의 계획과 노력만으로 평탄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알았다. 사랑이 답이라는 것을.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 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형제 간의 사랑, 친구나 이웃 간의 우정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무거운 삶의 무게를 기꺼이 지고 갈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사랑이 나를 지탱하게 하지 않았다면 날이 갈수록 커지는 인생의 허무 앞에 어떻게 하루를 견딜 수 있었을까? 그 사랑의 대상이 누가 되었든 간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동력이 된다.
사랑 노래를 들으며 지새우는 겨울 밤은 일주일간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세상사에 지쳐 잊어버리고 있던 사랑의 신비를 다시금 기억하게 하고, 눈을 돌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한다. 그로 인해 생활의 피로와 고생도 기쁘게 감내할 수 있음과 누구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게 된다. 사랑은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 모두를 치료한다는 칼 메닝거의 말처럼 나의 감미로운 일탈은 메말랐던 정서에 온기를 불어넣고, 지친 영혼을 회복시켜준다. 사랑이 흐르는 시간은 어둠이 짙어 질수록 더 아름답게 빛난다. 서정적인 멜로디에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노래 가사가 좋아서 잠들기 아쉬운 밤이다.
‘그림같은 집이 뭐 별거겠어요. 어느 곳이든 그대가 있다면 그게 그림이죠
빛나는 하루가 뭐 별거겠어요 어떤 하루 든 그대 함께라면 뭐가 필요하죠’ 한동근 <그대라는 사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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