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욱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린 시절 나에게 큰 교훈을 주신 할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너는 커서 이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들려주신 이야기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부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로 겉은 좀 남루하지만, 속이 부자인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자기의 귀중한 보물을 여러 겹으로 된 자루에 간직하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란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좀 두꺼운 옷을 여러 겹으로 껴입고 그 속에는 흰색 바탕의 섬유로 수를 놓아 어릴 때는 은전(銀錢)을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다가 청년기가 되어 수염이 자라게 되면 그때까지 지니고 있던 은전을 금전(金錢)과 바꾸기 시작해서 장성한 중년기가 지나서성숙기가 되면 그가 지닌 모든 것이 금전으로 바꾸어 부유함을 누리게 된단다.
너는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알아맞힐 수 있겠느냐?]
그 당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수수 깨기의 답을 할머니께 독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해답은 옥수수였다.
그때 마침 할머니와 나는 우리 집 뒤뜰에 있는 옥수수밭을 거닐고 있었다.
그렇다. 옥수수와 같은 사람은 겉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것 같으나 실속을 채울 줄 아는 사람으로 비유하신 말씀이셨다.
얼마 전 터득한 사실이지만 옥수수는 피부 건조와 노화 예방, 습진 등에 좋다고 하며, 충치 개선 작용도 한다고 한다.
또한 옥수수의 섬유질은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배변, 소화불량, 동맥경화, 이뇨와 지혈작용, 혈당 강하와 항암 작용까지 ….
옥수수가 이처럼 몸에 무척이나 이로운 음식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사실을 영양학 교수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부부간에도 식성이 각각 다르다.
나는 과일을 좋아하고 아내는 견과류를 좋아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꼭 같이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옥수수 이다.
옥수수 계절이 되면 이곳에서는 제일 먼저 베이비콘이라고해서 어린 옥수수를 요리용으로 사용하게 되고, 좀 지나면 주니어 콘이라고 해서 삶아서 먹게 된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것은 잘 익어서 알맹이가 좀 단단한 옥수수이다.
제철이 아닌 요즘도 가끔 식품점에서 옥수수를 구하여 먹곤 한다.
그럴 때면 더욱 할머니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살이의 외적 조건에 바쁜 세월 속을 살다가 보니 옥수수처럼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는 너무나 소홀해 왔음을 돌아보게된다.
할머니께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는 체험을 통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득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교훈을 나에게 보여주셨던 것이다.
할머니의 기일인 오늘, 인자하셨던 그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너는 센 머리(백발)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위기 19장 32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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