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꽃다발

김선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3-18 10:59

김선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꽃다발을 받아 든 사람의 얼굴이 화안 하게 빛난다. 꽃 하나하나가 촛불인 듯 한아름 안아 든 얼굴을 밝혀준다. 꽃다발은 사람의 밝은 마음과 가장 닮은 유형의 물건인 것 같다. 부드러운 꽃잎을 만지며 배려의 마음을 느끼고, 화려하고 다양한 색들을 보며 행복의 기운을 느낀다. 

축하하는 마음과 응원의 메시지를 이보다 사랑스럽게 전할 수 있을까. 꽃의 종류나 묶어내는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꽃다발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다. 꽃다발은 한 사람의 인생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으며 그의 시간이 다른 사람과 공유되고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니 저마다의 인생에서 빛나는 고비마다 함께 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 기념물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꽃다발 만드는 것을 배웠다. 아이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엄마로서 기억에 남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서 졸업식이나 입학식에는 꽃다발을 직접 만들어 선사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두 명씩 졸업하거나 입학하는 경우도 있고, 한창때는 거의 매해 식이 있었다. 솜씨가 그다지 좋지 못해서 열심히 만들어도 삐뚤 빼뚤 모자란 꽃다발이 되기 십상이다. 희한하게 만듦새는 엉성해도 꽃들이 어우러지면 그 자체로 아름다워 맵시 없는 솜씨가 가려진다. 만들 때 담았던 축하의 마음 또한 그대로 보인다.

늘 가까이서 보아왔기에 누구보다 그 아이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잘 어울리는 꽃과 색을 나만의 시선으로 고를 수 있다. 그린과 옐로, 화이트와 핑크, 핑크와 퍼플, 오렌지와 그린 등등 때마다 아이마다 축하의 마음을 다르게 표현해보려고 했다. 아이의 성격과 개성대로 구성을 달리하고, 성장 단계에 따라 적합한 색과 종류의 꽃을 골라 어우르면 형태는 어그러져도 가장 환한 꽃다발이 되었다. 졸업과 입학의 때가 오면 어느 색의 어떤 꽃으로 아이의 미래를 축하해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이에 대한 소망과 애정이 오롯이 담겨있으니 만든 꽃다발에도 그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라서 얼추 학업을 끝내고 늦둥이 막내가 내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때도 어김없이 못생긴 꽃다발이지만 직접 만들어서 축하해 줄 것이다.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식 때 내가 준 꽃다발을 받고는 ‘친구들은 사탕이 있는 꽃다발인데 내건 없어’ 라며 토라져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졸업 때는 엄마가 만든 꽃다발을 꼭 받고 싶다며 ‘핑크색으로 만들어줘’ 라고 특별 주문하기도 했다. 간혹 초등학교 때 얘길 꺼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땐 어렸잖아’ 라고 슬쩍 눙치며 미안해 한다. 아이가 몇 뼘이나 더 자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정성이 쌓여 아이는 성장했고 꽃다발의 색과 모양도 달라졌다. 그사이에 추억도 그만큼 깊어진 것이다. 
서로의 추억을 담은 꽃다발은 하늘로 쏘아 올린 불꽃처럼 순간이다. 

축하와 행복의 자리에 함께했던 꽃다발의 색과 모양은 곧 잊힌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찰나의 빛으로 사라진다. 아이들이 한창 클 때 그 북새통 같던 시절도 돌아보니 순간이다. 전쟁 같은 육아에 시달리며 정신없이 지낸 시절이 언제인가 싶게 시간의 화살에 실려 이미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행복하고 기뻤던 순간, 가슴 아프고 후회되는 순간, 자랑스럽고 뿌듯한 순간도 유행가 가사처럼 추억만 남기고 사라져갔다. 꽃은 순간을 살고 사라져도 그 가치가 없어지지 않는다. 

꽃의 너무나 짧은 한 생이 축하와 기쁨, 사랑과 행복 같은 빛나는 것 들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세 버려지고 잊히는 꽃이지만 영원하다. 그 자리를 함께한 꽃은 사라져도 축하와 응원의 마음은 남아서 두고두고 아이의 미래를 따듯하게 밝혀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항상 정성을 다해도 모자란 듯한, 그래도 끊임없이 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담아 건네는 것, 나에게 꽃다발은 그런 의미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왕궁의 후예 2024.01.15 (월)
   나이 어린 새 각시 수줍어 반 쯤 내민 빼꼼한 얼굴처럼 신비로움 품은 비밀의 정원, 비원이었던가? 그동안 키워준 친 어미 품이 식상했다고 성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양 부모 품으로 황급히 달려가는 꼴이 되어 버렸던게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무지한 채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채워진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어쩌면 대열에서 쳐지고 지쳐 버렸기에 무언가 새로운 인생의 달콤한 변화를 꿈꾸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나기 전...
박혜경
새해의 기도 2024.01.15 (월)
올해도 저를 고통의 방법으로 사랑해주세요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고통의 방법이라는 것을결코 잊지 않도록 해주세요그렇지만 올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마소서올해도 저를 쓰러뜨려주세요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쓰러뜨리신다는 것을 이제 아오니올해도 저를 거침없이 쓰러뜨려주세요그렇지만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쓰러뜨리지는 말아주소서올해도 저를 분노에 떨지 않게 해주세요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두 주먹을 불끈...
정호승
새해 기도 2024.01.08 (월)
겸허하게 하소서.내게 없는 것에 불만 하지 않고내가 이미 가진 것들에늘 감사하게 하소서나 여기에 존재하므로저기에 하늘 땅 바다가 존재하며나 여기에 고른 숨쉬고 있음에온 우주가 맥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봄 여름 가을 겨울내 작은 발로 헤쳐갈 삶의 여로에서건네는 눈길마다, 마주 잡는 손길마다꽃잎 줍는 가슴처럼 따뜻하게 하소서덧칠 안 된 언어로 기도하게 하소서허락하신다면, 인연이여세월에도 녹슬지 않는 영혼으로심장엔...
안봉자
  2024년은 나에게는 특별한 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11월 23일  우리가  독립 이민자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지  50년을 맞는 해다.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1974년 육군본부에서 공병 장교로 일 잘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아직  두 살이 채 안 되는 딸아기를 안고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던 낯선 캐나다 땅에 랜딩 했다. 남편의 본적은 함경북도, 하얼빈 출생이다. 러시아계와...
김춘희
서울 나들이 2024.01.08 (월)
   충청도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끔씩 서울 나들이를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처럼 가는 길이니 으레 올망 졸망 보따리를 거느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싸움터에 나가는 비장한 각오로 서울 행 직행 버스에 오른다.  며칠 전부터 들기름 참기름을 짜고 콩이며 팥이며 골고루 챙겨 들다 보면 보따리는 서 너 개가 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오면...
반숙자
굼뜬 어둠을 밀고 알버타 대 평원에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의 위대한 빛甲辰年 큰 희망으로 새 아침을 달군다매듭 달 지는 해에 아쉬움 실려 보낸오늘은 엄동설한 눈 속에 서기로운섬광이 꽃으로 피어 희망을 섞고 있다세상의 기준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마라자연에 봉헌하는 서정과 순수만이고단한 삶의 이력에 발자취로 남는 것주님, 평소 소원한 이웃과 가족들에게옹졸했던 마음 모아 용서를 청하오니새해엔 달 뜬 마음을 다스리게 하소서모진 설한의...
이상목
God, where are you? 2024.01.02 (화)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4시 30분쯤. 출근길에 bus shelter를 지나는데, 어떤 사람이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homeless guy인 것 같았다. 살펴보니 흐트러진 갈색 머리의 젊은이가 누워있는데 그는 얇은 천으로 된 검정 상의와 파란색 하의 그리고 흰색 양말만 신고 있었다. 그의 허리와 발목은 속살이 다 드러나 있었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움찔하며 놀라고 말았다. 그는 상체를 비틀다가...
愚步 김토마스
며칠 뒤 한국으로 떠난다는 김시인을 만났다.왜 떠나려 하느냐는 말에 그는 말했다.“여기는 더 이상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그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그는 늘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여름 한 철에는 정원 가꾸는 일을 노는 날도 없이 하다가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곤 하였다. 궁금해서 연락을 하면 ‘여기는 티베트입니다. 네팔입니다.’ 하다가...
한힘 심현섭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