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웃은 가까이 사는 사람이나 집을, 이웃사촌은 정이 들어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을
말한다. 예로부터 이웃이라 하면 가까이에 살면서 필요에 따라 물건을 빌리거나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기쁜 일은 물론 슬프고 힘든 일까지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존재들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웃끼리는 황소 가지고도 다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익과 손해를 떠나서 이웃과는 가족과 같이
뜻을 합하고 정답게 지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성경에서는 그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이웃이란 요즘처럼 빽빽한
아파트 사이에서 오다가다 만나는 무명의 누군가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다. 지금은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이웃은 늘 가까이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함께한 소중한 친구이고,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철 대문의 소박한 집들이 떠오른다. 우리
집과 나란히 붙어 있거나 마주 보고 있는 골목 안의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같이 정겨운
이웃들이 살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듯 서로의 집을 오가며 모든 것을 공유하던 이웃들은 참
사이가 좋았다.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을 기다란 밀대로 쭉쭉 밀어 칼국수를 만드는 날이면
동네잔치라도 있는 듯 이웃들이 모여들었다. 빈손으로 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저마다 겉절이,
물김치, 장아찌, 제철 과일들을 푸짐하게 들고 나타났다. 소박한 밥상이 차려지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던 이웃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늘 웃을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민구
아빠가 바람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온 동네 이웃들이 민구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들고 나는
시간까지 확인했다. 민구네의 행복을 지키는 일은 이웃 모두의 사명인 듯 투철했다. 혜영 엄마가 허리를
다쳤다면 이웃들은 허리에 좋다는 찜질 팩이며 마사지 기계를 들고 모여들었다. 오현이 아빠가 경마로
집을 날리고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온 동네가 초상집처럼 스산했다. 혹시 아픈 이웃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하지 않을까 이웃들은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 묵직한 침묵 끝에 한숨을 달아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이웃의 기쁨이 곧 자신의 기쁨이고, 이웃의 슬픔이 곧 자신의 아픔인 양 이웃들은 먼
친척보다 가깝다는 이웃사촌이 되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하나 둘 새로 지은 아파트를 분양 받아 뿔뿔이 흩어졌다. 처음 들어 보는 신도시로 떠나는
이도 있고, 동네 가까이에 들어선 뉴타운으로 가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살게 된
이웃사촌들은 저마다 바쁜 일상 중에도 부지런히 안부를 묻고, 서로의 경조사를 살뜰하게 챙기며 함께
늙어갔다. 어릴 때 한 가족처럼 오갔던 이웃들은 지금도 친 이모, 친삼촌처럼 여전히 만나면 반갑고,
허물이 없다. 어쩌다 누가 시집, 장가라도 갈라치면 오랜 이웃사촌이 가장 먼저 예식장 문을 박차고
들어와 왁자지껄 축하 인사를 건넨다.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하는 주름 잡힌 이웃들의 얼굴이 꽃처럼
피어서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이웃사촌, 그들의 모습은 자식들의 결혼사진
속에서도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인정 많고, 순박한 이웃사촌 틈에서 훈훈하게 자랐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하지만 정작 어른이 되고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이웃 간의 따뜻한 관계와 소통은 옛일이 되어버렸다.
그저 자신의 삶에 몰두하며 하루를 살아내기에 바빠 누구도 먼저 이웃에게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침 일찍 일터로 향하고, 늦은 밤에야 집에 돌아오니 어쩌다 이웃과 마주친다 해도 가벼운 눈인사가
전부다. 복작복작 좁은 골목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도 한참 다른 모습이다. 어느덧
소박하고 정겹던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추억 속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지금 나의 이웃은 모습도 피부색도 다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이 낯선 이웃들과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워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조차 꺼려졌다. 나는 옹졸하고 편협한 사고에 갇혀 이웃
간에 오가던 따뜻한 정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이웃은 한결같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물었다. 언젠가 한번은 하얀 이를 내보이는 낯 설은 이웃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아야지….”
생각지도 못한 이웃에게서 들은 뜻밖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낯선 이국 땅에서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리고 추억
속에 살아 있는 나의 소중한 이웃들이 하나 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새삼 이웃이라는 말을 곱씹어 생각해 본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그 진가가 드러나고, 더불어 살아갈
때 삶이 더 풍성해진다. 단순히 가까이 살기 때문에 이웃이 된 사람들. 이들과 이웃사촌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그때처럼 꾸밈없이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사람 냄새 나는 훈훈한 관계의 시작은
이웃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를 먼저 요구하고 있다. 나고 자란 나라, 언어, 문화, 피부색이며 눈동자
모양까지 모두 제 각각인 지금의 이웃들. 그들의 모습 사이로 한 가족과 같았던 옛 이웃들의 모습을
슬며시 끼워 넣어 본다. 사진을 넘겨 보듯 이웃들의 모습을 하나 둘 떠올려 보니 든든한 구원병이
이렇게나 많았나 하는 생각에 가난한 마음이 풍성해진다. 바로 지금, 나는 관습적인 습관에서 벗어나
이웃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때임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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