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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에 가려진 지혜

이종구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6-25 16:21

이종구 / 밴쿠버 문인협회 

나는 대학 시절부터 옛 물건에 관심이 많았다. 토기니 표구니 가구들이 오래되어 빛바랜 모습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곤 했었다. 이 뿐인가, 예전 성균관대 재학시절 등교길 학교 정문에서 강의실로 걸어가는 중 전날 밤 비바람에 떨어진 기왓장에 끌려 집으로 주워 갖고 온 적도 있었다.
서울 후암동으로 이사해 살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동작동의 골동품 및 고가구를 파는 가게를 지나가게 되었다. 잠시 들어가 전시된 물품을 얼핏보니 고산 윤선도의 서예로 보이는 작품이 있었다. 귀한 물건이다 싶어 그날 친구에게 돈을 빌려 샀다.
그러나, 나중에 찬찬히 보니 작자를 나타내는 글자는 고산이 아니고 갈산이었다. 칡 갈(葛)이 한자 초서로 쓰면 높을 고(高)로 보였다, 거기다가 고산 윤선도는 ‘고’자가 높을 ‘고’가 아니고 외로울 ‘고’자였다.
비록 잘못 샀지만, 글씨 솜씨가 보통사람이 아닐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왕손을 비롯한 유명한 명필가 중의 한 사람 작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갈산의 호를 가진 사람을 찾기로 하였다.
한편, 또 다른 낙관은 소국역소라는 뜻이 있어 소국은 중국을 대국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소국이고, 역소는 자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고 열심히 찾아보았다. 심지어 내 한문 과목을 듣는 학생들에게 후한 평가를 주기로 하고, 과제를 내걸기도 하있지만 학생들한테 아무런 정보도 못 들었다. 그대신 내가 재직하고 있는 100년 된 사립학교의 역사를 담당하는 여선생님으로부터 정보를 얻게 되었다. 소국역소는 내가 낙관 글씨를 잘못 읽은 것이었고, 일본 이름으로 고이소 구니야기(小역國昭)라고 한다.
나는 바로 도서관에 가서 인명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청년 장교로 조선 땅에 1차로 왔고(이 부분은 ‘조선총독부’라는 소설에서 인용), 나중에는 육군 대장으로 다시 왔고, 그 뒤 조선 총독 까지 역임한 인물이었다. 본국으로 건너간 이후에는 일본 총리를 역임했는데, 그 자리를 도조에게 넘겼고 일본은 패망하였고, 그후 그는 A급 전범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사망하였다.
그의 서예작품은 모두 52글자의 한자 초서였다. 그 내용을 풀이하기 위해 J여고 미술 선생님을 내 집으로 초대해 보여주니 뜻을 풀이해 주었다. 대부분 자연을 노래한 것이었다. 추측하기로는 내가 살던 후암동에 이토히로부미 별장이 있던 것으로 보아, 그 당시 그 작품이 이토히로부미에게나 또 다른 일본 친구에게 선물로 준 것 일거다. 그것이 1945년 8월 15일 패망 후 급히 일본으로 피신하면서 버리고 갔고, 그 후 고물상에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후암동에는 많은 일본인이 살았고, 적산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필자 자신도 어렸을 때 그런 집에서 한동안 살았었다. 2층과 아래층에는 여기저기 다다미방이 있는 그런 고풍의 집 들 이었다.
간단히 이야기 했지만, 나는 이것을 사는데 신경을 참 많이 썼다. 그 무렵 평일에는 직장생활과 야간 대학원 공부로, 주일에는 성당 활동으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사고 이틀 뒤 목욕탕 온탕에 있다가 나오면서 순간적으로 졸도하여 한 달 동안 고생하다 다시 직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정신일도 하사불성을 굳게 믿고 오로지 정신만 우선시 생각하고 신체를 소홀히 했으나, 그 일로 너무 무리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과 함께 우리의 신체도 정신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뒤 미국 유학 시절 학비가 부족해 이 작품을 팔아볼까 한 적이 있다. 기숙사에 같이 사는 일본 친구에게 부탁해 일본 우에노 박물관에 편지를 썼으나, 얼마 뒤 근세작품이라 사지 않겠다는 답변이 왔다. 그래서,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귀국 후 서초동으로 이사해 살 때 근처에 골동품 파는 곳이 있어 우연히 들려 작품에 대해 설명을 했다.
주인이 보고 싶다고 해 며칠 후 다시 들려 보여준 후 어느 날 그 골동품 가게 주인은 누군가 관심이 있다고 한다. 그 서예 작품을 다시 가지고 나갔다. 그때 골동품 가게에 두 사람이 왔는데 한 분은 주변 은행 지점장이고, 한 분은 일본인이었다. 그 중 일본인이 내가 소장한 그 작품을 보고 연신 줄담배를 피며 관심을 보이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를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미국서 끝내지 못했던 공부를 일본에서 더해 박사학위를 받고 싶으니 일본 체류비 정도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예상보다 비싸다고 생각했는지 그날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민 올 때 이 작품을 잘 보관하고자 다시 그 자체를 표구해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두 딸 중 역사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딸에게 유산으로 넘겨주려고 기다렸지만 큰 관심이 없었고, 둘째 딸 역시 역사 전공은 아니지만,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해서 여기 관련은 있다 싶어 주려고 했으나 별 관심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결국은 내 목숨과 바꿀 뻔했던 이 작품을 적당한 사람에게 양도하기로 마음먹는 입장이 되었다.
하마터면 그 서예작품 매입에 온 정신을 쏟아, 건강을 크게 잃어버릴 뻔했던 것을 되새기며,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이 제일 순위라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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