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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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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4-23 11:21

섬별 줄리아 헤븐 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가끔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말도 못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길 듣곤 했는데 그 날그 자리에서 내가 그랬다.
산만하게 풀려버린 생각의 끈이 미처 동여매여지기도 전에 눈만 말똥거리다 맥없이 허를 찔린 기분이다. 아니, 전혀예상치 못한 뜻밖의 물음이라 질문의 요지조차 간파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옳다. 게다가 순발력을 발휘해재치 있게 받아 쳐보기엔 나의 사고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의외로 너무 이성적이다.
 
얼마 전에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마련한 특별한 식사 자리에 우연찮게 동석할기회가 있었다. 마치 문학수업을 받는 듯한 분위기로 친지방문 겸 여행 삼아 멀리 한국에서 오신 부산의어느 영문과 교수님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시와 수필 그리고, 소설의 특성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교수님은 경상도 특유의 발음과 억양이 감칠 맛나게 섞여 마치 간이잘 밴 맛깔스러운 요리를 만드는 일류 셰프 같았다. 나는 부산 바다의 배릿한 냄새를 코끝에 묻혀놓고오랜만에 고국의 정취를 진하게 느껴본 즐거운 시간이었다.
 
“별은 무슨 맛일까요?”
“……”
“별은 무슨 맛일까요?”
짓궂은 교수님의 장난기가 미소에 업혀 입가에서눈동자로 빠르게 번져 올라간다. 재빨리 오감 육감을 움직이고 가동해보지만 냄새를 어찌 가늠해야 할지솔직히 모르겠다.
‘맡아봤어야 알지……’ 독심술을 연마한고수처럼 속 마음을 읽기라도 하신 듯 재차 반문하시는 교수님.
“별은 무슨 맛일까요?”
익살스러운 표정 속엔 하늘에 떠있는 별을정작 본인은 따서 맛이라도 보신 양 자신에 찬 음성으로 또 다시 물으신다.
“달콤한 맛!”
살짝 내비치는 은빛머리 빛깔이 멋들어진내 곁의 어르신이 호기심이 가득 담긴 스물두 살 청년의 모습을 소리에 담아 힘차게 내지르신다.
“별이 달콤하시다는 것을 보니, 달콤한 사랑을 하셨겠어요?”
어느새 환한 미소를 만면에 채워 놓고 화답하시는교수님.
‘달콤이라…… 저 분은 별이 달콤하다는데……진짜별은 무슨 맛일까?’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50세)이 지나간 지 꽤 되었고, 생각하는모든 것이 원만하여 무슨 일이든 들으면 이해가 된다는 이 순(60세)또한 코 앞에 두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는다. 논어의 위정 편에는 공자가 깨달은나이 때의 뜻풀이가 적혀있는데 그 건 그 자신이 터득한 것일 뿐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 같다.
마침내,시간에 쫓기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거침없던 강의는 두어 시간 만에 끝이 났다.
허나, 내겐끊임없이 질문을 파생하며 기발하고 독특한 맛의 신세계로 생각의 새 지평을 열어준다.
 
“줄리아,별은 무슨 맛일까?’
“글쎄……”
“네게 있어 별은 어떤 존재였니? 그리고 별은 네게 무엇을 주었지?’
“음~~꿈과 희망, 낭만……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알퐁소 도데의 별……”
마치 오래 전부터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한누군가가 내 안에 살고 있는 듯이 말을 건넨다.
난 ‘별’하면 떠올려지는 것들을 계속 주절거렸다.
그 때,바오밥나무로 인해 함께 고민을 나누던 기억 안에서 조차 희미해진 내 젊은 날의 초상 같은 오랜 지기 어린 왕자가 내게 말을 한다.
“줄리아,넌 어른이라서 ‘별’을 맛볼 수가 없는 거야. 어른은 이미 어른의 생각의 틀에 갇혀있지. 네가 나를 이해하고 좋아했던 그 때의 너라면 분명 넌 어렵지 않게 너의 ‘별의 맛’을 맛볼 수 있을텐데……” 
안타까워 책망하듯 어린 왕자의 애정이 느껴지는조언은 메말라 닫아 놓았던 내 마음 깊은 곳의 우물 뚜껑을 열어준다.
‘별’ 속엔 박하 향이 나는 박하수(물)가 흐르고, 곁에는박하수(나무)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별은 달콤함보다는 상큼한 민트 향이 감도는 시원한 느낌의맛이 아닐까?
 
생각이 생각의 맛을 맛보기 시작하니, 내양볼 따귀 안에는 시원한 박하 향을 내 뿜으며 별 조각 하나가 들어온다.
어린 시절 혓바닥의 움직임에 녹을 새라사라져 가는 아쉬움에 조심스럽게 굴려대던 눈깔사탕 같다. 푸르름 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입술 사이로은은히 새어 나온다. 좋은 기억 속에 담겨있던 즐거운 추억의 눈깔사탕은 생각의 늪 구덩이에 빠져있던내게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던 또 다른 맛 하나를 던져준다.
‘내 냄새는 뭘까?’ ‘나만이 갖고 있는 나의 맛은 과연 있을까?’
향이 좋은 향수를 몸에 뿌리듯 인위적이고작위적인 화학성분에 의존한 향내가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에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하는 냄새. 그런 냄새를품은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머무른다.
 
세상에는 수 많은 냄새가 있다.
개중에는 이미 내게도 익숙한 좋은 냄새와나쁜 냄새로 나눠지기도 하고 때론 내겐 좋은 향도 다른 이에겐 치명적인 해가 되는 향도 있을 것이다.
각양각색의 색깔과 모양만큼 저마다 다른향을 지닌 꽃들이며 심지어 생명을 지니지 않은 물건들 조차 그들만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각 각 풍기는냄새에 따라 환대를 받기도 하고 눈 쌀을 찌푸리기도 하니 과연 난 어떤 냄새를 풍기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진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선행을 격려하며(히브리서 10장24절)”,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히브리서 13장 16절)”는 말씀으로 세상은 나 혼자 독불장군처럼 사는 세상이 아니라고 이 순간에도 사도 바울을 통해 확실하게 일깨워주시고 계신다.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냄새.
떠오르기만 해도 즐거움을 주고 행복이 느껴지는그런 냄새. 그런 냄새를 내게도 묻히고 싶다.
내 입술을 통해 나오는 모든 말이 은혜롭고겸손이 묻어 나온다면……  내가지금보다 좀 더 부드럽고 조금 더 나를 낮추고 조금만 더 진솔한 모습으로 주어진 오늘을 살아 간다면……내게도언젠가는 좋은 향이 배어 나올 것만 같다.
뜻밖의 맛 하나로 얻어진 나의 작은 행복의냄새는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이 누군 가에게는 기쁨이 되어줄 수 있고, 나 또한 누군가 뿜어내는 아름다운향 음에 취해 즐거울 것 같다. 이래서 세상은 수많은 별들이 쏟아내는 달달 하고도 아름다운 맛의 이야기속으로 우리를 이끄는가 보다.
 
 
갑자기 오늘밤엔 알퐁소 도데의 ‘별’속의 스테파네트를 흠모하는 양치기 청년이 되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밤 하늘의 별을 헤아리며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가슴으로 맛보고 싶다.
또, 고흐의‘별이 빛나는 밤’속의 환상적인 푸르른 맛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보고도 싶다.
무엇보다 양치기 청년의 어깨에 기대어 달콤한별 이야기에 취해있는 스테파네트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맡아 본 이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냄새와 나를 가장 설레고 두근거리게 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최고의 사랑이야기를 밤을 지새우며 들려주고만 싶다.
  “진짜좋은 향기를 지닌 아름다운 분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2018.4.7  벚꽃향이 봄을 불러들이던 기분 좋은 사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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