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16-01-01 15:23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멀지 않은 과거에는 티비에 방영되는 요리 시간에 몇십 년 한 곳에서 주방 청소부터 시작하여 주방장이 안 가르쳐주기 때문에 온갖 서러움을 다 받아가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다가 마침내 몇 십 년 후에 빛을 발하는 장인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그 후에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의 요리 학교에서 수학한 젊은이들이 강남이나 이태원에 등장하면서 국제화에 앞장서면서 도전하는 면모로 신선함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새로운 직업군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었다.

나는 아주 일찍이 아프리카의 케냐에 진출하여 그곳에서 호텔의 총지배인을 하면서 호텔에서 거주하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무료인 최상의 혜택을 받고 살아왔다.

그러나 저녁 한 끼는 꼭 한식을 했으나 한국 식품을 파는 곳은 없는 관계로 아내가 너무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성스런 식단의 힘으로 지금까지도 60평생에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이 건강을 유지했다.

아내는 머리를 짜내서 두부와 묵 등 많은 한식재료를 이리저리 가공하며 직접 만들어서 한국 못지않은 훌륭한 식단을 차렸었다.

집에는 가사 도우미와 기사도 있었고 또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오는 그 유명한 무타이가 클럽의 유일한 한국인 회원이면서 나의 전속 캐디도 있을 정도였다. 냉장고 속의 물 한잔 내가 꺼내서 딸아 마신 적도 없다.

그렇게 우아(?)하게 잘 살던 어느 날 친구로 지내든 주 케냐 캐나다 대사관의 참사를 골프장에서 만나서 커피를 같이 하게 됐다. 그는 뜬금없이 밴쿠버가 아주 아름답고 좋은 곳이니 그곳에 가서 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나는 3번이나 케냐를 떠나서 세계 방방곡곡 살 곳을 찾아보았으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서 다시 나이로비로 돌아오곤 했다. 그 후 암튼 우여곡절 끝에 나는 캐나다로 이주했다.

밴쿠버에 와보니 세계어는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아름답고 또한 넘쳐나는 한국식당과 식품들이 너무 풍성해서 오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흡족해했다.

거의 매일 한, 중, 일 식당을 바꿔가면서 매식을 하는 즐거움도 실컷 누렸다.

그러나 몇 달 후 아내가 성인병 등을 조심해야 할 나이에 너무 맵고 짜고 달은 음식들이니 건강상 안 좋으니 음식을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한식때문에 아프리카에서 고생을 많이 시켰는데 너무나 미안해하면서도 넌지시 모른척하고 지내는 중 느닷없이 백주부라는 자가 등장했다.

아내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이탈리아나 불란서 요리가 아니고 너무나 쉽게 당신도 할 수 있는 한국 음식이라고 그가 나오는 티비 프로그램에 나를 호출해서 앉힌다.

티비 채널 선택권이 없는 나는 권유를 못이겨서 건성으로 보다가 다른 급히 해결할 일들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해서 나오곤 했다. 나중에 슬그머니 무엇을 디미는데 보니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여러 가지 간단하기도 한 한식 만드는 방법 순서를 차곡차곡 적은 종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하는데  백주부의 의도는 누구나 겁내지 않고 식단을 차릴 수 있도록 하는 착한 마음이라고 부연 설명까지 덧부치니 싫은 소리도 못하면서 혼자 슬그머니 내민 레시피를 곁눈질했다

한식 열악한 곳에서 고생을 시켰으니 계속 모른 채 할 수도 없고 나는 죽어도 부엌에는 안 들어갈 태세인데 난데없이 나타난 그놈의 백 선생이란 자가  요새 얼마나 나를 심란하게 만드는지 3식 제공하던 케냐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