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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5-02-27 10:55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시
모두가 잊었다
나의 비루(鄙陋)한 기억들
 
모두가 잊었다
나의 비상(飛上)의 기억들
 
알고 있다
나만 붙들고 있다
나만 붙들려 있다
 
버리고 싶은 대로
간직하고 싶은 대로
버거운 대로
사소한 대로
 
크고 작은 파도마다
모래사장에 궤적을 남기듯
가고 오는 계절마다
조개껍질의 무늬를 새기듯
 
그 기억들이
나를
내 사람들을
내 세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또한 안다
그조차 바래고
왜곡되고 파괴되고
마침내는 사라지리라는 걸
 
이제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
세계의 잔해는
깊고 어두운 우주가
조용히 거둘 뿐이나
 
기억에서 해방된 나는
그 고요한 세상을
먼지처럼
홀가분히 부유할 수 있을까?
 
기억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는한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작은 향기
마음에 와닿으면
영문도 모르고
콧등이 시큰하겠지
 
전에 마주친적 있던가, 우리
어떠한 기억의 인연으로
우리 또 스쳐가는가
그리운 향기
못내 돌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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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달밤 2015.10.09 (금)
네 가슴에 내 가슴에수줍게 둥지틀은아기 손톱같이가늘고 연약한 달눈에서 눈으로마음에서 마음으로날로 연연해지더니날로 도타워지더니이 껌껌한 하늘에두둥실 떠올라이 적막한 세상에휘엉청 떠올라저 둥글고 밝은 달빛은빛 선율처럼 흐르고시냇물처럼 속살거리는데조심스레 맞잡은 손과 손사람의 모든 울고 싶은 밤힘겨운 밤이이 달밤으로 위로받기를...내 옆의 아름다운 그대여!
이재연
유월의 꿈 2015.06.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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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기억 2015.02.27 (금)
모두가 잊었다나의 비루(鄙陋)한 기억들 모두가 잊었다나의 비상(飛上)의 기억들 알고 있다나만 붙들고 있다나만 붙들려 있다 버리고 싶은 대로간직하고 싶은 대로버거운 대로사소한 대로 크고 작은 파도마다모래사장에 궤적을 남기듯가고 오는 계절마다조개껍질의 무늬를 새기듯 그 기억들이나를내 사람들을내 세계를만들었다 그러나 또한 안다그조차 바래고왜곡되고 파괴되고마침내는 사라지리라는 걸 이제는...
이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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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비 오는 주말 2014.08.24 (일)
<비 오는 주말>                                낮에도 밤에도 주구장창 비,비,비 아이는 좀이 쑤셔 집안만 맴,맴,맴 이 놈아,책 좀 읽어라. 잔소리는 노,노,노       <방귀 가족>     아빠방귀 뿌우우웅 아기는 키득키득 엄마방귀 뽀오오옹 아기는 쿡쿡쿡쿡 어쩌나, 아가도 빵! 빵! 휘둥그레 놀란 눈
이재연
해마다 봄이 오고 등꽃이 피면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내 幼年의 등나무에도 꽃이 피네.포도송이 닮은 꽃들 새록새록 피어나네. 두 줄 밑둥이 튼튼하게 꼬여 내가 올라타도 끄떡없던 나무.버팀대 타고 올라 큼지막한 그늘 드리우고무성한 잎 사이로 꿈처럼 환상처럼 수백 송이 등꽃 매달리면무더운 태양도 세찬 빗줄기도 비껴가던 그곳. 동생과 세발자전거를 타고, 친구들이랑 소꿉놀이하고학교에서 돌아오면 꼬리 치며 반기던 흰둥이가족 모두...
이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