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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문인협회/수필] 처음으로 그리고 영원히…

목사/수필가 김덕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7-04 16:12

 삼년 반 동안 긴 터널을 한 없이 달려왔다. 거칠고 삭막하며 메마르다 못해 딱딱해진 돌짝밭 같기도 한 세월이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아픔과 고통으로 점철된 방황의 생활이었다. 사실 나는 대학을 졸업 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던 순수하기만 했던 젊은이였다. 그러던 나에게 그 때의 몇 년의 세월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어쩌면 가장 힘들었던 세월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긴 상념의 실타래를 풀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지금은 가득 채워진 암울한 아픔의 창고 빗장을 지른다.

 어두운 터널은 빛으로 이어지는 희망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구십삼 년 어느 봄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머리는 길러 곱슬하게 말았고, 갸름한 얼굴에는 웃음을 가득 담은 눈과 꼭 다문 앵두 입술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거기에 봄날에 느끼는 싱그러움과 어우러져 상큼한 느낌마저 드는 것은 짧은 미니스커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은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신의 계획에 의해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십칠 년 세월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까이 지내기도 하고, 때론 연인처럼 감정을 느끼는 때도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종의 의문이 있었다. “과연 내 사람일까?”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혀 모를 일이었다. 단지 나보다는 한 살이 어리다는 것 밖에는…

 계속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이 큰 고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줄줄이 새는 모래알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새어 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는 그런 웃음이었지 싶다.

 큰 바위 얼굴을 찾기 위해 긴 세월을 헤매다가 결국에는 자기 고향에서 찾게 된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누구나 상대를 만나기까지는 많은 생각을 한다. 키는, 얼굴은, 학벌은, 비전은, 등등. 하지만, 정작 자기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이란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불가사의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우리의 감정에 비하면 이렇게 초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낄 뿐……

 어떤 사람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만나며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았어도 항상 남처럼 느껴지는데, 또 어떤 사람으로부터는 그렇게 많은 것을 받기만 했어도 감동이 없었는데, 또 누구는 당신 없인 못산다고 얼음장을 늘어 놓았어도 남 예기 같았었는데, 나는 어쩌면 마법에 걸렸는지, 한 순간도 같이 해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받아본 것이 없는데도, 아니 나 좋다고 한적 한번도 없는 사람이 좋아 가슴이 설렜다.   

 한 반시간 가량을 이야기 하다가 멋진 호수가로 드라이브를 하며 거닐고 싶어졌다. 그녀를 위해 처음으로 차 문을 열어 주었을 때, 나는 이미 마음에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한 쪽을 찾아 나서는 일은 없을거야! 얼마나 긴 세월을 고대하고, 그리워하며, 기대하며 살아왔던가! 이제 그 길었던 방황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나만 존재하던 고독의 세월은 이제 점점 작아지는 점이 되어 차창 밖으로 멀어져 가고 이제는 내 사랑과 함께할 미래가 눈부신 태양의 선율과 함께 크로즈업 되고 있었다. 그렇게 그 해 어느 봄날, 나는 그녀를 처음으로 그리고 영원히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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