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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나라로 간다10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0-22 13:18

알라스카 주 수도와 심장, 주노에서 앵커리지까지
 
닷새 동안 산중을 헤매고 난 후의 일정은 공교롭게도 호화유람선이 일으키는 물보라를 좇게 된다. 스케그웨이(Skagway)도 그렇고, 알라스카 주 수도인 주노(Juneau), 케나이 피오르드 국립공원이 있는 씨워드(Seaward) 역시 크루스 쉽 타운이다. 

 문명으로 돌아와 한 일이 뜨거운 물 샤워, 기름진 음식, 그리고 IT사용 등. 산양처럼 바위산을 타며 거사가 다 되었다 싶었는데…. 폐부 깊숙이 박힌 세속의 침을 뽑을 길이 없다.

 

 7월 27일 아침은 맑음 후 뇌성벽력. 좁은 협곡에 자리한 스케그웨이 하늘이 먹구름을 울컥울컥 토해놓는다. 울분을 쉬 거두지 않을 량.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지. 오늘부터는 도보가 아닌 배로 물길을, 비행기로 하늘길을 날게 되니 날씨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문명의 신을 절대자로 신봉하며 그 최대 수혜자가 되자.

 셔틀버스를 타고 별리의 애상과 상봉의 눈물이 안개비로 뿌리는 제 2 항구에 이른다.  알라스카 피오르드 라인(Alaska Fjord Line, 1-800-320-0146, 고래 및 빙하 관광 포함된 주노-스케그웨이 간 쾌속 보트)이 뱃고동을 울리며 8시에 출발. 한 시간 후 헤인즈(Haines, 인구 2500여 명의 항구도시)에 들러 주노 행 승객을 더 태우고 운하를 빠져 나간다. 




 여기서부터 알라스카 행 크루스 쉽과 같은 항로를 간다. 꼭 맞는 조끼를 입은 듯 산간과 해안에 낀 협해를 빠져나가며 바위섬에 올라 오수를 즐기는 바다사자, 물기둥을 뿜어 올리며 보트와 경주를 하는 혹등고래 가족, 동글동글한 머리를 내놓고 배영하는 해달 등을 구경한다. 리아스시 식 해안선과 해안 절벽에 낀 녹색 이끼를 코 앞에 보기도 하고, 그림처럼 떠있는 페리를 보며 으련한 객수에 젖기도 한다.

 4시간만에 주노 도착. 한창 개발 중인 주노는 웅웅거리는 포크레인 소음에 암반 아래 묻힌 공룡까지 깨울 지경. 정체에 정체를 겨듭해 다운타운에 도착한 시각이 1 시, 크루스 쉽 두 척이 비를 맞고 서있다. 예쁘게 꽃단장한 컨벤션 센터 주차장에 내려 첫번째 달려간 곳이 피쉬 앤 칩 명소(Hanger Wharf Restaurant). 맛과 서비스도 좋고, 빗방울 송글송글 떨구는 바다 전망도 일품이다.




 주노는 밴쿠버의 뉴웨스트민스터나 서울 근교의 성남시 같다. 해발 0의 부두에서 북동으로  세 개의 언덕길이 뻗어있다. 여섯 개의 길이 서로 교차하면서 각기 색다른 매력을 가진 상점들이 길가에 꽃바구니처럼 매달려 있다. 신전같이 웅장한 원형 기둥을 가진 정부 청사와 육중한 법원이 이웃하고 그 건너편에 교회가 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좁아 정면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1시간 정도면 다운타운 탐방이 다 끝난다.



 이제 주노에서는 더이상 파이오니아의 개척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십대의 소꿉장난 같은 풋사랑이나 이십대의 에스프레소 사랑이 피어날 만한 꽃마차 타운? 또는 크루스 쉽 애호가들이 은발의 사랑을 나누는 엘러지 타운이랄까.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본 풍경- 물 빠진 개펄에 펄떡이는 연어떼와 먹이를 찾아든 갈매기들의 비상-이 주노의 생명력과 풍요를 실감케 한다.

 시내에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맨든홀 빙하(Mandenhall Glaciers)로 간다. 코 앞까지 흘러 내려온 빙하가 마치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 형상이다. 빙원에서 지상까지 흘러오는 동안 묻은 세월의 먼지가 크레바스 틈새마다 끼어있다. 차디찬 빙하수에 발을 담그고, 찢어진 드레스자락 같은 빙하의 발가락에 닿고 싶지만 오른쪽 중간쯤에 폭포수가 쏟아져 길을 끊어 놓았다. 30분, 1시간, 5 시간짜리 하이킹 트레일이 있고, 캠프사이트도 있다. 비지터 센터에 가서 빙하에 대한 공부를 하고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간다.

 주노 공항은 간이역처럼 한가롭다. 공항 직원도 친절하고 보안요원도 농을 걸 만큼 순박하다. 체크인을 하고 나서 보니 주머니에 다용도 칼이 들어있다. 낮에 사용하고 다시  배낭에 넣어 부치는 걸 잊었다. 요즘엔 깜박깜박 잊는다.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는지. 새 것인데 자진 헌납해야 할 상황. 후다닥 수속창구로 가서 예쁘장한 여직원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큰 박스를 가져와 칼을 담고’이미 체크했음’이라는 스티커를 붙여준다. 덕분에 가장 허풍 센- 아주 작은 내용물에 아주 큰 박스- 수송품이 앵커리지까지 안전하게 운반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슬프다고 한다. 머리도 나빠지고 육체도 쇠약해져서. 하지만 명석함 대신에 예지를 얻고, 충동과 방황의 날개를 접고 안착하는 황혼기를 나는 즐긴다. 분망하지 않아서 좋고 절로 허술해져서 홀가분하다.




 8시 19분에 앵커리지 도착, 자동차를 빌려 한 시간 반을 헤맨 뒤 찾아간 노던 어드벤처 호스텔(Northern Adventure Hostel)의 부엌은 대강당만큼 크다. 그리고 아늑한 침대와 편리한 시설들 ,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게 없다. 이튿날 가야할 길이 멀어 미리 짐을 꾸려놓고 자정 넘어 침대에 드는데 그때까지 북국의 하늘은 파랗기만 하다.

 데날리 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까지 386 km, 곳곳에 도로 공사 중이라 여섯 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는 호스텔 매니저 엄포에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한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노룽지 끓여먹고 점심까지 챙겨 챙겨 숙소를 나오는데 별빛 총총하다. 두 시간도 채 못 잤으련만 군소리없이 운전석에 앉는 팀원과 조수석에 앉아 교대를 기다리는 팀원 덕에 까막까막 졸고 난 후 만나는 일출. 홍시처럼 붉은 빛을 물고 멀리 있던 눈산을 시야에 들여놓는다. 그가 열어주는 말간 아침에 북미의 최고봉, 매킨리 산(Mt. Mckinley)으로 달린다.

 어느 것도 우연은 없다. 새벽잠을 희생했기에 대륙이 깨어나는 장엄한 순간을 목도하고, 매킨리 영봉이 부르기에 이 먼 길을 달려 그를 만나러 가고 있다. 그와 난 몇 억 겁에 얽힌 인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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