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전 세계 모든 언론의 톱뉴스는 단연 새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이었다. 무엇보다 톱뉴스의 제목이 ‘First American Pope’이었다. 전 세계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과 교황뿐이다. 지난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은 온 세계 매스컴을 일거에 장악했고 매일 매일 뉴스는 교황 선출에 대해 시시각각 보도를 해왔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은 바티칸 시국의 역설과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는다. 교황청 인구는 고작 800여 명에 베드로 대성당과 그 후원을 합쳐도 서울 경복궁 정도의 넓이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 퍼져있는 가톨릭 신자 수가 무려 14억이나 되니 그 영향력을 따지면 세상에서 가장 큰 초거대 집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에 25만이나 되는 거대한 참석자와 현직 국가 원수 61명, 국왕과 왕족 10여 명을 포함하여 전 세계 126개국이 공식 대표단을 파견하여 오죽하면 매스컴이 ‘외교계의 올림픽’이라고까지 명명했을 정도였다. 지상에서 가장 성대한 장례식이었지만 정작 그의 소박한 목관은 아무런 장식 없는 차량으로 장지에 실려 갔다. 실상 인류사에서 2000년 역사를 가진 교황청은 가장 오래된 단일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이 자신의 황실을 만세일계로 세계에서 역사상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가장 오래된 황실이라고 자부하지만, 초창기 신화시대를 제거하고 역사적 추적이 가능한 4세기경 오진 천황 시기부터 따지면 약 1,600~1,700년 정도에 불과하다.
교황은 단순한 종교지도자가 아니다. 가톨릭의 수장이지만 동시에 서구 문화 전통의 역사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서구사회에서 교황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높은 관심은 단순한 신앙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과 정체성에 대한 애정, 도덕적 권위자에 대한 기대,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가진 인물로서의 역할 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새 교황이 선택한 교황 명은 레오 14세인데 매우 의미심장하다. 전임자였던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Rerum Novarum》(1891)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것으로, 근대 산업사회에서 노동과 자본의 문제에 대한 교회의 첫 공식적 응답이다. 이 문서는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서, 현대 사회사와 정치사, 경제사에 깊은 영향을 끼친 역사적 이정표로 평가된다.
현대세계의 특징 중의 하나는 탈종교화시대이다. 기독교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서구 유럽에서 크리스천의 비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교회를 찾는 인구가 10% 이하로 떨어졌고 텅텅 빈 교회들이 통합되거나 일부는 팔려나가 심지어는 술집으로 변모하는 충격적인 사례까지 보도되고 있다. 북미도 1970년대는 크리스천 비율이 90% 수준이었지만 이젠 미국은 62%, 캐나다는 더 떨어져 단지 인구의 53%만이 자신들이 크리스천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일례를 들면 필자가 1981년 캐나다에 왔을 때 가톨릭 신자 비율이 전체 캐나다인의 45%였는데 이젠 30%로 떨어졌고 그나마 지난 40년 동안 유입된 이민자들이 주로 남미나 필리핀 같은 가톨릭 국가들의 인구들이 끊임없이 유입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 개신교도 최대교단인 연합교회는 이젠 고작 10%, 기타 개신교는 약 13% 정도일 뿐이다. 실제로 요즘 현지 성당이나 교회에 가보면 백인들보다는 최근에 이민 온 유색인종들의 비율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실제로 이민자들은 개인의 신앙과는 관계없이 현지의 직장이나 상업 정보와 상호 간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 교황은 이제 탈종교화 시대의 제반 문제들과 씨름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새 교황이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출신이란 점이다. 종교개혁자로 유명한 마틴 루터 역시 새 교황과 똑같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출신이었다. 라틴어에 유명한 격언이 있다: ‘끊임없이 교회는 개혁돼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문영석 교수의 캐나다 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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