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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과 처갓집 - 원만한 결혼 생활 -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11-01 00:00

지금처럼 수세식으로 되어 있지 못했던 옛날 변소는 대부분 냄새가 나고 파리가 끓기 마련이었다. 이런 변소가 가까이 있어서 기분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비록 필요할 때 좀 멀리 가야하는 불편이 따르겠고, 더구나 급할 때는 마라톤 선수처럼 뛰어야 할 경우도 있겠지만, 아무튼 일단은 멀리 두어야 한다. 그래서 ‘뒷간’이고, 영어에서도 이런 식의 변소를‘backhouse’라 한다.
뒷간이 멀어야 한다는 데는 이렇게 뚜렷한 이유가 있는데, 처갓집이 멀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분명 처갓집에서도 ‘냄새가 나고 파리가 끓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속담이 나오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딸이 시집을 간다면 부모는 대략 이런 훈계를 했다. “이제 너는 출가외인이다. 살아도 그 집 사람이고 죽어도 그 집 귀신이니, 그 집 일만에 충실하라. 친정집이 잘 산다고 기댈 생각도 말고, 친정집이 어렵다고 거기에 너무 신경 써도 못 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디까지나 독립적으로 남편과 손을 맞잡고 굳세게 살아보도록 하라.”
어린 나이에 시집가는 것이 좋은지 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부모님 말씀대로 살아보리라 마음먹고 시집을 간다. 일단 시집에 와서 살아 보니, 고생이 말이 아니다. 온갖 굳은 일로 힘든데 신랑인지 망나니인지 이해해 주거나 도와줄 생각도 않고, 모든 것이 한심할 뿐이다. 생각나는 것은 친정집 뿐. 다 집어치우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새댁이 혼자서 걸어가기는 너무 멀고 험한 길이다. 꾹 참고 살아 본다.
얼마가 지나니 일에도 익숙해지고, 이 집이 내 집이라는 실감도 나고, 신랑도 나이가 들어 신랑 구실을 하게 되고, 아이들도 하나 둘 생기면서 커가는 것 보는 재미도 있고… 이제 안주인으로서의 품위와 관록이 생기게 되었다.
이 경우 친정집이 가까웠다고 생각해 보라. 신랑과 토닥거리다가 친정으로 쪼로록 달려가서 울고불고한다. 어린 딸이 이처럼 우는 것을 본 친정 부모는, 비록 겉으로는 표시하지 않을지 몰라도, 쓰라린 가슴을 어쩌랴. 속으로 사위 놈과 사돈집을 원망한다.
한 편, 며느리가 없어진 시집에서는 “배워먹지 못한 것. 가긴 어딜 가? 그 집도 딸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그 모양인가? 친정으로 찾아 갔더라도 혼때미를 내고 돌려보낼 일이지, 그걸 다시 품에 끼고 돌아!”하면서 며느리와 사돈집을 나무란다. 심한 경우, 아들에게 “그 애가 설령 제 발로 돌아오더라도 싹싹 빌기 전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라”고 엄명까지 내린다. 부부간의 문제가 양가 사이의 문제로 확대된 셈이다. 그만큼 더 얽히고설키게 된 것이다.
주위의 친구 중 이혼한 경우를 보면, 양가 식구들이 개입된 경우가 많다. 물론 친정집이나 시집이 이혼의 근본 원인은 아니겠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가 서로의 허물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감싸주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대로 양가에 알리고, 서로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울고불고하는 것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어렵
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부부싸움은 어느 면에서 권투시합과 같다. 진짜 권투처럼 직접 완력을 가지고 치고받는 것이 아닐 뿐, 일종의 권투시합이다. 물론 말로 하는 권투시합이지만, 이것도 ‘규칙’에 따라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여러 가지 규칙 중에서 “권투는 링 안에서만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상대방이 도저히 짝이 맞지 않는 선수라든가 무법적인 행동을 자행할 경우에도 끝까지 링 안에서 버티고 있다가 까무러쳐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링 안에서 정상적으로(?) 다투다가 자기에게 조금 불리한듯 하기만 하면, 링 밖으로 뛰어 나가 시합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고 위협한다거나, 더구나 자기를 응원하는 관중 쪽으로 뛰어가 그들과
함께 상대방 선수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은 페어플레를 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다.
옛날에도 소위 뼈대 있다는 집안에서는 딸이 시집에서 그런 식으로 돌아왔을 경우, 딸의 사정을 잘 들어보고 웬만하면 딸을 잘 훈계하여 되돌려 보냈다. 다시는 그런 일로 친정을 찾아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면서. 무조건 같이 흥분하고 같이 소리 지르는 일을 하지 않았다. 링 밖으로 튀어나온 딸을 다시 링 안으로 들여보내 시합을 공정하게 끝내고 끝난 다음 서로 얼싸안을 수 있도록 해준 셈이다.
그러면 부부간의 문제나 가정 문제는 무조건 덮어두고 쉬쉬해야만 한다는 뜻인가? 너무 쉬쉬하면 속에서 쉬거나 심한 경우 곪아 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의 도움이 문제 해결을 쉽게 할 수도 있고, 또 반드시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아무에게도 찾아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누구에게’ 찾아가느냐가 중요함을 일컫는 말이다.
부부싸움이 있을 때 찾아가는 사람들은 대게 내 쪽을 응원해줄 사람들이다. 부모가 그렇고, 학교 때 친구들이나 새로 사귄 이웃이 그렇고. 이럴 경우 대부분 그들은 냉철한 판단력을 발휘해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우선 나와 함께 흥분부터 하고 본다. 문제 해결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누가 잘하고 못했느냐를 따지는 데 더 신경을 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둘이서 함께 제3자적 입장에서 문제를 공평하게 진단할 수 있고, 그 진단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그 전문가 앞에 가서까지 서로 상대방의 잘못만을 지적하며 다투면 곤란하겠지만. 이제 변소가 ‘뒷간’에서 ‘안간’으로
바뀌었다. 변소에서 그것을 멀리 두어야 했던 요소들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처갓집, 친정집, 시집, 큰집도 모두 바싹 가까워졌다. 비록 몇 백리 떨어져 살거나 딴 나라에 산다 하더라도 옛날 이웃 마을 가기보다 더 수월하게 갈 수도 있고, 전화를 이용할 경우 ‘전화기 놓여 있는 만큼의 거리’에 떨어져 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서도 그것이 멀리 있어야 했던 요인이 다 제거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친정집의 지리적 원근과 관계없이, 부부간의 문제에 관한 한, 아직도 그것이 심리적으로는 그것이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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